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나의 로스쿨 생존기19

연재웹소설-3. 금수저의 식탁 (4)

by 기신

<나의 로스쿨 생존기>


기신


3. 금수저의 식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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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압력과 심리적 압박은 다르지.


나는 김순희 회장님을 면전에서 ‘할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사촌들은 간혹 그런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앞에서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졸음이 쏟아지던 새벽 식사자리에 일순 긴장이 감돈다.


자리에 들어선 사람은 이제 70줄에 들어선 작은 체구의 노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훨씬 크고 젊은 자녀와 손주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입을 다문다.

이미 심리적으로 이 자리의 주인에게 압도된 탓이지.


-짝!


가볍게 노인이 손뼉을 치면 그때서야 하우스메이드들이 서둘러 음식을 놓기 시작한다.

한국의 노인들이 그렇듯이 김순희 회장님의 취향도 한식이다.

다만 재료가 모두 유기농으로 이루어진 고급 재료라는 게 다를 뿐이지.

양식보다야 낫겠지만 이 꼭두새벽부터 압박감을 느끼며 먹는 식사가 좋을 리가 없다.


“기도하자.”


게다가 그룹의 성공과 집안의 번영이 종교에 있다고 믿는 김순희 회장님은 꼭 식사 전 기도를 올린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우리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몸은 모두 모여 있지만 마음은 이 자리를 모두 벗어나 있는 식사가 시작된다.

방금 전까지 날을 세워 대립하던 백부와 고모도 언제 그랬다는 듯이 식사에 집중할 뿐이다.

가끔 대화가 나올 때는 언제나 김순희 회장님이 먼저 발화를 시작했을 때다.


“오늘 큰 사장 일정이 어떻게 되지?”


백부의 일정을 묻는 이야기다. 가족 식사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모두 공적인 문제다.

대표이사의 일정은 곧 회사의 업무 일정이니까.


“예, 어머님. 오늘은 8시에 이사진과 정기 회의, 9시에는 인공지능협회 창립 5주년 행사가 있고, 10시에는 미래부 장관을 만나러 갑니다. 그 다음에는…….”


정말 빼곡하군.

언뜻 듣기로는 워커홀릭에 일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갈 것처럼 들린다.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분명히 저 행사들과 일정, 회의는 모두 CEO에게는 일거리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회사의 전략이나 비전 구상, 결정은 저 일정과 회의에서는 모두 빠져 있다. 일은 일인데 모두 의전성 일이라는 거야.


“그래, 그럼 신영이는?”


고모에게는 사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 아무래도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옛 어르신들의 습관이 이런데서 드러나는 셈이다.

남아선호랄까.

큰 고모는 태연한 낯으로 아무 불만도 보이지 않고 답한다.


“예, 회장님. 저는 오늘 신입사원 연수 참석이 첫 일정이에요. 그리고…….”


이어서 서열 순으로 가족들은 모두 맡은 기업이나 재단, 법인의 일정 상황을 소화 안 되는 밥을 먹으며 읊는다.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우리집 차례가 온다.


“그래……. 셋째 아가는 재단 일 잘하고 있지?”


셋째 아가.

우리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찍 죽어버린 김순희 회장님의 셋째 아들의 부인, 셋째 며느리.

내 어머니가 결혼 이래 반평생 유일한 지주로 삼아 온 자리다.


“예, 어머니. 저희 재단은…….”

“됐다, 사고 없으면 된 거지.”


하지만 김순희 회장님은 굳이 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유족. 그렇지만 마냥 버릴 수도 없는 아들의 가족.


마치 계륵 같은 지위가 이 재벌 가문에서 우리 가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지.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어머니의 표정은 굳은 채 풀리지 않았다.



작가의 말 : 식사 때 일하는 얘기 하면 소화가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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