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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Aug 07. 2024

6755호실 (6)

연(鳶) 만드는 남자

이사를 와서 나를 위해 못을 박아준 수는 작업실에 잘 오지 않았다. 여자들보다 더 예쁘게 생긴 수는 세월이 지나도 그 고운 모습이 별로 달라지지 않아 놀라울 정도였다. 사람들은 장난처럼 수에게 물었다. 


‘사모님이 보톡스를 매일 놔 주시나 봐요?’


나는 수의 부인이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가 자신의 부인에 관해서 하는 이야기는 별로 들은 기억이 없다. 아들이 둘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아들들이 아버지를 닮았으면 대단한 미남이겠단 생각을 했었다. 키만 좀 더 크다면.


다른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데 반해 수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였다. 그 한두 번도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월요일이나 금요일이었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가 하는 일은 좀 달랐다. 수는 가끔 종이 박스에 물건을 싣고 왔는데 그 속에는 잔잔하게 잘린 대나무가지와 얼레, 실, 각종 종이, 풀, 가위 등이 있었다. 그는 얇은 매트를 깔고 주저앉아서 행복하게 연을 만들곤 했다. 작업실의 사람들은 수가 연 만들기에 진심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작업실이 비어있는 날 혼자서 연 만들기를 즐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가 얼마나 많은 연을 가지고 있는지는 나만 알고 있을 것이다. 수는 연의 종이를 색색의 수채화 물감으로 칠하고 꼬리도 정성껏 치장했는데 각각의 연은 달랐고 아름다웠다. 내가 본 것만 해도 10개는 넘는데 차 속의 박스 속에는 얼마나 많은 연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했다. 


오늘은 수가 올까 기대되는 월요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렸는데 그러나, 수가 아닌 젠이 들어섰다. 젠은 연달아 여행 스케줄이 잡혔다며 당분간 작업실엘 못 오겠다고 툴툴거렸는데 무슨 일인지 몰랐다. 


“뭘 보니? 잘 있었어?”


나를 올려다보며 말하는 젠은 취한 것 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상인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난 젠이 어디가 아픈가 걱정이 되었다. 젠이 소파로 들어가 누웠는데 문이 삐그덕거리며 수가 들어섰다. 수의 얼굴은 들고 온 박스 때문에 반쯤 가려졌다.

 

“누구 오셨나 봐? 문이 열려있네.”


수가 박스를 내려놓고 현관문을 열려있는 상태로 고정시켰다. 


“왓! 아, 선생님 오시는 날이구나. 아니 수!”


젠이 안쪽 사무실에서 하품을 하며 일어나 걸어 나왔다. 그런데 땀이 났는지 그녀의 뺨에 휴지가 붙어 있었다. 


“미안. 잠을 깨웠네. 그냥 주무셔. 나 연 좀 만들고 가려고.”


“아니, 아니. 잠들기 전이었어요. 그런데 수 오빠, 그림은 언제 그려요? 맨날 연만 만드는 것 같아.”


맞다, 수는 대개 오빠로 불렸다. 남자는 그가 유일했고 무엇보다 가장 연장자였다.

 

“자네가 잠만 자는 건 아니잖아. 그림도 그리지. 나도 그래. 연만 만드는 건 아니고 그림도 그려.”


수가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바닥에 매트를 펼쳤다. 


“그런데 집에 연이 엄청 많을 텐데, 그거 언제 다 날려요? 우리 다 같이 한 번 연 날리러 갈까? 우리 남편도 데리고 오고. 국일이나 싱 애들도 오면 좋아할 것 같은데?”


젠의 말에 수는 그냥 웃기만 했다. 젠은 의자를 당겨 도구를 챙기는 수 옆에 다가가 앉았다. 


“젠, 사람들이 연 날리러 가자고 하면 좋아할 것 같아?”


“그렇지 않을까요? 재밌잖아.”


젠의 반응에 그러나 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야? 수 오빠는 왜 그렇게 연을 만들어요? 어려서 연 만들다가 아버지한테 맞았어요?”


젠의 장난스러운 말에 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수의 웃음소리는 뻥튀기 과자처럼 공허했다.


“애들이 어려서는 곧잘 따라다녔지. 지금은 손자와 날려. 가끔이지만.”


“그러니까 손자랑 날리는 연이 뭐 이렇게 많이 필요하냐고요? 그게 궁금한 거지. 다들 궁금해해요. 수 오빠의 연 사랑에 대해서.”


젠은 질문을 던져놓곤 천천히 자신의 이젤로 가서 앉았다. 수가 펼쳐놓은 자리가 넓어서 젠은 이젤을 최대한 앞으로 끌어당겼다. 


“뭐 그리려고 그래? 또 꽃인가? 봄이니까.”


