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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휘 Feb 04. 2022

오미크론과 함께 한 일주일

"내가 코로나라니! 내가, 내가 코로나라니...!"

"네? 확진이요...??"

내가 코로나라니... 내가, 내가 코로나라니...!!!


설날 연휴가 끝나는 날(2일) 아침에 걸려온 전화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연일 뉴스에서 "오늘도 기록적인 숫자.., 폭증..." 기사가 쏟아져도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관할 보건소에서 다시 연락이 올 거라고 일단 동거 가족과 공간을 분리하라고 한다. 아, 정말 이게 뭔 일이지 싶었다. 오만가지 걱정거리가 한 번에 몰려왔다. 같이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연휴 끝나고 사무실 출근은... 당장 이번 주 녹음 스케줄은 어떻게..? 아참, 지난 며칠 동선이 어떻게 되더라?


[ 2월 2일, 수요일 ]

아침에 전화를 받고 나니 갑자기 모든  어수선해졌다. 다행히 함께 검사를 받은 아내와 장인어른, 장모님은 모두 음성이라네. 딸아이는  어떻게 하지? 우선 검사부터 받으라고 했다. (하늘이() 3  통보를 받았다. 결국 확진... 역시 재택치료다. 아이고, 아이고...) 동거 가족이 많고 고령인 어르신들이 있으니 생활치료센터로 보내달라고  번을 요청했는데 위중증이 아니면 불가능하단다. 환자가 폭증해서 자리가 없단다. 재택치료를 선택하게 되면  가족 모두가 '공동 격리' 외출을 못하게 된다고 한다. 여러 번의 통화 끝에 결국 재택치료로 결정이 고나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 문자가 연달아 온다. 재택치료 키트를 보내준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3차 접종 완료라 특별한 증상 악화가 없으면 최초 증상 발현일(지난주 토요일)로부터 7일, 그러니까 이번 주 토요일(5일)이면 격리 해제라고 한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식구들 모두가 집에 갇히니 이걸 참 어찌해야 하나..


똑똑, 내가 안방 화장실로 몸을 옮기고 그새 아내가 마스크를 쓰고 들어와 옷가지와 몇 가지 짐을 챙겨 거실로 나갔다. 걸리고 싶어 걸린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이게 왠지 모를 묘한 죄책감이 든다. 낮에는 가능하면 침대에서 벗어나야지. 안방에는 평소 아내가 일하는 작은 책상이 있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2월 3일, 목요일]

감금 이틀째. 그래도, 다행이다. 내가 이렇게 착한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니. 누가 뭐래도 인복은 있는 편인 듯하다. 톡을 보내고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모두가 일보다는 건강 걱정부터 해준다. 걸려 있던 일들을 다음 주로 미루고 평소에 못 보고 미뤄놨던 넷플릭스 음악 다큐 <This is POP>을 보고 있다. 지난 시간 정말로 좋아했던 음악들이 불러일으키는 추억과 반가운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악으로 먹고사는 일을 한다지만 '먹고사는' 일에만 너무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 '음악'이 좋아서 시작한 거잖아? 이 일을 처음 하게 된 건 말이야. 좋은, 멋진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의지가 솟아오네.


똑똑, 아내가 방문 너머로 물어본다. 떡볶이 먹을래? 평소에 먹는 국, 밥, 찌개는 아내의 담당이지만 파스타, 샤부샤부, 갈비찜, 뭐 이런 일종의 조금 특별한 메뉴는 늘 내 몫이었다. 떡볶이도 늘 내 담당이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아내가 만든 "떡볶이"를 맛보는 날이 다 오는구나.

맛있다. 네이버 검색을 열심히 했겠구나. 삶은 계란에 만두까지. 맛있었다고, 고맙다고 톡을 보내고 빈 그릇을 방문 앞에 내놓았다. 전라남도 순천이 고향인, 요리 솜씨로는 어디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 어머니가 늘 하던 이야기가 있다. "내가 안 만들면, 남이 해주면 다 맛있어" 그래도 격리가 끝나면 떡볶이는 내가 만들겠지만.


