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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 사람

by 안개인듯

사위에게서 전화가 온 시각은 아침 일곱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변덕이 죽 끓듯 하던 봄 날씨가 드디어 함박눈을 퍼붓던 유난한 아침이었다.

딸의 출산까지는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아 있었고, 남편이 요양원에 들어간 지는 한 달도 되지 않은 터라 모든 아침 전화는 불안했다.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운전해서 가기에는 복잡한 서울의 중심을 관통해 가기가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출근 시간이었다.

딸과 사위는 결혼할 때만 해도 아기를 갖지 않기로 한 딩크족이었다. 그 약속은 삼 년간 지켜져서 나는 그러려니 했다. 나나 사돈댁이나 아이들 일에 관여하지 않았고 특별히 아이에 관해서는 암묵적인 함구였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 사위는 아이를 원했다. 딩크족은 분명히 딸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일 텐데 사돈댁이나 나나 별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 문제로 이혼을 거론할 만큼은 아니었다. 내 생각에도 아이 없이 사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딸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겪어야 할 어려움이 싫었다.

‘나 같은 딸 낳을까 봐 난 애 못 낳겠어. 키울 자신도 없고.


딸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몇 번이나 그런 얘길 했다.

그랬던 애들이 시험관으로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듣기에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신인류인 게 맞아.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기뻤고 그런 결정을 하고 열 달을 품어온 딸이 대견했다.

임신 중기부터 조산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병원에 입원도 했었던 터라 날수만 제대로 채워서 태어나길 바랐다. 그런데 그 마지막 일주일을 못 버티다니.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분만실에 들어간 상태여서 난 구경꾼처럼 그저 근처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기를 낳지 않는 시대라지만 분만실 근처는 새로 태어날 아기를 맞으려고 기다리는 사람으로 앉을자리 하나도 없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여전히 아기는 태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지났을까 사위로부터 병원 카페에서 기다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일단은 제왕절개 하러 들어갔으니 의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 생각하고 난 카페로 내려가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카페도 사람들이 들어차 있어서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사위가 허둥대며 내려왔다.

“루아는? 아기는?”

내 입에서는 딸의 이름이 먼저 튀어나왔다.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기는 아들이고 몸무게가 2.66kg이래요. 좀 작긴 하지만 인큐베이터 들어갈 정도는 아니고요. 여기 사진 있어요.”

사위는 휴대폰을 열어 사람인지 뭔지 모를 아주 쪼그만 생명체를 보여줬다.

“루아는 괜찮냐고.”

“아! 루아는, 루아는 괜찮아요. 아직 깨어나지 않았대요.”


“깨어나지 않았는데 괜찮은 지 어떻게 알아?”


평소엔 곱상이던 사위의 얼굴이 밉상이었다.

내 말에 사위는 허둥지둥 다시 분만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정신이 없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어떻게 저렇게 혼을 빼놓고 다니나 싶어 혀를 찼다.

애를 누가 낳은 건지. 원.


커피를 다 마셔갈 즈음 사위에게서 다시 사진과 전화가 왔다. 사진은 아까 보여준 쪼그만 생명체였고 전화는 집에 가라는 전갈이었다.

‘루아가 잠들었으니 댁에 돌아가 계셔요. 전화드릴게요.’

내가 왜 왔나 모르겠다. 딸도 아기도 못 보고 허둥대는 사위를 보러 온 꼴이네.

병원을 나서서 지하철로 향했다. 출근 인파가 빠진 지하철은 한산했고 나 같은 노인들만 경로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다른 곳이 비어 있어도 경로석을 찾아 앉는 노인들을 보며 씁쓸했다. 그러나 어쩌면 나처럼 경로석이 아닌 일반석을 차지하는 것이 민폐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그랬다던가. 제발 출퇴근 시간에 노인들 좀 승차하지 말아 달라고.

기가 막힌 소리에 욕이 입술 근처까지 나왔지만 꾹 다물었었다.

그래. 이해하자. 지옥철이라며.

그러다가도 부아가 치밀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 스스로에게.


지하철에서 나오자 나의 아파트까지 가는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오늘은 외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첫 식사는 오전 11시쯤인데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근처 브런치 카페를 찾아 샐러드와 커피를 시켜 놓고 전화기를 열었다.

화면 속의 아기는 너무 작았지만 다시 찬찬히 보니 제법 사람 같았다.

