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지나가는 날씨다

by 루미나

감정은 오래 붙들고 있으면 안 되더라.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 비를 붙잡고
“왜 지금 와?” 하필 오늘이야?”
이러진 않잖아.
감정도 비슷해. 지나가라고 오는 건데
나는 자꾸 붙잡고 있었어.


“왜 또 이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왜 이렇게 예민하지?”


이 말을 시작하는 순간, 감정은 커지더라.


화가 난 순간이 성격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불안한 하루가 나를 약한 사람으로 만들진 않는데,

나는 자주 그 둘을 섞어버렸어.
지금의 반응을 나라는 사람 전체로 확대해 버리는 거지.


생각해 보면 감정은 나를 공격하러 온 적이 없었어.

늘 알려주러 왔어.


지금 뭔가 어긋났다고,
조금 과부하라고,
여기쯤에서 멈춰야 한다고.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왜 하필 지금이야”라고 화내지 않듯,
감정도 그냥 아, 멈추라는 뜻이구나
알아차리면 그걸로 끝이더라.


문제는 감정을 정체성으로 만들 때 생겼어.


“나는 원래 예민해.”
“나는 항상 불안해.”
“나는 그런 사람이야.”


이 말이 반복되면
감정은 지나가지 못하고 자리를 잡아버렸어.

느끼는 것과 붙드는 건 다르더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붙드는 건 선택이더라.
그래서 요즘은
감정이 올라오면
의미부터 붙이지 않으려고 해.
대신 연습하는 게 있어.
있는 그대로 보는 거.


“차가 지나간다.”
“아이가 웃는다.”
“저건 나무고, 저건 의자다.”


이걸 자주 하다 보니까
감정도 비슷하게 보이더라.
아, 지금 답답함이 있네.
지금 짜증이 있네.
그다음엔 없애려고 하지 않아.
설득도 안 해.
그냥 이렇게 말해.
“아, 지금 이런 감정이 있구나.”
그리고 행동을 조금 바꿔.


물 한 잔 마시기.
자리 옮기기.
잠깐 걷기.

음악 듣기.
잠자기.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니까
감정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더라.
강물이 흐르면 방금의 물은
이미 다른 물이잖아.

그리고,
지나간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더라.
“그땐 왜 그랬지?”
이렇게 자책하지 않기.
그때의 나는 그 감정으로 최선을 다한 거였으니까.
지나간 날씨를 두고 왜 비가 왔냐고
나한테만 화낼 필요는 없잖아.


요즘 내가 붙잡는 문장은 이거야.
이 감정은
나를 설명하지도 않고,
나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금 상태를 알려주고
지나가는 신호일뿐이다.
감정이 올라올 때
이 말만 해도 충분하더라.
“아, 오늘 내 감정은 이런 날씨구나.”
날씨 하나로
하루 전체를 판단하지 않듯,
이 순간의 감정 하나로
오늘의 나를 정리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