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비웠다.
새해 첫날 일요일 오후, 그러니까 2023년은 옷장을 비우는 일로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대략 삼분의 일은 너무 낡았거나, 아무리 살을 뺀다고 해도 이번 생에 다시 입기는 힘들어 보이니, 이들의 운명은 아파트 단지 앞 의류 수거함. Goodbye. Adios. 잘 가. 그리고 다시 삼분의 일은 멀쩡하지만 손이 잘 안 가는 녀석들, 그래도 이 친구들은 여기저기 나눔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머지 삼분의 일, 이게 문제다.
내 사랑, 꽃무늬 셔츠.
안방 붙박이장 행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내 몸과 영혼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나와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셔츠들. 화려한 컬러의 (주로 꽃무늬..) 셔츠들. 숨을 들이쉬고 있는 힘껏 참고 버텨야 겨우 단추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작아진.. (그래 너희가 작아진 건 아니지, 괜한 탓을 하고 있네) 이 녀석들을 대체 어쩌란 말인가. “제발 버리던가, 누굴 좀 주던가 그래. 이 많은 걸 어쩌라고..” 아내의 핀잔을 뒤로하고 옷 보관함 상자에 다시 차곡차곡 챙기고 있다. "살 빼서 다시 입을 거야." 겨우 입을 뗐다. 자신이 없으니 들릴 듯 말 듯. 아내가 노려본다. 이건 아내의 시선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냥 느껴지는 거다. 언제.. 살을 빼서 다시 입을 수 있을지는.. 그래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옷장은 꽤 가벼워졌다!
민망한 뿌듯함.
새해 둘째 날 아침엔 동네 문화센터에서 운동 시작. 30분 가볍게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벌써 땀방울이 송골송골. 어깨가 아파서 하체 위주로 근력 운동. 그리고 생전 안 하던 윗몸일으키기도.. 10개가 한계구나. 다시 마무리 삼아 10분 러닝머신. 주변을 둘러보니 새해 운동 결심을 한 사람이 나만은 아닌 듯싶다. 바글바글하다. 얼마나 갈까? 아,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묻는 거다. 샤워를 하고 찬 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섰다. 뭐지, 이 민망한 뿌듯함은? 그래, 한 200, 300 그램이라도 가벼워졌을까?
가벼워질 결심이라니.
제목을 붙이고 나니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작년에 본 영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정말 멋진,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제목을 패러디하는 건 아무래도 자존심이 조금 상한다. 그보다 ‘결심’이라는 단어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결심이라는 단어의 외투 속에 숨겨진 고민과 갈등, 그리고 ‘자신 없음’의 속살이 드러날까 봐. 세이런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을 시켜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어달라고 했다. 한낮 ‘마음의 매듭’ 따위가 추운 겨울날, 따뜻한 이불속 달콤한 아침 잠의 (아아아.. 5분만 더..!) 유혹 앞에 어떻게 풀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삶의 OO, OO안에 떠오르는 단어는?
딸내미에게 툭하고 질문을 던지니 ‘궤적’이라는 꽤 멋진 답을 돌려줬다. 그래, ‘기쁨’까지는 아니어도, ‘궤적’, ‘의미’ 혹은 ‘목표’처럼 그나마 중립적(?)인 말이라도 떠오르면 좋겠지만 언젠가부터 내게 OO을 채울 단어는 ‘무게’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삶의 무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몸무게가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삶의 무게가 내 삶의 여기저기 들러붙어 어깨를 짓누르고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내가 어른이 되면.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는 <로알트 달의 뮤지컬 마틸다>엔 아이들이 부르는 <When I Grow Up>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키가 커서 높은 나무 가지에 손이 닿으면, 그래서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라가는 건 힘들어, 그리고 올라가면 내려와야 해.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고 힘들지) 내가 어른이 되면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해질 거야 (뭐든 다 답을 할 만큼 똑똑해졌다 싶다가도 이내 아무것도 모르겠다 싶고.. 산다는 건 어쩌면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질문들에 나만의 해답을 찾는 과정일지도 몰라. 미안해) 어른이 되면 매일 일하러 가는 길에 단 걸 먹고 늦잠을 잘 꺼야 (음.. 뱃살을 내려다보지 마. 슬퍼지니까. 늦잠...? 출근해야지, 자, 어서 일어나자)
내가 어른이 되서 힘이 세지면.
노래는 이어진다. 내가 어른이 되면.. “내가 들어야 할 무거운 것들 다 들 수 있게 힘세질 거야” 그래, 너는 멋지게 자라서 너에게 주어진 삶의 무거운 짐을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어쩌지? 그 짐을 언제 내려놓을 수 있을지, 아니 내려놓을 수 있긴 한 건지 그건 나도 모르겠네. 아무리 힘이 세도, 들어 올리는 것과 그 짐을 계속 이고 지고 버티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고마워, 바다야.
1월 3일, 그러니까 2023년 셋째 날은 우리 식구 셋이 바다로 향했다. 취업의 문턱 바로 앞에서 고배를 마시고, 무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취준생 딸내미와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다 갑자기 초보 주부가 되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가계부를 노려보는 살림살이의 짐을 지고 있는 아내와 함께 바다로 향했다. 영 시원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먹고사는 일과 회사 식구들, 경제력이 없는 부모님들까지 내 어깨 위에 놓인 삶의 무게가 얼마나 힘들고 버거운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입을 떼는 순간, 멈출 수 없을 만큼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이 차 올랐다. 그래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차 안의 공기가 무거워진 건 아마도 침묵의 무게 탓일지도 모르겠다. 2시간 반이 조금 더 걸려 바닷가에 도착했다. 차문을 여니 차가운 바닷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정신 차려. 오랜만에 아이폰 대신 무거운 카메라를 꺼내 들고 아이와 아내의 사진을 찍었다. 스마일, 웃어~! 굳어져있던 아내와 하늘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찰칵. 또 찰칵. 그리고, 잠시 바다를 바라본다. 아주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2023년, 가벼워질 결심.
옷장을 비우고, 몸무게를 덜어내고, 마음을 비우고. 참 여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가벼워지기 위한 노력일지 모르겠다. 2023년은 조금 더 가벼워지겠다 결심을 했다. 그래, 어쩌면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 숨을 거둬들이기 전까지 '삶의 무게', 아니 '삶의 무거움'은 결코 헤어질 수 없는, 그래서 어쩌면 '삶 그 자체'와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가벼워질 수는 있지 않을까? 조금 더 가벼운 날갯짓으로 다시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