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검과 기마가 충돌해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편지와 사람을 멀리 보내고 전하는 것만으로도 열띤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지략과 기책이 만나 이뤄내는 격돌이라 단지 세인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이면에서 벌어지는 두뇌의 전쟁에서 기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의 마음에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군대를 움직이는 이들의 마음에 자만을 가득차게 만들며,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자들의 마음에 미혹을 둘러 세운다. 그를 위해서는 움직이고자 하는 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일단 심중에 품은 진정한 염원, 욕망, 기저를 깨닫게 되면 일은 간단해진다. 작은 계기로도 사람의 마음을 뒤바꾸고 형세를 뒤집어 상황을 천양지차로 만들 수 있다. 단지 심중에 품은 단 하나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된다.
문득 편지 하나를 쓰던 ‘시생’은 한숨을 쉬었다. 이 편지가 과연 얼마나 많은 목숨을 앗아갈지 짐작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권력자들간에 분란을 만드는 일은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남녘에서 혈족끼리 싸우다 죽어 반란의 조짐이 그쳤다는 소식이 다시 돌아온 것은 계절이 바뀐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