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 중 2
나를 데려온 목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며칠을 그대로 작업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살피기만 했다. 사실 목수가 어떻게 할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나의 몸판을 완전히 바꾼다면 과연 정체성이 남아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긴 했다. 만일 내가 가지고 있는 6755호실 작업실의 모든 기억이 리셋된다면 얼마나 슬플 일일까. 나의 이런 생각을 목수는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어떤 강력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재밌는 일은 내가 온 이튿날 아침에 본 거위는 매일 아침 작업장에 와서 돌아다니다 가곤 했다. 나는 누운 채로 거위 두 마리가 돌아다니는 풍경도 보고 산이라는 어린 아기가 거위를 쫓는 것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 모든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다웠으나 거위의 소리는 듣기가 괴로운 참 특별한 음색이었다.
내가 온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은혜라는 조카가 들꽃을 한 아름 꺾어 들고 들어섰다. 그녀에게서 풀숲의 싱그러움이 짙게 묻어 나왔다.
“또 다녀왔니? 산이는?”
“할머니랑 자요. 피곤했나 봐.”
은혜는 질그릇 항아리에 꽃을 꽂았다. 항아리에 수북이 꽂힌 들꽃은 그대로 그림이었다.
언젠가 작업실에서도 저런 오브제를 놓고 그림을 그렸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삼촌, 나무 표면을 조금 정리하고 실금 간 틈은 송진으로 메우는 방법은 어때? 아니면 프로폴리스나”
은혜가 꽂아놓은 들꽃을 이리저리 재배치하며 목수에게 하는 말은 분명 내 얘기였다. 가까이 있는 은혜에게서 풀 냄새와는 다른 익숙한 향기가 났다. 분명히 과거에 맡았던 것 같은 그 향기는 그러나 바람같이 아무런 흔적이 없이 기억뿐이었다.
“그렇잖아도 오늘은 시계에 손을 대 보려고 해. 얼른 고쳐서 갖다 드려야지.”
은혜의 제안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목수는 나를 들여다보고 말했다.
“언제 갈 건데? 나도 따라가도 돼요? 산이가 이젠 제법 할머니와 잘 지내거든.”
들꽃 손질을 끝낸 은혜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풀어 다잡아 묶으며 물었다. 머리를 깔끔하게 묶은 은혜는 30년 전 첫 전시회에서 만난 목수의 여동생과 너무 흡사해서 난 시간을 초월한 사람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인사동 납품 날짜 맞춰서 가려고 하는데 굳이 네가?”
목수는 조카의 동행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엄마가 좋아했던 그림 작가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아니면 그림이라도 있을 거니까.”
은혜의 말은 나를 잠깐 멈추게 했다. 엄마가 좋아했던 그림이라면 수의 그림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목수의 작업장 벽에 붙어 있는 한 장의 사막 그림사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많이 낡았지만 모래가 알알이 뿌려지고 사구의 상징이 확실한 그 그림사진은 수의 처음 것이었으니까.
“은혜야. 이젠 엄마 보내주자. 벌써 십 년이야.”
목수의 소리가 낮고 작았다. 두 사람 사이에 적막한 공기가 떠돌았다.
“산이 가졌을 때 굉장히 엄마가 보고 싶었어. 산이 낳을 때도 그랬고. 그런데 삼촌은 계속 내 기억을 차단하려고 하는 것 같아. 그런데 삼촌 그거 알아?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환자가 아니라 예술가였어. 중 3 때 엄마랑 같이 갔던 몽골여행을 잊을 수 없어. 고비 사막을 엄마가 멍하니 바라보곤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삼촌은 모를 거야. 타고 가던 러시아제 지프가 고장 나서 사막 한 복판에 멈췄는데도 엄마는 아무런 불평이 없었어. 다른 사람들이 엄마를 이상하다고 했지만 난 그런 엄마가 멋있었어. 하지만 엄마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는 난 아직 이해가 안 돼. 그 여지를 어디에서든 찾아보고 싶은 거야.”
은혜는 먼 곳을 보며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난 찾을 수 없었지만 분명히 멀었다.
“은혜야, 그런데 엄마와 그 선생님 그림과는 별개야. 엄마가 그분 그림을 좋아했을 뿐이고 나도 한 두어 번 만나본 게 다야. 한동안 전시를 안 하셨어. 다시 시작하신 게 십 년쯤 전인 것 같아. 그러니 그 선생님은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지.”
다시 수의 그림이 생각났다. 수는 삼십 년 전이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래언덕 아니면 사납고 거친 암석이 드문드문 있는 벌판만 그려댔다. 내 기억으로는 수가 잠적했던 이후의 그림은 더욱 황량했다. 그런데 목수의 여동생이 모래벌판을 찾아 여행을 했다는 뜬금없는 정보는 별 생각이 다 들게 했다. 둘이 별자리라도 같은가? 헤어진 쌍생아라기엔 나이 차이가 많고, 혹시 목수 모르게 만나기라도 한 것일까? 궁금증은 증폭되어 그렇잖아도 쇠약한 몸이 터질 것 같았다.
“알았어, 삼촌. 난 그냥 엄마가 단번에 빠져든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그분의 그림을 더 보거나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풀어지지 않는 단단한 의문이 해소될 것 같아서. 물론 전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두렵기도 해. 그래도 한 번은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언제고.”
