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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3-수단이 목표를 잡아먹는 순간

웹소설-원포인트 꽁트

by 기신

마법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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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언제나 제 시간보다 20분 늦게 나오던 네가 1시간이 다 되도록 나오지 않았어.


20분과 1시간은 실제로는 40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단위가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갑자기 시간을 의식하기 마련이야.

1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었어.

어쨌든 네가 나오지 않은 만큼 카페 예약비를 우리는 더 지불해야 했으니까.


“아파요.”


울먹이는 목소리와 함께 아프다는 소리가 되돌아왔어.

항상 네가 웃거나 입술 삐죽이는 모습을 보아온 내게 굉장히 낯선 소리였어.

너를 볼 때면 장난치거나 웃거나 화를 내는 모습은 상상할 수 있었지만 우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어.


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일거야.


전혀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아플 때가 있어.

몸이 약해서든 마음의 병을 앓아서든 약해질 수 있어.

웃음은 단지 자신의 고통을 가리기 위한 가면에 불과할지도 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

왜냐하면 남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거든.
너도 단지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그 웃음도, 지금의 울음도 똑같은 너의 얼굴일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시험해보고 싶어지기도 했어.

네가 며칠 후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손을 내밀었어.


“재미있는 거 하나 보여줄까요?”
“예?”


의아해 하는 너의 눈앞에서 나는 마법을 부렸지.


“아브라카다브라.”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유서 깊은 주문이지만 주문 자체는 그저 의식에 불과해.

중요한 것은 주문에 담는 자신의 기원과 의지력이야.


보통 사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렬한 기원이

강철 같은 의지와 하나로 결합될 때

이 세상에는 본래 있을 수 없는 기적이 발생하지.


그것이 마법이야.


너의 눈이 커졌지.

내 텅 비었던 손에는 어느새 선인장이 들려 있었어.

나는 너의 표정을 면밀히 살폈어.


장미도, 백합도 아닌 선인장을 선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선인장은 사막에서도 잘 자라.

그만큼 강력한 생명력을 자랑해.

반대로 여자가 좋아할만한 선물은 전혀 아냐.

따라서 미묘한 표정의 차이가 아주 쉽게 드러날 거 같았어.


넌 웃었어.


“마술이에요? 와, 감쪽같아! 고마워요! 나 선인장 참 좋아해요.”


선인장 가시 같았어.

너의 웃음 속에는 그늘이 져 있었어.

선인장이 자신을 제대로 숨기지 못해 가시 뒤로 도망치듯이 너는 웃음 속으로 도망친 것처럼 보였어.


너는 자신을 숨기지 못해. 혹은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
마법사가 마법을 부릴 때와 비슷한 모습이야.


마법사는 자신을 완전히 세상에 드러내 마법을 구현하지.

동시에 완전히 숨지 못해 어색한 모습을 보이곤 해.

너는 마법사의 자질을 지닌 걸까? 단지 표정이 특이한 것 뿐일까?


흥미를 느꼈어.
얼마 후 너는 답례로 밥을 샀어.


여자와 친해지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음식을 나누는 거래.

포만감은 마음을 풀리게 하고 미각은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나.

여자 특유의 경계심이 녹고 보다 부드럽게 대화하게 만들어 주는 게 식사 자리라더군.

너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아.


“실은 사법고시 1차에서 낙방했어요. 그래서 요즘 힘들어요.”


시험이 인생을 차지해버리면 인생이 피곤해져.

대부분의 경우 시험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실패자를 양산해.

통과한 사람은 더 이상 시험을 신경쓰지 않게 돼.

하지만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시험 자체가 그 순간부터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릴 우려가 있어.


실은 수단에 불과한 시험이 목표가 되는 순간이야.

마법이 단 하나를 먹어치우는 것처럼.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이 오늘도 단 하나를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을까.


나는 덕담을 했어.


“합격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치,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난 예감이 뛰어나거든요. 내 보기엔 내년에 당신은 합격할 거 같아요.”
“핏, 말도 안 돼.”


물론 내 예감이 뛰어나다는 것은 사실이야.

난 마법사니까.

굳이 깊이 따져보지 않아도 너의 시험운은 탁월해 보였어.


하지만 한 가지가 납득가지 않았어.

시험은 분명히 사람을 어둡게 만들어.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너의 다채로운 표정과 칠흑같은 어둠을 설명할 길이 없어.

너는 너무 ‘진실된’ 표정을 지녔어.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 표정은 탁월한 재질이야.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재질이 아냐.


“날 믿어봐요. 내 예감은 잘 맞거든.”


나는 다시 덕담을 건넸어. 너는 가만히 있다가 식사가 끝나고 커피를 마실 때 불쑥 말했지.


“참 착한 거 같아.”


왜 네가 그때 웃었는지 나는 지금도 짐작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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