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감정 없는 기계가 아니다 보니 현장에서 슬픔도 받고 기쁨도 느낀다
정보보안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생활한지 2년이 다되어 간다. 적응되었다 생각 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악몽의 근원은 무엇일까. 괴로웠던 전화기 너머의 압박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아마도 예전에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느꼈던 그 감정이 기쁨보다는 슬픔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 아닐까?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라는 책을 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엔지니어로 생활하면서 받았던 질책들과 슬픈 감정들이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오랫동안 나를 귀찮게 하냐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48가지(스피노자의 에피카) 감정들 중에 어떤 감정이 나에게 찾아왔길래? 그토록 괴로웠고 악몽까지 꾸게 되었냐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그러한 악몽이 줄어들긴 했다. 그렇다 지금은 그 업무에서 벗어나기는 했다. 그런데 다시 그리운 건 왜일까.
회사 제품의 대한 기술적 지원을 하는 것이 정보보안 제품 엔지니어의 업무 중 하나이다. 나는 그러한 일을 했었고 그러한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짧은 2년이었지만 몰려드는 고객사의 전화 속에서 나는 수많은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공감이 될지 모르지만, 그 수많은 감정 중에 대부분의 감정은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두려움은 무엇일까? 그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스피노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두려움(metus)이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가 엔지니어로서 느꼈던 두려움은 사실 어떤 미래에 대한 슬픔이었고 불안감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엔지니어 존재 자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장애 처리'라는 것은 미래에 고장이 발생한다는 가정하에 준비해야 하고 처리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와 이미 발생했던 과거의 장애들은 비연속적으로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흔히들 엔지니어들은 패치를 한 이후에 이 두려움을 극도록 느끼게 된다. 특히나 과거에 패치 이후 전체적인 장애가 발생했던 사건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장애가 나오면 우린 다시 기쁨보다는 슬픔이 먼저 올라온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했을 때가 되어서야 기쁨의 감정으로 바뀌어 돌아온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와 미래의 발생할 장애라는 관념에서 불안감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장애가 있을 거라 예상하기에 이 슬픔은 끝나질 않는 것 같다.
유지보수 엔지니어의 평소 생각 : 젠장.. 장애가 또 발생한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장애가 해결이 제대로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어. 그리고 난 그것을 평소에 두려움이라고 불러. 그리고 우린 그러한 끝없는 두려움에 갇혀 사는 것이고 나의 유지보수 업무는 끝이 없을 거라 믿어.. 그래 그래서 나는 계속 두려운 거지... 그냥 반복인 거지..
기쁨이 슬픔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이 존재해야 기쁨이 있는 것이다. 내가 엔지니어로 살면서 느꼈던 두려움도 결국엔 극복해야 할 대상이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 기쁨을 맞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라는 책에서는 더욱더 많은 감정을 설명해준다. 나는 많은 엔지니어들이 이 책을 통해 더 감정에 솔직해지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히 앎으로써 힘든 현장 생활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감정 노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감정을 표현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오히려 나는 상처를 받는 입장이 아닌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또는 경험을 통해 현장에서 감정을 마스터하는 엔지니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 그리고 나는 나에게 슬픔을 주었던 그 담당자를 용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