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장산 호랑이 Jul 09. 2017

우리, 다니엘 블레이크

마크 블라이스 <<긴축>>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등장하는 '다니엘 블레이크'는 평생 성실하게 목수로 일한 50대 남성이다. 심장 발작으로 일을 할 수 없게된 블레이크는 순식간에 삶의 모서리에 몰린다.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빈곤층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블레이크는 복지수당을 신청하려 하지만 이마저 쉽지않다. 정부는 블레이크에게 빈곤을 스스로 증명하라고 강요한다. '네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달라'는 정부에 맞서 블레이크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글자를 건물 벽에 크게 쓴다. 자존감을 되찾으려는 블레이크의 언표다. 블레이크는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회적 타살과 다름없는 심장마비로 죽는다.


*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우리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신자유주의에 의해 추동된 '긴축정책'이라는 위험한 프로젝트에 사로잡혀 있다...이는 수십억의 사람들을 심각한 고난에 빠지게 했고 그리스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수백만명을 생존투쟁으로 몰고 갔다. 반면 이는 아주 소수 사람에게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줬다"


*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긴축정책 이후 유럽 시민들이 직면한 실존적 위기를 그렸다면  <긴축>이라는 이 책은 긴축정책의 연원과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마크 블라이스 미국 브라운 대학 교수. 스스로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복지 정책의 혜택으로 대학 교수가 됐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긴축으로 인한 복지 정책의 축소가 이 책을 쓰게 된 문제 의식의 근원이다.


* 우선 블라이스는 정부 부채가 죄악시되는 통념을 비판한다. 국가의 재무 상태를 가정경제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 재정은 기업, 가계 소득과 맞물려 돌아가는 만큼 정부 재정 적자가 기업, 가계 흑자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 부채 규모를 따지기보다 자금의 동적 흐름과 선순환 구조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블라이스는 각국이 긴축에 나선 배경이 되는 미국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는 확장적 재정정책이 원인이 아니었다고 진단한다. 미국 금융위기는 금융권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파생금융상품을 개발해냈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는 초대형 은행들이 '피그스' (Portugal, Italy, Ireland, Greece, Spain) 국가의 채권을 지나치게 매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축이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경쟁적으로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다. 긴축의 가장 큰 부작용은 긴축 정책의 여파가 계층별로 상이하게 나타나고, 빈곤층이 가장 먼저,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이다. 긴축 정책으로 사회 복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탐욕적 금융 자본이 저지른 판단 착오의 책임을 빈곤층이 뒤집어 쓰게 된다.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 현상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남발되는 긴축이 사실은 공동체를 파멸로 몰고가는 옥쇄투쟁이란 것이다. 따라서 마크 블라이스는 '긴축'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라고 명토박아 말한다.


* 블라이스는 2000년대 중후반 금융 위기상황에서 다르게 대처한 두 나라,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를 실증적으로 비교한다. 아이슬란드는 긴축정책 대신 금융 기관 채권자들의 허리띠를 졸라맸다. 납세자들이 아니라 금융기관 채권자들이 금융권 붕괴에 따른 비용을 떠안았다. 아이슬란드는 2012년 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한다.

국가 전체가 긴축에 돌입한 아일랜드에서는 5년 동안 대졸자 5만 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국가에 엄청난 부채가 쌓인 상태에서 아일랜드 미래의 과세 기반이 무너진 셈이다.


* 재정위기가 거론되지 않는 한국에선 다소 이질감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20년전 외환위기 속에서 전례없는 긴축을 경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질감보다는 기시감이 든다. 한국이 언제든 국가 재정을 이유로 복지비용을 줄일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불안감이 찾아온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악명높은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