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에세이-데이트랜드

by 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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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기억만이 아직 당신이 내 생에 존재했음을 증거한다.


기억은 언제나 쉽게 흐려진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기억을 갖게 된 시절부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기억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무엇인가를 했고, 어떤 일을 해냈으며, 마침내 생을 유의미하게 만들었다는 표지다.


누군가를 만나 살아갔다는 추억도 마찬가지다.

자주 흐려지고 사라져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그 순간까지 사람은 누군가를 만났던 기억을 추억하며 살아간다.

홀로 생의 길을 걸어갈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애석하게도 기억은 자주 잊혀져 간다.

누군가와 했던 일과 나누었던 교감과 걸었던 길이 모두 기억 속에서 흐려진다.

그렇기에 희미한 기억 한 조각만이 증거가 될 뿐이다.


물론 당신이 내 생에 존재했던 일은 없었던 일이 아니다.

어딘가에 적어놓은 기록이, 함께 찍었던 사진이, 같이 해냈던 일이 남아있다.

하지만 기억이 사라지면 그 모든 것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생의 덧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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