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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Apr 30. 2019

빼앗다

에세이-데이트랜드


삶에는 누군가에게 빼앗아 버린 순간이 찾아온다.

아주 오랜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고원에서 내려와 문명을 세웠다.
남의 것을 때로 약탈하고, 강탈하며, 살육해온 기록이 아직도 생생하게 어딘가에 남아 있다.
지금 우리가 이루고 있는 무언가는 선조가 누군가 먼저 이 땅 위에 있었던 이들에게서 빼앗아 이룬 무언가이기도 하다.

더욱 많이 빼앗고, 강탈하며, 자신의 것으로 삼아온 이들이 살아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
문명이란 어쩌면 화려해보이는 외양 속에 참혹한 비극이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빼앗는다는 것은 누군가는 빼앗겼다는 뜻이다.
동시에 지금 강탈하는 자의 후손은 누군가에게 다시 강탈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이미 수천년 동안 겪어온 일이다.

동시에 이 순간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항상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빼앗는다는 일이 지닌 세월의 무게를 돌이켜 생각한다.
지금 내가 가진 무언가가 남에게서 앗아가 버린 것은 아닌지 후회한다.
이 굴레를 끓을 방법은 없을지 상념에 잠긴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남의 것을 가져와 쓰던 날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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