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풀 메이크업하고 눈 크게 뜨고 머리도 세팅 좀 하고 가. 난 그냥 찍었더니 할머니도 그런 할머니가 없더라고.”
얼마 전 여권 사진을 찍었다는 후배가 한 말이었다.
하긴 나도 얼마 전에 문자를 한 통 받았다. 해외여행 가려면 여권을 연장하던지 갱신하던지 하라고 친절하게도 정부에서 온 연락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정부는 온갖 정보를 알려주면서도 시시콜콜 간섭하는 얄미운 시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이젠 시간이 있어도 귀찮아서 여행은 못 가겠다고 생각했으나 앞날을 어찌 알랴 싶어 부랴부랴 사진관을 찾았다.
“머리를 잘 손보시고 나오시면 돼요.”
젊은 여자 사진사는 나를 거울이 있는 방으로 밀어 넣으며 머리를 빗으라고 했다. 사실 빗을만한 머리카락의 길이도 양도 아니었다. 어제저녁에 셀프 이발을 했기 때문에 몽실이 스타일의 단발이었다. 내 머리카락은 가늘고 곱실거리는 갈색이라서 아무렇게나 잘라놔도 다음날이면 알아서 적당히 엉겨 자연스러운 모양이 되곤 했다. 그래서 미용실에 안 간 지가 거의 10년은 되는 것 같았다.
“자, 살짝 웃어보실까요?”
여자는 나에게 웃으라고 했지만 웃으면 주름이 확대 재생산된다는 알찬 정보에 얼른 웃지를 못했다.
엉겁결에 애매하게 입꼬리만 들어 올리고 눈을 힘 있게 떴다.
늙으면 웬만한 큰 눈도 매우 작아지는 마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좋은 지 한 번 보실게요.”
여자는 내 얼굴이 큼지막하게 찍힌 4개의 사진을 보여주며 고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가관이었다. 고르고 자시고 할 만한 게 없을 정도의 처음 보는 할머니였다.
“아니, 모나리자네? 눈썹이 없어요.”
여러모로 놀란 내가 신음처럼 얘기하자 여자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면 돼요. 주름도 지워드릴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눈썹은 내 책임이었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가라는 후배의 말에 선크림을 얼굴 전체에 덕지덕지 바른 것과 립스틱을 좀 진하게 바른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크림으로 덮인 눈썹을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온 것이었다. 오래전에 한 눈썹 문신은 희미했고 그 위에 밀가루처럼 덮인 선크림이라니.
“뭐. 너무 고치면 못 알아보지 않겠어요? 그냥 대강 생긴 대로 인화해 주세요.”
별 상관없다는 듯 마치 쿨한 할머니처럼 여자에게 말을 하곤 사진관을 나섰다.
사실 눈썹보다도 목주름이며 처진 턱이며 팔자주름이 마음을 어질러 놓았지만 어쩌겠는가.
가는 세월이 새겨놓은 흔적인 것을.
서글픈 맘을 다잡고 집으로 향하며 같이 온 남편에게 물었다.
“나 리프팅 받을까?”
“리프팅? 그게 뭔데?”
남편에게 리프팅을 설명하느니 그냥 침묵하는 게 낫다 싶어 간단히 대답했다.
“주름을 좀 없애는 거지.”
“아, 성형. 그걸 뭘 해. 늙으면 다 주름이 생기는 건데.”
남편의 대답은 너무 당연했고 한가했다.
남편은 타고난 주름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름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미용실에도 안 가는 마누라가 오죽하면 주름 얘길 하는데 너무 반응이 태평했다.
“당신이 머리카락 빠진다고 신경 쓰는 것만큼 나도 주름이 신경 쓰여.”
퉁명스럽게 말은 했지만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어디 두고 보자. 대머리로 얘기할 일이 생기나 안 생기나.’
속으로 화를 삭이며 앞서 걸어가는데 바람이 쌩 일어나는 듯했다.
그러면서 고민이 살짝 생겼다.
‘주름을 좀 지워달라고 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