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웹썰

저녁(슈론,대공전하의 사건수첩)

씀-꽁트

by 기신
boat-164989%20(1).jpg


저녁_해가 저물면 피맺힌 평원에 어스름이 깔린다.

밤이 오면 시신이 가득한 이 끔찍한 광경은 숨겨질 것이다.
마황과 싸우던 시절에는 적들도 마물 뿐이라 칼질에 망설임이 없었다.
아무리 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했어도 마물은 생명이 아니다.

하지만 이종족과 인간을 두고 전쟁을 벌이게 되니 비로소 그 끔찍함을 깨닫게 된다.
생명을 앗아가는 일은 시간을 빼앗는다는 뜻이다.
어차피 누구든 이 땅 위에서 숨을 거두게 되지만 원치 않을 때 죽기를 바라는 자는 없다.

저 곳에 쓰러져 있을 누군가가 살아 있었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굳이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며 울고 웃으며 새로운 생명을 낳아 또 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모든 가능성을 전쟁과 죽음은 박탈해 버린다.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 또한 전쟁의 본질이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더 많이 살도록 애쓸 수 밖에 없었다.

‘슈론’은 탄식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이 땅에 ‘강림’한 이래 후회할 일이 차고 넘치지만 저 광경은 그 중에서도 제일일 것 같았다.

밤이 곧 도래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속(고시생,붉은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