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설 때만 해도 그다지 마음이 흐리진 않았다.
날씨가 다소 음산하긴 했으나 날씨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무덤덤한 성격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날씨보다는 계절적으로 조금 더 민감하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익숙한 길의 모퉁이를 돌아서고 꺾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솟았다. 그 감정 역시 익숙했지만 기쁘다거나 슬프다거나 혹은 애달프다거나 그립다거나 하는 이름을 붙이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굳이 비슷한 어떤 이름을 꺼낸다면 그것은 일종의 ‘화’에 가까울 것이었다.
그렇다고 불같이 화가 올라오거나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강한 압력도 아니었다.
사실 ‘화’와 나는 별로 가깝지 않은 사이이기도 했으니 정확하게 ‘화’라고 부르기에도 모자랐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거의 감정에 변화가 없거나 느린 축이었다. 그래서 길을 걸으며 계속 느껴지는 익숙하나 알 수 없는 그러나 ‘화’에 가까운 것 같은 감정에 스스로 의아심이 들었다.
‘그 이야길 들어서일까?’
집을 나서기 전에 X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현재 30년째 투병 중인 남편과 살고 있다. X의 남편은 거의 규칙적으로 비상사태에 돌입하곤 해서 응급실을 끼고 살았다. 그래도 그들 부부는 함께 일을 하고 있었고 나름 잘해 나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남편이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있거나 장애가 있어서 활동을 못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X의 남편은 내가 알기에도 죽음의 문턱을 대여섯 번은 더 넘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삶을 잘 이끌어 나가는 X를 나는 존경했다. 아마도 X가 남편보다 훨씬 더 남편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 긴 세월을.
그랬던 X가 며칠 전 남편을 다시 응급실에 실어다 놓아야 하는 일이 생겼다. 코로나 이후로 병원 출입이 훨씬 어려워진 상황이었고 남편은 1박 2일을 치료해야 하는 까닭에 X는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녀가 사는 집은 4층 빌라의 3층이었는데 그 계단을 힘겹게 올라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녀를 감쌌다.
그것은 일종의 두려움이기도 했고 불안이기도 했다.
날은 어두워져 불을 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장 작은 방에 들어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았다. 불을 켤 엄두도 다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갈 엄두도 안 났다. 남편이 쓰던 서재 쪽을 지나야 하는 주방에는 차마 나갈 수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을까.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진 밤이 되자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가까이 사는 며느리가 감자탕을 끓여 온 것이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따끈한 탕과 밥을 먹고 나서는 집안의 불을 다 켜고 정신이 들었단 얘기였다.
“뱃속에 따뜻한 것이 들어가니 정신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옛날 엄마들이 아프고 마음 상한 자식들에게 억지로라도 국밥 따뜻이 말아 먹였던 모양이에요.”
X는 바로 회복이 되었고 집안 청소를 했으며, 이틀 뒤 남편을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X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긴 했으나 나의 기분과 관계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나는 X처럼 남편 때문에 고생을 한 일도 없고, 나의 남편이 그녀의 남편처럼 응급실을 수시로 드나드는 지병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내 며느리는 멀리 살고 있고 딸은 더 멀리 살고 있었다.
어떤 공통점도 없으니 나의 이상하고 복잡한 이 감정은 X의 이야기로 인한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뭘까?
길을 걸으면서 기분은 조금씩 처졌다가 팽팽했다를 반복했다.
요즘 엄마들이 유행처럼 앓는다는 산후우울증조차 겪어본 일이 없는 나는 이 상황을 노인우울증이라고 이름 지어야 하나를 놓고 시름에 잠겼다.
살다 보면 우울한 일 또한 얼마나 많이 생기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혹은 무시하면서 살아온 삶이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느낌이었다.
‘와, 우울증은 죽음도 불사한다던데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죽고 무슨 사고 내는 거 아냐?’
혼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데 매일 지나치던 붕어빵 수레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열심히 붕어빵을 굽고 있었고 그 앞에는 두 사람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난 한 번도 붕어빵을 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줄을 서야 할 것 같았다. 고작 세 번째니까 금방 되겠지. 우울이고 나발이고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데 제일 앞에 서 있는 중노인이 얼마나 많이 사는지 내 바로 앞에 선 아이 엄마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다됐어.
“팥이 안 되면 슈크림으로 주세요. 애가 보채서요.”
결국 아이엄마는 팥앙금 붕어빵을 포기하고 이미 구워 놓은 슈크림 붕어빵 4개를 가져갔다. 바람에 날리는 종이 팻말에는 ‘4개에 2000원’ 그렇게 씌어 있었다.
“사장님 성함이 유 OO 맞으시죠?”
아이 엄마는 폰뱅킹으로 붕어빵 값을 입금하며 확인했다. 그리곤 식은 슈크림 붕어빵 봉투를 들곤 아이와 총총 사라졌다.
“조금 있으면 붕어빵도 못 사 먹겠어요. 현찰 없이 다니면 저렇게 해야 하는데 원. 이젠 음식점에서 주문하기도 어렵다니까요.”
앞의 중노인은 10000원짜리 2장을 현금 바구니에 넣으면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예 현금을 안 들고 다녀요. 그렇다고 카드 결제할 형편도 아니고 해서 계좌이체를 걸어 놓은 거죠.”
사람 좋아 보이는 붕어빵 할아버지는 여전히 빠른 손놀림으로 붕어빵 기계를 뒤집곤 했다.
붕어빵을 열 봉지나 사들고 가는 중노인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나도 곧 4마리의 팥앙금 붕어빵을 받을 수 있었다.
손에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에 하마터면 행복하다고 느낄 뻔했다. 좀 전의 우울은커녕.
봉투에서 붕어 한 마리를 꺼내 꼬리부터 덥석 베어 먹었다. 난 바삭거리는 느낌이 있는 꼬리 부분을 좋아했다.
‘슈크림 붕어빵을 사간 꼬마는 어디부터 먹으려나?’
쓸데없는 생각도 하면서 붕어빵을 두 마리째 먹었다.
그러다가 X 생각이 났다. 그녀가 가까이 있다면 이 붕어빵을 나누어 먹을 텐데.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뭔가 우울해서 붕어빵을 샀는데 이게 엄청 맛있네. 이제 세 마리째 먹으려구요. 같이 먹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냥 전화했어요.”
전화기 너머로 X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4마리 다 드세요.
결국 집 앞의 신호등 앞에서 난 네 마리째 붕어의 꼬리를 먹고 있었다. 한 마리는 남편에게 갖다 주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어진 것이다. 하긴 남편은 붕어빵을 먹어야 할 정도로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슬프거나 한 적은 없어 보였다.
집에 들어서며 빈 붕어빵 봉투 겉면에 그려진 붕어의 그림을 보았다. 붕어는 웃고 있었다.
‘정말이네. 따뜻한 팥앙금 붕어빵을 먹었더니 괜찮아졌어. 이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사 먹어야겠어. 2000원은 현금으로 항상 준비해 둬야지.’
그리곤 바로 10000원짜리 지폐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난 물론 폰뱅킹을 하지만 그 현금 바구니에 10000원을 넣고 8000원을 거스르는 쪽을 택했다.
나의 모호하고 우울하며 화가 난 듯했던 감정이 붕어빵으로 해결이 되었다는 것은 일기에 기록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일기 말미에 적었다.
'우울할 땐 따끈한 붕어빵을 4개 이상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