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날 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늘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얕아지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기운이 빠져 있었어.
막 화를 내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은 피곤함이었지.
예전엔 그게 좀 이상했어.
왜 나는 화를 내기도 전에 이렇게 지칠까.
화라는 건 폭발하는 감정이라고들 하잖아.
근데 나는 폭발은커녕,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탈진 상태였거든.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화를 바로 내는 사람이 아니더라.
한 번 더 이해해보려고 하고,
한 번 더 넘겨보려고 하고,
괜히 분위기 망치기 싫어서 말 안 하고,
괜히 내가 예민해 보일까 봐 삼키고.
그러다 보니 화는 늘 맨 마지막에야 나타났어.
그때쯤이면 마음은 이미 많이 닳아 있었고,
몸은 “이제 그만하자”라고 먼저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지.
특히 남편이나 가족과의 갈등에서는 더 그랬어.
겉으로 보면 짜증 같고, 화처럼 보이는 말들이 나오는데
정작 내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앞에 늘 다른 감정이 먼저 있었더라.
서운함
알아주길 바랐던 마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길 기대했던 마음.
나는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서운해하고 있었던 상태였던 것 같아.
그걸 바로 말하지 못하고 쌓아두다가
몸이 먼저 반응한 거지.
숨부터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더는 못 버티겠다”는 신호를 먼저 보낸 거야.
그래서 나는 화를 내기 전에 늘 지쳤던 것 같아.
화 자체가 힘든 게 아니라,
그전까지 혼자 안고 있던 마음들이 너무 무거웠던 거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문제는 화가 아니었어.
그전에 이미 오래 서운해하고 있었던 나를
내가 너무 늦게 알아챘다는 거.
화는 갑자기 생긴 감정이 아니더라.
이미 쌓여 있던 마음이
마지막에야 꺼내 보낸 신호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