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내 감정을 몰랐을까?

by 루미나

나, 감정 있는 사람 맞아.

근데 그걸 지금까지 내가 몰랐어.

이게 말이 되나?

되더라.

나는 내 감정을

‘집에 있는데 없는 사람’처럼 대했어.

같이 살면서

인사도 안 하고, 말도 안 걸고. 가끔 방문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어? 집에 누가 있었네?”

그 정도의 존재감.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감정을 못 느낀 게 아니라 느낀 걸 감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

어쩌면 감정 없이 지내는 게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르지.

어떤 느낌이 올라오면 나는 늘 다른 이유부터 찾았어.


“피곤해서 그런가?”

“날씨가 이상한가?”

“설마… 갱년기?”


감정만 빼고 가능한 모든 걸 의심했지.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됐어.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조용히 쌓였다가 내가 제일 힘 빠진 순간을 골라 한꺼번에 터진다는 걸.

스마트폰 자동 업데이트처럼.


내 허락도 없이,

한밤중에,

갑자기.


제일 무서운 건 그거야.

폭발하고 나서야

“아, 나 힘들었구나” 하고 알게 된다는 거.

사실 나는 오래 ‘쿨한 사람’ 역할을 하고 살았어.


괜찮은 척,

웃어넘기는 척,

별일 아닌 척.


근데 웃고 있다는 게

항상 괜찮다는 뜻은 아니더라.

오히려 제일 많이 참았다는 증거일 때가 많았어.

감정은 옆에서 계속


“나 여기 있어.”

“나 좀 봐줄래?”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나는 보고도 모른 척했어.

그걸 마주하면 내가 지금까지 버텨온 방식이

전부 무너질 것 같았거든.

그 결과? 감정이 삐져서 내 삶의 볼륨을

예고 없이 100으로 올려버렸지.

그리고 그때 알았어.

감정을 무시한 대가는 반드시

다른 감정이 대신 치른다는 걸.

어쩌면 나는 감정을 몰랐던 게 아니라 감정을

‘몰라도 되는 존재’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

감정은 그냥 습관처럼 반응했다가 지나가는 줄 알았지.

들여다보고 해석해줘야 할 대상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

근데 웃긴 건 내가 감정을 무시해도 감정은

절대 나를 무시해주지 않더라.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살다 가면 평생


상처받고,

참고,

터지고,

후회하겠구나.


그래서 뒤늦게 감정학교 1학년에 입학했어.

입학 조건은 간단해.

이유 없이 마음이 세게 맞는 느낌이 있으면

합격.

참고로 이 학교는 졸업이 제일 어려워.

대부분은 입학조차 안 하거든.


글을 적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내가 왜 감정을 몰랐는지 조금 알 것 같아.

어릴 때 누구도 감정을 설명해주지 않았어.

대신 배운 건


“참아라.”

“넘겨라.”

“맞춰라.”


그렇게 나는 감정을 눌러 물밑으로 숨기는 법을 배웠어.


울면 안 됐고,

속상해도 안 됐고,

우울한 건 더더욱 안 됐지.


그땐 몰랐는데 그게 강해지는 연습이 아니라

느끼지 않는 연습이더라.

늘 힘들어 보이던 어른들 앞에서 내 감정을 꺼내면 더 힘들게 할 것 같아서 나는 숨기는 쪽을 선택했어.

그 선택이 제일 오래 나를 힘들게 만들 줄도 모르고. 감정은 계속 말을 걸었는데

나는 평생 이어폰을 끼고 살았던 거야.

더 문제는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거고.

그러다 그 이어폰이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어.
아이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지.
내가 감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구나.

그리고 알게 됐어.


내 감정을 듣기 시작한 순간부터 남의 감정도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