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실버

시작하며

by 안개인듯

벌써 실버아파트에서 살아온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떠나고 싶어 계속 다른 동네를 기웃거렸으나 돈이 허락되지를 않았다.

재밌는 것은 이곳에 들어온 것이 돈 때문이었는데, 나가려니 여전히 돈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나이 먹도록 상식적인 돈의 규칙에 길들여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할 수없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한 일이기도 했다. 이사란 얼마나 복잡하고 피곤한 일인가. 더욱이 노인들에겐.


하여튼 다시 주저앉은 이곳에서 여전히 실버아파트 얘길 써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단 결론을 내렸다.

물론 계속해서 실버아파트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같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곳이나 인간이 사는 곳은 매일의 삶이 다르지 않은가.

기적적으로 모든 조건이 같다 해도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므로.


다만 이제는 실버아파트 이야기보다는 나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나는 곧 국가가 인정하는 실버의 나이에 도달할 예정이고 그 기간을 실버기라고 부를 것이다.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하듯이 노년기라는 버젓한 우리말 (엄밀히 말하면 한자어)이 있지만 굳이 실버기라고 하는 까닭은 다 아는 것이다.

욕이나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모국어보다는 외국어가 좀 덜 미안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노년기란 말이 욕이나 부정적이란 얘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느껴질까?

그리고 노인들에게 실버와 노인 중에 어느 것이 좋은가를 물으면 실버를 택할까?


국민 여론 조사를 한 바는 아니지만 우리 동네 여론은 그랬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네 여론을 따라 나의 노년기가 아닌 실버기를 기록하는 실버 일지를 시작한다.


아마도 이것은 베이비붐 1세대의 비슷비슷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많은 베이비부머 중 하나가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현재를, 더욱 노쇠해질 날을 기록한다고 해서 누군가 화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해도 할 수 없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