질항아리의 들꽃을 만지작거리며 풀 없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은혜를 목수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저렇게 원하면 데려가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 하는 내 생각과 달리 목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은혜는 괴상한 소리로 쉭쉭거리는 거위를 몰아내며 함께 나갔다. 거위는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귀여웠고 아침 햇살에 빛나는 우윳빛 깃털이 아름다웠다. 어쩌면 이 작업장의 마당에서는 내가 만들어지던 30년 전부터 거위가 있었을까. 계속 알을 낳고 또 낳아 대를 이어 거위가 있어왔을까. 그래서 오래된 과거의 전시회에서 흰색 털옷에 빨간 앵클부츠를 신은 율의 모습이 최초의 거위를 떠올리게 했을까. 기억은 가물거렸으나 이번에 본 거위가 처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봤던 기억이 까닭 없이 강렬했다. 나 같은 나무시계의 기억도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갈무리되어 있는데 인간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은혜나 목수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억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을 것이고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은, 슬프거나 적어도 서글픈 사연을 담고 있을 것이란 추측 속에서 나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예, 다음 주 수요일에 들르겠습니다. 수리는 잘 되었어요. 앞으로 삼십 년은 끄떡없을 겁니다.”
목수의 통화 소리가 나를 깨웠다. 나를 갖다 준다는 얘기니 통화 상대는 율이 맞을 것이다. 드디어 나를 고친 것을 알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율이 기억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몸에 뭔가 새로운 긴장감이 느껴졌고 주위에 감도는 소나무 향이 정신을 신선하게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질항아리에 꽂힌 들꽃이 제법 시든 걸 보니 적어도 며칠은 지난 모양이었다.
밖에서 목수를 부르는 소리에 그는 나갔고 나는 서창으로 드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 볕이 드는 창에는 옅은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으니 거위들이 오진 않을 것이다. 거위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오곤 했으니 말이다. 거위가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잠시 쓸쓸해졌다.
벽에 걸린 단 한 점뿐인 수의 낡은 그림사진이 율의 것과 함께 노을 속에서 따스했다.
목수가 말한 수요일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제 난 곧 이곳을 떠나 다시 6755호실의 벽에 걸리게 될 것이다. 그동안 그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젠은 지금도 쪽잠을 편히 자고 일어났을까. 수는 연을 만들고 가만히 앉았다가 사라지곤 했을까. 국일은 여전히 일찌감치 와서 소나무를 그리다 커피를 마셨을까. 밍은 그 후에 안 왔을까. 율은 맥주를 들고 와서 마시고만 갔을까. 싱이 율에게 노래를 불러줬을까.
얼마를 떠나 있었는지 몰랐지만 난 그들이 그리웠고 각자의 루틴이 생각났다. 그들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시계를 사다가 걸었을까도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노을과 함께 지내다 보니 까만 밤이 왔고 천창으로는 예의 빛나는 별들이 들어왔다. 천창으로 쏟아지는 별들과 지내는 시간도 이젠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으로 별을 환영했다.
“너랑도 헤어질 시간이네.”
잠옷 같은 파자마에 얇은 스웨터를 걸친 은혜가 들어와 시든 들꽃이 든 질항아리를 안고 나갔다. 나는 헤어진다는 것이 들꽃인지 나인지 잠시 헷갈렸다. 잠시 후 빈 항아리를 들고 온 은혜는 항아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를 보다가 했다.
“어두운 데서 뭐 하니? 산이가 찾아.”
목수가 뒤이어 들어와 울음을 삼키는 아이를 은혜에게 안겨줬다. 아이의 볼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힌 것으로 보아 잠자다가 엄마를 찾은 모양이었다.
“꽃 항아리는 내일 비워도 되는데 굳이 이 밤중에 와서 우리 산이를 울려요.”
목수가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냥 오늘밤에 비워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시계도 가져간다면서요.”
아이를 어르며 하는 은혜의 목소리엔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약속할게 은혜야. 이왕이면 그 선생님도 만나는 게 좋지 않겠니? 그러려면 미리 약속을 해야 하니까. 내가 이번에 가서 약속을 받아가지고 올게. 굳이 피하시진 않을 거야.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 좀 기다려. 애기 잔다. 산이 가서 뉘어라.”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다시 색색 잠이 들었다. 목수의 말을 듣자 은혜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불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얘기를 했지만 어디선가 들어온 빛이 표정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안고 나갔다. 목수가 은혜를 보내고 의자를 돌려 앉자 그의 등으로 달빛이 부서졌다. 아, 강원도 달이구나.
달을 등지고 앉은 목수의 표정은 어두워서 그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목수가 방향을 틀어 수의 그림이 있는 벽면을 바라보는 데 그곳도 이미 어둠이 차지하고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목수를 둘러싼 어둠과 실내를 어스름하게 비추는 달빛이 갑자기 낯설었다. 그러다가 6755호실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즐거워졌다. 내가 본 강원도의 별과 아침햇살을 받은 거위와 목수의 등에 쏟아지던 달빛과 소담하고 아름다우나 눈물 날 것 같았던 질항아리의 들꽃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하고픈 말이 많아 공연히 마음이 달떴다. 그러나 누가 나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나는 나무로 만든 시계일 뿐이지만 내가 사람이라고 한들 그게 가능한 일일까? 공연히 아릿한 마음속으로 캄캄한 밤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