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 중 1
“시계 왜 저러냐? 율, 고장 났나 봐.”
시침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꾸 처지는 내 모습에 싱이 놀란 듯 소리쳤다. 소리칠 일도 아닌 것이 나도 30년을 움직여 왔으니 고장 날 만도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도 느려지거나 멈추면 건전지를 갈아 끼우는 것으로 회복되었으나 이번은 건전지도 안 통했다. 나도 내 몸이 쇠로 만들어진 듯 무거웠다.
“목수한테 연락해봐야 하지 않을까? 무한 AS라고 하지 않았니?”
“그렇긴 해도 워낙 시간이 오래 지나서 해 주려나?”
율이 손 전화 목록을 검색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전시회 때마다 목수가 오지 않았어? 내가 볼 땐 아무래도 너한테 관심이 있어 보이던데”
싱이 작은 소리로 율의 귀에 속삭였다. 싱은 수술 후 목소리에 각별히 주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율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 없이 통화를 시작했다.
“가지러 오신다고요? 작업실로요? 글쎄 여기 주소가......”
갑자기 전화하던 율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마도 목수가 온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과연. 이렇게라도 만나고 싶은 모양이네. 강원도에서 온다는 얘기야?”
싱이 놀리듯 흥흥거리며 붓을 골랐다. 싱의 팔레트에는 색색의 물감이 이미 자리 잡았다.
“아이 씨, 그게 아니고 서울에 와 있대요. 잠깐 들러서 일단 보고 가져갈 수도 있다는데요?”
짜증스럽게 얘기했지만 율의 기분이 그다지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좋아라 하는 기색은 전혀 아니었으니 율은 목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싱,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저는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율이 자리를 피하려는 게 맞았다. 오늘 아무런 스케줄도 없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으나 싱에게 일러바칠 방법이 없었다.
“무슨 소리야. 같이 있다가 고치고 가자. 목수도 목수지만 시계는 고쳐야지.”
결국 율은 목수가 도착한 오후 4시 무렵까지 잡혀 있었다. 나는 목수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를 알아보았다. 이들의 마지막 전시회가 벌써 7년 전이었으니 정말 오랜만에 목수를 보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전보다 조금 더 마른 것 같은 그는 듬성듬성한 수염을 기르고 있는 데다 머리를 여자처럼 길게 뒤로 묶어서 누가 봐도 범상치 않았다. 그러나 내가 처음 봤던 순한 눈매는 여전했고 목소리도 그랬다. 내가 목수를 잊을 수 없는 것은 나를 만들어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글쎄 기계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나무가 많이 마르고 뒤틀려서 몸판을 좀 손 봐야겠는데요?”
목수는 거친 손으로 나를 세심하게 만지고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때서야 나는 내 몸이 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가지고 가지요. 고쳐서 갖다 드리겠습니다.”
목수는 율에게만 말을 해서 싱은 없는 듯했다.
“가만, 저 목수님. 전시회 때마다 오셨는데 제대로 인사를 못했어요. 저는 싱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시나요? 그냥 지나가다 들르시진 않은 것 같아서요. 오늘처럼 말이죠.”
말을 하는 싱은 차분했으나 가만히 있는 율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인사동에 생각보다 자주 나옵니다. 도자기를 가지고 올 때도 있고 지인들 전시회도 있고 해서요. 우연히도 갈 때마다 선생님들 전시회가 있더라고요. 벌써 열 번쯤 하셨죠? 매년은 아니지만 꾸준히들 그리시는구나 하고 들렀어요. 그런데 몇 년 동안은 전시가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물론 코로나의 시간도 있었지만.”
목수의 말에 싱은 다소 실망스러운 낯빛을 감추지 않았다.
“싱,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시계는 제 헝겊 가방에 넣어 드릴게요. 그럼 되죠?”
율이 가방을 가지러 옆의 방으로 향하자 싱이 목수에게 다가왔다.
“혹시 몰라서 묻는데, 정말 몰라서 묻는데요, 쟤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닐까요? 제 느낌에는 좀 그렇습니다만.”
싱의 말에 목수는 한 발 물러나며 껄껄 웃었다. 그의 웃는 모습은 마른 얼굴에 주름을 만들어 마치 할아버지 같았다. 웃음소리에 가방을 가지고 나오던 율이 주춤했다.
