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몸이 먼저 멈춰버린 적이 있었어.
특별한 일은 없었어.
잠도 평소처럼 잤고,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힘이 없었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말 한마디에도 괜히 날이 서고, 나도 내가 버거웠었지.
예전엔 그럴 때마다 나를 먼저 몰아붙였어.
“왜 이렇게 늘어져.”
“이 정도도 못 버텨?”
“ 다시 일어서는 거야!! 할 수 있어”
근데 그날은 진짜 아무것도 못 하겠는 날이 였었어.
더웃긴건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 한마디에 갑자기 울컥해 버렸지뭐야.
평소 같으면 그냥 넘길 말이었는데
그날은 가슴이 쿡 찔린 것처럼 아팠어.
그때 처음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게 저 말 때문은 아닌데.
이건 뭔가 다른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 참고 있었더라.
이해하고,
맞추고,
괜찮은 척하고,
별일 아닌 척 넘기고.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였는데
속에서는 계속 감정을 쓰고 있었던 거야.
그날 울컥한 건 의지가 약해져서가 아니었어.
이미 감정이 다 써버린 상태였던 거지.
그걸 알고 나니까 예전처럼 나를 다그치기가 좀 어려워졌어.
‘정신 차려’가 아니라
‘아, 나 지금 바닥났구나’가 먼저 떠올랐어.
그 이후로는 이 이상한 무기력함이 오면 무조건 해결하려고 안 해.
마음을 고치려고도 안 하고, 생산적으로 보내야겠다고도 안 해.
그냥 알아.
지금은 쉬어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멈춘다고 망하지 않더라.
쉰다고 뒤처지지도 않더라.
오히려
그 신호를 무시했을 때
더 크게 무너졌어.
그래서 이제는 이 느낌이 오면
조금 고맙기까지 해.
내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먼저 말 걸어주는 거니까.
“이제 좀 쉬는 게 어때?”
감정은 생각보다 정확하더라.
내가 나를 너무 오래 쓰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게 감정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