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by 안개인듯

“당신 전화받을 수 있어?”

화장실 문 밖에서 남편이 물었다. 난 오늘의 마지막 양치를 하고 있었고 내친김에 화장실 청소도 할 생각이었다. 남편은 절대로 화장실 청소는 하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가 나의 남편은. 화장실에 있는 마누라에게 굳이 시어머니 전화를 받으라는 것은.’

“못 받는다고 해요.”

살짝 열려있던 화장실 문을 쾅 닫고는 잠깐 궁금했다.


시어머니는 이 시간이면 늘 전화를 하셨고 남편과 그렇고 그런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반복하시곤 했다. 그 시간은 짧았고 남편이 전화를 하는 경우가 더 많긴 했다. 왜냐하면 남편이 안 하면 반드시 시어머님이 전화를 하셨기 때문이다.

“굳이 바꾸라고 하시네. 당신 목소리 듣고 싶으셔서 그런가?”

남편의 이야기는 소가 웃을 일은 아니었다. 시어머님은 아주 가끔 나에게 전화를 바꾸라고 하셔서는 ‘니 목소리 한 번 듣고 잡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 목소리가 듣고 싶으셨던 것 같지는 않고 ‘언제 한 번 시간 나면 오라’는 메시지였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은퇴한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서너 시간 걸리는 시댁엘 다녀오곤 했다. 사람들은 이런 우리 부부에게 ‘효도한다’고 했지만 남편과 나는 결코 효자 효부는 아니었다.

글쎄. 할 일도 없는데 그 정도로 뭐. 그렇게 생각을 하긴 했지만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가도 시댁에 가는 것은 일종의 일이다 보니 그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닌 것도 같았다.

“어머니가 요양원 얘길 하시네. 아무래도 요양원을 가셔야 할 것 같다고.”

남편은 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을 내게 이야기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난 깜짝 놀라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혼자 사시긴 하지만 24시간 입주해서 돌봐주는 사촌 시누이가 있었고, 어머니는 그 돌봄을 무척 즐기셨던 것이다. 물론 시누이도 고령이었고 어머니는 초 고령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셨을까? 절대 요양원은 안 가신다고 맹세하시던 분이?”

남편은 힐끗 나를 쳐다봤다. 내 말에 대해 뭔가 불만스러운 것이 있는 것 같았으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 같았다.

“사촌누나가 자꾸 힘이 든다고 얘기하나 봐. 어머니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니까 하시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자식은 자식이었다. 며느리는 자식이 아니어도 요양원 얘기가 썩 마음이 내키는 내용이 아닌데 아들은 어떨까 싶어서 좀 불쌍해 보였다.

“어느 누가 요양원을 가고 싶겠어? 할 수 없으니까 하는 마지막 선택이지. 그런데 이상하다. 당신의 어머니, 즉 내 시어머님이 요양원 얘길 하셨다?”

방금 전 전화 얘긴 까맣게 잊고 소파에서 저녁 뉴스를 보려는 남편에게 말꼬리를 올려 물었다. 나의 질문으로 남편의 평화로울 뻔한 TV 시청은 방해를 받고 있었다.

“왜? 어머니가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 이모도 가 있고 삼촌도 가 있는데 뭐.”

남편은 리모컨을 조정하며 대답을 했으나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시이모도 시외삼촌도 현재 요양원에 계신 것은 맞았다. 모두 시어머니와 10년 정도 차이 나는 동생들이었지만 배우자가 죽고 나자 결국 자식보다는 요양원을 선택하신 것이다. 그 선택에 대해서 자식들은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으나 진정으로 박수 칠 일이 아닌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 남편을 포함해서 도대체 자식이란 왜 이렇게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다섯에다 딸이 둘이나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다지 살가운 자식은 없었다. 오죽하면 별로 상냥하지도 않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은 며느리인 나에게 자꾸 다녀가라고 하시겠는가.

“글쎄요. 어머니의 진심을 알려드릴 테니 잠깐 기다리시죠.”

나는 남편을 거실에 남겨두고 내가 쓰는 방으로 들어가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이른 저녁시간부터 바로 주무시는 분이었지만 시어머니는 전화를 받았다. 기다리셨다는 듯이.

“야,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그런다.”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려면 민원이 들어올 정도의 성량을 높여야 하기에 난 최대한 방구석에서 전화기를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아까는 화장실 청소 하느라 못 받았어요. 무슨 말씀이신데요?”


“내가 요양원을 가야 쓰것다. 너 시누가 힘들어서 그려.”

어머니는 당신의 이야기만 쉬지 않고 세 번쯤 반복하셨다. 귀가 웅웅 거릴 무렵 드디어 막간을 잡아챈 나는 소리를 질렀다.

“요양원 가신다구요?”

그러자 잠깐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가 숨 고르기를 하시는 것 같았다. 아니, 이 며느리가 말리기는커녕 요양원 가느냐고 묻는 데 대해 약간의 충격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난 얼른 말을 바꿨다. 어차피 어머니가 요양원을 가고 싶지 않으신 것이 진리 아니겠는가.

“어머니, 아직 건강하시잖아요? 형님도 계시구요. 더 집에 계셔도 돼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어머님은 자신의 말씀을 하기 시작했다.

“그려. 아직 너 시누가 아프긴 혀도 나랑 같이 있는댜. 내가 그냥 집에 있는 것이 낫것지? 요양원보다는?”

그랬다. 이게 진심이었다. 어머님은 나를 통해 응원을 받기 원하셨던 것이다. 적어도 지금 요양원을 가는 것은 아니라는 편을 하나라도 더 확보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요양원을 가지도 않고 돌봐 주는 시누이도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머니의 수발은 당연히 며느리 몫이 될 텐데 그런 며느리가 요양원보다는 집이라고 하니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물론 나는 그 몫을 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그러나 또한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려. 집에 있어야지. 쟈가 아파도 여기 같이 있는다고 항께 집에 있어야지.”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자 목에서 단내가 났다.

“어머니가 요양원 안 가신대?”

마누라가 악을 쓰며 자기 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을 거실에서 들은 남편이 TV볼륨을 줄이고 물었다.

“말이라고? 노인네들이 죽어야지 하는 말은 죽고 싶지 않다는 거 몰라요? 당신 같으면 요양원 가고 싶겠어? 하여튼 우리 어머니는 잔머리의 대가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한 중요한 사안에 대해 며느리에게 의견을 물었던 시어머니가 안쓰러웠다.

장차 나도 며느리에게 묻게 될까?

며느리나 사위나 아들이나 딸이나 그들은 자신들 인생도 벅찰 일인데 뭘 물어 묻긴.

자문자답을 했으나 마음 한쪽이 아득했다.

어쨌든 비명횡사하지 않는 한 백수를 살아야 하는 우리 또한 늙고 병드는 과정을 겪을 텐데 그 남은 생애를 어떻게 갈무리해야 하나?

거실에선 난장판인 정치 이야기가 소음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유 시끄러. 볼륨 좀 줄여요!”

며느리 보다 나을 것 없는 시어머니의 아들에게 소리를 빽 지르곤 안방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난 전혀 효부가 아니지만 내일 다시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집에 계시라고. 미리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어떻게 방법을 찾아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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