“아, 알고 계셨구나. 한 분만 모르시는 것 같네요. 그런데 그 한 분의 의사가 제겐 중요하니까요.”
목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율이 가방을 건네주며 사무적으로 말을 읊었다.
“그 한 분이 싫답니다. 이제 가시죠. 가방에 넣어가세요. 가방은 안 돌려주셔도 돼요.”
율의 말에도 목수는 아무렇지 않았다. 민망해서 볼이라도 붉히거나 화가 나서 대답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마치 남의 얘기인양 멀쩡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제 마음이니까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둘의 대화에 싱은 붓을 입에 물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목수를 배웅했다. 율은 목례만 했을 뿐 더 이상의 말도 동작도 없었다.
율의 가방에 담긴 나는 목수의 걸음에 맞춰 흔들거리며 그의 밴에 태워져 강원도로 갔다. 목수의 진흙덩이가 진흙이 아닌 양 직육면체 모양으로 포장되어 실려 있었다. 엄청나게 무거운 흙덩이와 함께 나는 운동장만큼이나 큰 목수의 작업장으로 옮겨졌다. 목수는 내가 들어있는 가방을 율처럼 어깨에 걸고 들어와 테이블에 풀어놓았다. 내가 놓인 테이블에서는 커다란 천창이 보였고 먹물처럼 까만 밤하늘에 황홀할 정도의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있는 나를 목수는 가만히 쓰다듬었다.
“수고 많았다. 너를 만들어 보내고 참 많이 생각났었어.”
느닷없는 고백에 나는 눈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나를 만든 목수는 나를 잊지 않았다고 했는데 나는 한 번도 목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저 율과 작업실의 몇 식구들만 있었다. 그렇다면 목수는 율이 아니라 나를 보러 전시회에 왔던 것일까? 전시회마다 나는 참석했으니 말이다. 그럴 리가.
뭉클했던 마음을 다스리고 주변의 벽을 둘러보니 익숙한 그림이 눈에 띄었다. 카메라로 찍어서 A4용지에 출력해 액자로 해 놓은 그림은 분명 율의 것이었다. 사진을 보자 이걸 율에게 일러야 하나 고민이 생겼지만 그들의 전시장에서 촬영은 자유였다. 율의 그림은 초창기부터 7년 전에 했던 열 번째 전시회까지 나란히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수의 그림인 사막이 달랑 하나 역시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이 목수 아저씨 뭐지?’
율의 그림사진까지는 이해가 되었으나 수의 것까지 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수의 그림사진은 아주 초창기의 것이었다.
목수는 나를 놓아두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된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바닥은 미끄러울 정도로 다져진 황토 흙이었고 넓은 공간의 끄트머리에 방이 하나 있었다. 작업장의 가장 큰 덩치는 가마였는데 가마와 방 사이에 작업대와 평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평상 위에 다기와 찻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응접실로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어떤 가구도 없었고 한쪽에 도자기 성형을 위한 물레 두 개가 제법 깨끗한 자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작업장 구석에는 진흙과 도자기들과 목각을 위한 나무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어서 내가 아는 6755호 작업실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더욱이 벽에 걸린 목각용 연장과 전기용품들은 공장의 느낌까지 있었다. 넓은 공간과 장비들에 주눅이 든 내가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처음 본 천창이었다. 강원도의 별은 특별하다더니 천창을 통해 본 별은 정말 그러했다. 사실 별 이야기도 율이 한 것인데 혹시 율이 여길 와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율이 목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하긴 율은 여행을 좋아하니 강원도를 얼마나 돌아다녔겠는가. 내가 모를 뿐이지.
수의 그림사진에 대한 생각을 잠깐 잊고 있을 때 목수가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아이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듯 뒤뚱거렸다. 갑자기 나는 경기하듯 몸이 굳는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완벽한 가정의 그림이었으니까. 뭐야? 유부남이 나의 율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분노를 나타낼 수도 없는 처지의 몸을 가졌지만 나의 분노와 배신감은 천창을 뚫고 하늘의 별에까지 닿을 것 같았다.
“이거구나. 엄마가 좋아했다던 시계가. 그런데 나무가 많이 상했네.”
여자는 아이를 안아 들고 나를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눈동자가 별이 빛나던 밤하늘만큼이나 검었다.