수가 대나무살을 정리하며 시선을 들지 않고 물었다. 


“그렇죠. 벚꽃이 휘날리는 동산에서 뛰노는 딸을 그리고 싶어요.”


수가 손길을 멈추고 젠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다들 왜 그래? 내가 딸 그린다니까 이상한가?”


“아니, 그게 아니고. 좋은 생각이야. 아이가 있으면 굉장히 생동감 있잖아, 그림이.”


수는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하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런데 수 오빠 그림은 왜 다 사막이야? 이젠 바뀔 때도 됐잖아?”


젠의 말을 듣고 보니 수의 그림은 아주 단순한 색채와 선 몇 개로 이루어진 게 생각났다. 지금도 수의 이젤에는 거의 흰색에 가까운 사막에 분홍색 줄기가 몇 개 보일 뿐이었다. 저걸 사막이라고 보는 젠도 이상했지만 항상 수는 사막을 그린다고 했기 때문에 나도 그의 그림은 다 사막으로 보였다. 


“그림에 이유가 있나?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거지.”


수는 여전히 연을 만드느라 열중하고 있었고 젠은 물감을 짜고 있었다. 


“아하, 연도 이유가 없다? 만들고 싶으니 만든다 뭐 이런 연결이네요.”


“유레카! 젠은 역시 스마트해.”


수가 모처럼 유쾌하게 웃었다. 수가 웃는 모습은 소년 같았다. 비록 머리카락엔 서리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 회색빛이 날카로운 수의 선을 조금 무너뜨려 부드러웠다. 


“그런데, 우린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을까요? 제가 여기 올 때면 동네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팔자 좋은 여편네가 지나가네 하는 눈길로 저를 보는 것 같아서 좀 불편하더라고요. 여기가 넉넉한 동네는 아니잖아요?”


젠의 이야기에 수는 답이 없었다. 젠이 캔버스 옆으로 내려다보니 가오리연의 살을 휘느라 정성을 다 쏟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종교의식처럼 경건해 보였다. 젠은 휴대폰을 꺼내 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카메라 작동 소리에도 수는 꼼짝 않고 집중했다. 


“오, 한 건 건졌어. 초상권은 침해 안 해요. 나 이거 자료로 좀 쓸게요.”


수가 허리를 펴고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젠이 사진을 들어 보였다.


사진은 역광이어서 수의 얼굴이나 자세는 선으로만 어렴풋이 드러나 있었다. 


“자료? 오케이. 젠이 써주면 영광이지. 그럼, 오늘 연의 이름은 젠이라고 할까?”


어느새 수의 가오리연에는 옅은 분홍의 물감이 흩어졌고 꼬리가 시작되는 아래쪽에는 만화 캐릭터 같은 머리 땋은 여자애가 뛰고 있었다. 여자애는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연 자체가 봄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연의 꼬리는 노랑연두와 밝은 녹색으로 번지듯 칠해져서 마치 녹색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연의 가장자리에는 ‘Zen'이란 붉은 글씨가 보일 듯 말 듯 새겨졌다. 젠은 연을 보며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그녀가 이젤에 붙여놓은 벚꽃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 주신다고요? 그 연을?”


흥분한 젠의 음성과 다르게 수는 차분했다.


“날리고 싶은 사람에게 줘야지. 바람 좋은 날 남편과 함께 한 번 나가봐. 사는 동네에 언덕 있지?”


젠은 감격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젠. 날아오르지 못하는 꿈처럼 무거운 건 없어. 연을 날리든 아니든 난 날아오르는 꿈을 만든다고 생각해. 언제고 내가 날리고 싶은 그 연들을 하나씩 날려 볼 거야. 얼마나 멋질까 생각하면 너무 흥분돼. 그래서 연을 만들어.” 


“아, 그렇군요. 그런데 아무도 이해해주진 않고. 멋져요.”


젠의 말에 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수 오빠, 연 그림 너무 좋은데요? 이런 실력자가 왜 사막만 그리실까?”


“사막은 실력이 없는 사람이 그리는 건가?”


수가 웃으며 하는 말에 젠은 자기 이마를 쳤다.

 

수는 방금 만든 연과 얼레까지 함께 종이 가방에 챙겨 젠에게 전했다. 

짐을 정리한 수가 젠에게 먼저 간다고 나간 시각은 해 질 무렵이었다. 열어놓았던 문을 닫아주고 수는 떠났다. 


“그 나이까지 꿈을 좇는구나. 그런데 시계야. 왜 마음이 서글프니? 수가 만든 연을 다 날리는 그땐 죽을 때 아닐까? 아니, 다 날릴 수나 있을까?”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듯 젠은 출입문을 향해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젠이 더 측은해서 수가 두고 간 종이가방만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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