‘루아는 깨어났어요. 장모님. 아기는 일단 신생아실에 있는데 아직 좀 두고 봐야 한대요.’

문자로 훅 들어온 그 문장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뭘 두고 봐? 어디가 덜 만들어졌나?

그러나 차마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중에 전화로 물어보자.

식사로 나온 샐러드와 빵을 우적거리며 먹는데 내가 동물 같았다.

딸은 배를 찢고 아이를 낳느라 금식일 텐데 어미라는 것이 밥을 먹고 있구나.

한숨을 푹 쉬고 물 마시 듯 커피를 들이켰다.

다시 전화기를 열어 아기 사진을 보았다. 신생아들이 다 거기서 거기란 걸 알면서도 특별했다.

삼십육 년 전 어느 소도시의 조산원에서 나는 루아를 낳았다. 루아는 예정일에 정확히 양수를 터뜨렸다. 그러나 양수만 터졌을 뿐 나올 기미가 없어서 결국 분만 유도주사를 맞아야 했다. 당시에 남편이 선택한 곳은 병원이 아닌 조산원이었는데 그 이유가 각별했다. 조산원의 산파가 수간호사 출신의 목사님 사모님이라는 것이었다.

“분만은 경험이 제일 중요한 거야. 신앙 좋은 사모님이시고 경험이 엄청 많은 분이니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그 얘길 할 때마다 루아는 분통을 터뜨렸다.

아빠는 생명보다 신앙이 우선인 거야? 의사 맞아?

남편은 믿음이 좋은 의사였다. 그렇다면 믿음이 좋은 의사에게 아내를 맡겨서 아이를 낳게 해야지 웬 조산원이란 말인가. 하긴 남편 병원엔 믿음 좋은 산부인과 의사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다행히도 정말 그 산파는 노련하게 아이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루아를 낳을 때 곁에는 남편이 아니고 친정 엄마가 있었기에 그런 전달을 해 주었다. 남편은 그놈의 당직 때문에 병원에 가야 했다. 당시 아빠들의 출산휴가는 하루였고 그나마도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직장은 많지 않았다. 산모는 조산원의 산파나 산부인과에서 알아서 아기를 낳는 시절이었다. 남편이 탯줄을 끊네. 분만실에 같이 들어가네 하는 소리는 훨씬 이후에 일어난 새로운 풍경이었다.


루아를 출산하자마자 집으로 간 나는 모든 일들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보에 싸여 있는 작은 생명체는 숨 쉬는 것부터 재채기, 트림, 방귀까지 모든 것을 나와 다르지 않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잠자는 게 일이었던 신생아가 너무 이상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콧김을 확인하고 아이의 체온을 손등으로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 작은 사람이 어디에서 왔나.

그런데 오늘 그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현실이었고 나는 그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딸이 고통 속에 아이를 낳은 것은 이제 고스란히 잊혔고 내 시선은 정말 쪼그만 사람에게 온통 꽂혀 있었다.

아, 사위가 이랬겠구나.

가슴속으로 뭉클한 무엇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내가 딸을 낳았을 때 느꼈던 그런 생경함과 경이로움, 두려움과는 달랐다. 한없이 따스하고 보드라운 끝을 알 수 없는 온기였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할머니가 되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그다지 되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희열과 샘솟는 애정이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사진 속의 그 쪼그만 사람에게 쏟아졌다.


“난데, 자네 밥은 먹었나?”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 내 음성이 상냥했다.

“아뇨, 아직요. 그런데 장모님. 지금 아기 보고 왔는데 너무 예쁘고 신기해요.”

전화기 속의 사위 음성은 살짝 흔들리기까지 했다.

나보다 네 놈이 낫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시던 커피를 들이켜곤 일어섰다.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공원으로 나가려다가 그래도 남편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 생각을 바꿨다.


이 쪼그만 사람이라도 보여줘야지. 새 사람인데.


멀리 남편이 있는 요양원의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 옆의 상록수엔 잔설이 남아 있어 일부는 가려졌지만 알아볼 수는 있었다.

조금 적응이 되었으려나.

한 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남편은 여전히 섬망 증상에 시달렸다.


그래도 알려줘야지.

나와 남편이 아이를 낳아 기르던 숨 가빴던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 생명이 대담하게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감동이 달랐다.

다시 느끼는 생명의 윤기와 빛남과 평안함이. 그 새로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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