“삼촌이 직접 가져온 거야? 그 선생님은 어때?”
여자는 재밌는 표정으로 목수를 놀리듯 말했다. 그때서야 나는 여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전시장에서 봤던 목수의 여동생. 첫 전시회에서 마치 소녀같이 보였던 그녀는 지금도 그대로였다. 다만 목수를 오빠가 아닌 삼촌이라고 불렀다. 30년 전의 여동생과 똑같이 생긴 저 여자는 조카란 얘긴가? 그럼 여동생의 딸이란 얘긴데.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적어도 목수의 여동생도, 아내도 아니란 얘기였다. 그녀는 어디에 있지? 지금은 많이 늙었겠지만.
“산이 내려놔. 너, 손목도 안 좋은데.”
목수의 말에 여자는 아이를 내려놓고 내가 놓인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았다. 아이는 뒤뚱거리며 걷다가 넘어지다가 해서 여자를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게 했다.
“위험한 것 없으니까 넘어져도 놔둬. 알아서 일어나게.”
그러나 목수의 말에도 여자는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나는 목수에게 어떤 연유로 그들이 같이 사는지 묻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삼촌, 저녁 안 먹었지? 별채로 와, 할머니가 옹심이 끓이시더라고.”
아아, 그렇구나. 여긴 또 다른 가족인 할머니도 있구나. 정리하면 목수는 자신의 엄마와 아이 딸린 조카딸과 함께 살면서 옹기도 굽고 목공도 하며 사는 이른바 가족사업장의 운영자였던 모양이다. 나는 갑자기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율은 이런 사정도 모르면서 목수를 물리쳤으니 얼마나 안목이 훌륭한가. 설사 목수가 좋다 해도 이런 복잡한 가족관계를 감당할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율이 목수를 거절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 밤이 지나고 온갖 새들이 떠들어대서 도저히 늦잠을 잘 수도 없는 작업장에서 난 깨어났다. 천창을 통해 아침햇살이 수직으로 떨어지고 옆 창을 통해서도 눈부신 빛이 가득 들어와 작업장은 대낮 같았다. 목수도 벌써 일어나 나무를 고르는데 아마 나를 복제할 어떤 목재를 찾는 것 같았다.
“아저씨, 언제 불 지피세요? 우리 애들 좀 같이 넣어 주시라고요.”
처음 들어보는 남자의 소리가 문을 통해 먼저 들리더니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들어섰다.
“또 작업한 모양이네. 슬슬 도자기에 맛 들이다가 업종 변경하는 거 아냐?”
목수는 쳐다보지도 않고 다만 웃음기를 얹어 남자를 맞았다. 남자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게 빚은 진흙 컵을 다섯 개 꺼내 놓았다. 다섯 개의 색깔이 다 다른 컵은 아직 유약을 뒤집어쓰기 전이라 모래처럼 건조했다.
“여기 와서 하라니까. 가져오다 깰 수도 있어.”
목수가 물건을 받아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옮겨 놓으며 싫지 않은 소리로 채근했다.
“아저씨는 괜찮은데 산이 엄마가 싫어하는 것 같아서요.”
거대한 남자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이유를 설명했다. 아마도 목수의 조카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잖아. 내 조카가 좀 예뻐? 자네라면 나는 당연히 환영이지. 은혜도 자네를 싫어한다기보다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있어서인 것 같아. 산이 아빠 문제도 있고 자기 엄마에 대한 정리도 아직 제대로 되었다고 보긴 어렵지.”
은혜. 목수의 조카 이름이었다.
그럼 은혜의 엄마가 목수의 여동생이란 얘기였다. 내가 여동생을 본 기억은 초창기 서너 번까지의 전시회장에서였으니 그 이후엔 안 온 것이 확실했다. 정리하면 목수의 여동생은 은혜를 낳았고 그 딸은 산이란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당연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상황만으로도 난 가슴이 답답해졌다. 인간들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 속에 살아가는가. 삼십 년을 율만 바라보는 목수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목수의 여동생도, 보아하니 남편 없이 아이를 양육하는 조카도, 그 여인을 좋아하는 덩치 남자도 다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씩 있구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강원도는 밤하늘의 별만 아름다운 곳인 것 같아 시름에 빠져 있을 때 거위 두 마리가 특이하게 쉰 소리를 내며 작업장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