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장산 호랑이 Jul 10. 2017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프레드 로델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 프랭크 로델은 26살에 미국 예일대 로스쿨의 교수가 됐다. 32살에 법률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을 펴냈다. 제목으로 성경의 누가복음 11장 52절을 차용했다. 누가복음 11장 5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 로델이 교수가 된 1933년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해다. 책을 펴낸 1939년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추진하던 시기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는 사법부에 의해 번번히 좌절된다. 뉴딜정책의 핵심 격인 전국산업부흥법에 대해 사법부는 위헌 판결을 내린다. 산업부흥법엔 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과 주당 노동시간 제한이 담겨 있었다. 연방대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법 시행으로 행정부에 권한이 집중된다고  판단했다. 로델 교수를 비롯한 젊은 법학자들은 분노했다. 정치, 경제, 사회 현상에 대한 고민 없이 법의 형식 논리만으로 판단하는 보수적 대법관들에게 반발했다.


# 로델은 법률가가 부족 시대의 주술사, 중세의 성직자와 같은 존재라고 비난한다. 로델은 법률가와 주술사, 성직자를 싸잡아 자신들이 갈고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내기 위해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는 영특한 무리라고 폄하한다.

# 법이 자기 완결적 논리 체계를 갖췄다고 맹신하는 형식주의 법학관에 맞서 로델은 법 논리의 맹점을 파고든다. 로델은 이런 상황을 질문으로 던진다. <집 주인이 정원사에게 50달러를 줄테니 도랑을 파달라고 부탁을 한다. 정원사가 몇 삽 정도 파내려간 상황에서 집 주인은 도랑이 필요없다고 한다. 집 주인은 50달러를 주어야 하는가?>


로델은 "법이 허리를 굽히고 (도랑으로) 내려와 (돈을 줘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마법의 선을 그어야" 한다면서도 법과 법률가는 마법의 선이 어디인지는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법 원칙이란 허구에 불과하고, 재판은 판사 개인의 가치관의 산물로 법률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게 로델의 이야기다.


# 로델의 주장은 과격한 '법률가 무용론'으로 귀결된다. 천태만상의 인간사를 주재하는 체계, 분쟁을 처리할 수 있는 확실하고 일관된 원칙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관은 결국 어중간한 중간 수준에서 판단을 내리기 십상인만큼 차라리 법률가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로델의 주장은 상당히 진지한데, 법률가를 없애는 대신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분쟁을 해결하는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고 갈파한다. 정신병이 범죄의 원인이라는 피고인에 대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면 법률가보다는 정신병 전문의 여러 명이 재판을 맡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 로델 교수는 이 책을 펴낸 뒤 동료 학자들에게는 '예일의 수치'라는 지탄을 받았고, 많은 법률가와 시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됐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로델은 20년 뒤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로델은 1957년 재출간한 책의 서문에서 '사과할 것이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 로델의 '법률가 무용론'현실 속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법이 법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시민의 정의감에 밑절미를 둬야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일정 부분 로델의 기여가 있었다고 본다. 법률가가 자신의 지식을 체제에 대한 의심으로, 도전으로, 전복으로 확장시켜 나간 좋은 사례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다니엘 블레이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