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나의 로스쿨 생존기8
연재웹소설-2. 네가 오는 길 (2)
<나의 로스쿨 생존기>
기신
2. 네가 오는 길 (2)
고시생은 문자 그대로 ‘고시’를 공부하는 학생이다.
고시란 일제 시대부터 내려오는 제도로 이른바 고등문관을 뽑는 ‘고등고시’제도에서 유래하는 시험 선발제도다.
하지만 오늘날 진정한 의미의 ‘고시’는 공무원을 직접 뽑는 행정고시 하나만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고시생’은 다른 시험을 공부하는 학생을 의미한다.
바로 ‘사법시험 준비생’이다.
“고시생? 뭐, 그쪽이 초면에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한국에서 고시생이란 의미는 양면성을 지닌다.
하나는 시험사회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는 뜻이다.
시험과 학벌이 사람의 인생을 상당부분 결정하는 한국에서는 칭찬을 겸한 의미라 볼 수 있지.
다른 하나는 시험에 인생을 허비해 추레한 몰골을 지녔다는 비아냥이다.
고시생은 단 한 번의 시험과 합격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다.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최소한 1년의 시간을 완전히 인생에서 날려버리는 셈이라 1년에 많으면 2번, 적으면 1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하루에 10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공부로 소모한다.
당연히 외모는 물론이고 신체와 패션을 돌볼 겨를이 없다.
너는 키득 비웃었지.
“추리닝과 감지 않은 머리, 슬리퍼는 미디어가 정형화해서 보여주는 백수나 게임 폐인의 패션이지만, 흔히 고시촌에서도 볼 수 있는 ‘고시생 패션’이네.”
추리닝과 감지 않은 머리, 슬리퍼는 미디어가 정형화해서 보여주는 백수나 게임 폐인의 패션이지만, 흔히 고시촌에서도 볼 수 있는 ‘고시생 패션’이기도 하다.
그때 네가 좋은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겠지?
물론 내가 대충 편하게 입고 오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구.
넌 콧방귀를 뀌었지.
“뭐라는 거야? 신림동 스타일로 다니고 있는 주제에 고시생이 아니라는 거야? 그냥 길 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되지!”
“아니, 갑자기 왜 트집이야? 게다가 그쪽, 나 알아? 갑자기 왜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에 무례하게 스타일 운운이야?
“그러는 넌 처음 본 사람을 왜 ‘도’를 묻는 사람 취급인데?”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이 있지.
법정에서 정연한 논박을 벌이든, 길에서 갑자기 말싸움을 하든 원리는 비슷해.
논리와 상식을 앞세우지만 실제 본질은 싸움이라는 거야.
이미 정답을 정해놓고 결론을 포장하기 위해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게 보통이지.
그때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스스로 꺼냈던 논리나 약점 그대로 되돌려주는 거야.
그것도 상대방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아니, 그러니까 그게…….”
“함부로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거 아니야, 되먹잖은 고시생 씨.”
아주 잠깐 사이에 난 멀쩡한 사람을 포교행위를 일삼는 사이비종교인으로 만든 나쁜 ‘고시생’이 되어 버렸지.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선입견을 갖고 대응한 게 내가 맞으니 반박할 말도 생각이 안 나더라구.
넌 어벙벙한 채 서 있는 나를 내버려둔 채 왔던 길로 되돌아 뛰어갔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너도 그 상황이 당혹스러웠던 건 아닐까.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때 누군가 비웃음을 터뜨렸지.
“어이, 가짜 고시생 씨. 신림동 와서 고생이 많다? 아직도 길도 몰라서 그 꼴을 당하냐?”
이번에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었지.
왜냐하면 아는 녀석이었거든.
난 고개를 돌리며 화를 냈어.
“닥쳐. 고시생. 너 기다리다가 이런 꼴을 당했잖아! 신림동은 왜 이 모양이냐. 주민들이 예의도 모르는 거냐?”
진짜 ‘고시생’인 내 친구가 피식피식 웃고 있었지.
추리닝에 슬리퍼, 그리고 감은 지 며칠 된 게 분명한 부스스한 머리.
이런 게 고시생이지, 어떻게 내가 고시생이냐? 대충 입고 오긴 했지만 말이야.
“쟤? 주민은 무슨, 신림동 진짜 거주민들은 친절해. 여기서 떽떽거리는 애들은 모두 나랑 같은 부류지.”
“뭐야, 알아?”
“뭐, 2만 명이나 되는 고시생을 내가 다 아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만, 쟤는 알지. 말싸움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을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말싸움 잘하는 것은 어떤 여자애라도 비슷하지 않나? 왜 그 여자애를 특별하게 말하는 걸까.
“그건 어떤 여자애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근데 넌 어떻게 아냐?”
“그야 나도 졌거든.”
“한심하군.”
내 악담에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 그런 소리 들을 상대가 아니야. 뭐랄까,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천재소녀로 유명하지.”
“뭐? 천재? 고시생이 무슨 천재야? 암기 잘하면 천재냐? 아니지, 길도 잘 모르는 걸 보면 기억도 잘 못하는 것 같은데?”
“암기도 한 번 보면 다 외운다고 하긴 하더만……, 하여간 부딪쳐서 좋을 건 없어.”
어쩐지 유명인사를 놓친 기분이 든 것은 내 착각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작가의 말 : 지금은 5천명, 5-6년 전엔 2만명 정도가 사법시험을 응시했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다니는 곳은 한정되어 있어서 얼굴을 알아보는 경우는 꽤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