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생각보다 먼저 몸에 나타난다

by 루미나

나는 감정을 잘 모르는 편이어서 내 삶은 꽤 평온하다고 생각했어. 누가 기쁘냐고 물으면
“그냥 그렇고.”
힘드냐고 물으면
“괜찮아.”
그 말들이 너무 익숙했거든. 그게 맞는 줄 알았고. 그래서 아이가 감정을 그대로 쏟아낼 때,
나는 그게 버거웠어.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지 싶었고,
이해가 잘 안 됐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좀 많이 부끄럽다.
웃긴 건 말이야,
입으로는 괜찮다고 했는데 몸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는 거야.
가슴이 자주 답답해서 괜히 숨을 크게 쉬게 되고, 어깨는 늘 굳어 있었고, 별일 없어도 한숨이 먼저 나왔어.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그냥 버티질 못하더라.
자주 어지럽고, 갑자기 힘이 풀려 주저앉고,
가끔은 진짜로 쓰러지기도 했어.
병원도 갔지.
검사도 했고.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늘 비슷했어.
“특별한 이상은 없어요.”
그 말이 더 막막했어.
아픈 건 분명한데,
이름 붙일 병은 없다는 거잖아.
그때도 나는 이게 감정의 문제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그냥 내가 약해서 그런가 보다,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나는 감정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몸이 반응하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마음으로 아무 일 없다고 생각하면
몸도 따라올 줄 알았지.
근데 아니더라.
대부분은 몸이 먼저 알고 있었어.
가슴이 답답할 땐
이미 불안이 와 있었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을 땐
화를 꾹 누르고 있었고,
몸이 자꾸 무너질 때는
이미 오래 참아온 상태였던 거야.
몸은 생각보다 정직했어.
참으라고 배우지도 않았고,
맞추라고 훈련받지도 않았어.
그냥 느낀 걸 그대로 내보낼 뿐이야.
문제는 내가 그걸 감정으로 읽을 줄 몰랐다는 거였지.
그래서 요즘은 감정을 억지로 찾지 않아.
대신 이렇게 물어봐.
‘지금 내 몸은 어때?’
숨이 막히면 아, 불안하구나.
어깨가 뻐근하면 아, 화가 쌓였구나.
몸에 힘이 빠지면 아, 나 진짜 오래 버텼구나.
이렇게만 알아차려도 마음이 조금 느슨해져.
감정을 정확히 정의하지 않아도 돼.
좋은지 나쁜지 굳이 가르지 않아도 되고.
그냥 아, 지금 이렇구나.
그걸로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