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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Aug 06. 2019

지구

에세이-데이트랜드


이 지구는 너무나 크고 동시에 작다.

인간이 처음 세상을 인식한 태고의 시절부터 이미 지구는 존재해왔다.
그때 아마도 고원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했을 사람들에게 고원 아래의 세상은 너무 크고 아득해 보였을 것이다.
그들이 고원을 나섰을 때는 오랜 빙하의 세월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지저의 격렬한 분화도 잠시 멎은 시기다.

오늘날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은 억겁의 세월이 만들어낸 신기한 광경이 남아있다.
뾰족한 탑처럼 보이는 하늘 고원의 대지, 거울처럼 보이는 소금 호수의 광경, 문득 천공에서 내리꽂히는 스콜의 빗줄기에 이르기까지 원리를 아는 이들에게도 신기한 곳이 지구다.
어째서 이 모든 것이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던 유년기의 인류에게 세계는 거대한 경이 그 자체였을지 모른다.

이제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대지는 없고, 원한다면 심해까지 다다를 수 있고, 마침내 천공을 사람의 날틀이 뒤덮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디든 너무 좁다고 아우성치며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은 서로 아등바등 갈등을 벌인다.
지금 이 시대에 지구는 인간에게 더 이상 크지 않다.

그럼에도 문득 이 세상 속 작아지는 자신을 깨달을 때, 옛 선인들이 보았을 이 세상을 생각한다.
실로 세상에 닿기에 너무나 작았던 인류가 용기를 내어 처음 발을 내딛었던 시절을 상상한다.

작은 ‘나’에게 이 커다란 ‘세상’으로 나갈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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