[ 2월 4일, 금요일 ]

재택치료... 독방에 갇힌 지 삼일 째다. 아내가 방문을 두들겼다. 방문 앞에 놓인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찌게, 반찬, 밥이 차려진 아침식사. 어제는 잘 먹었는데 3일째 갇혀서 책상과 침대, 화장실만 오가다 늦게 잠들어서 그런 건지 입맛이 좀 없다. 쟁반을 다시 내어놓고 안에서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입맛이 없어서 다 못 먹겠네.. 미안하고 고마워" 톡을 보냈다. 35도? 왜 이렇게 낮은 거야? 체온을 재고, 산소포화도 (99%)와 맥박(85 bpm)을 앱에 입력했다. 잠시 후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담당 병원이다. "네, 약은 잘 먹고 있고요.. 뭐 딱히 아픈 곳은 없어요" 오늘 저녁까지 큰 이상이 없으면 내일(5일)이면 격리 해제가 될 거라고 한다. 안방에서 쓰는 작은 무선 진공청소기로  군데군데 간단히 청소를 하고 손이 닿는 곳엔 소독약을 뿌리고 물티슈로 닦아냈다. 노트북을 열어 톡으로 급한 일 몇 가지를 정리하고 브런치를 열었다.


기억의 테이프를 되감아본다.


[ 1월 27일부터 2월 1일, 지난주 목요일부터 화요일까지 ]

사실 지난 주말부터 목이 조금 칼칼하다 싶었다. 목감기일까 싶은 정도? 걱정이 조금 되긴 해서 체온을 재봤으나 정상. 그 외에는 불편한 곳이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설날 연휴 일요일엔 1박 2일로 어머님, 동생과 함께 펜션 나들이를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제사도 안 지내고 명절 때 모여봐야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보다 음식 만들고 치우고 하는 건 모두에게 참 괴로운 일이라 10년 전부터 명절 때면 가까운 펜션으로 놀러 가곤 했다. 처음에 그렇게 다닐 때는, 사람도 거의 없고 명절 당일날은 오히려 차도 안 막히고 하니 나름 우리 가족만의 명절 보내기 비법이라고 좋아했는데, 어느새 명절이면 거의 모든 펜션이 꽉꽉 찬다. 가족끼리, 친구나 연인끼리 명절 연휴 놀러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아졌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캠핑의 맛을 보기 시작한 완전 초보 '캠린'이다. 캠핑하는 후배를 따라서 두어 번,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는 글램핑 장으로 서너 번 정도가 전부다. 음식 해 먹고 모닥불 피워놓고 불멍 하는 건 좋은데 텐트 치고 걷고, 산더미 같은 짐을 싣고 내리고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장비라 봐야 캠핑 고수의 조언을 따라 가볍고 튼튼한 (내 몸무게를 고려하니 더욱 그렇다) 캠핑 의자 두어 개와 오래오래 쓴다 생각하고 성능 좋은 아이소 가스버너와 무쇠로 된 그리들이 전부다. 두세 번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니 그리들로 하는 스테이크 요리에 나름 자신이 생겼다. 요리 하나는 정말 빨리 배우는 편이니까.

[작년 가을 홍천 글램핑장에서 요리한 티본, 엘본 스테이크]

이번 명절 펜션 여행에서도 그리들이 제대로 한몫해줬다. 잘 달궈진 그리들 위에 올리브 오일을 듬뿍 두르고 나서 두께가 3-4cm 넘는 고기(미리 소금, 후추, 스테이크 시즈닝으로 밑간을 해뒀다)를 올리고 풍미를 더할 버터를 고기 위에 툭. 이제 기다린다. 이게 중요하다. 뒤집고 싶지만 기다린다. 한쪽면이 완전히 바짝 구워질 때까지. 살짝 들어보고 노릇하게 구워졌다 싶으면 뒤집고 다시 기다린다. 이제 아스파라거스와 마늘, 버섯 등 가니쉬를 올리고 불을 줄인다. 다시 기다린다. 맛본 사람들 모두 엄지 척 들어 올리는 스테이크 완성. 그렇게 잘 먹고 잘 놀고. 집에 돌아왔다.


2월 1일, 월요일 아침 일찍 회사 O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실장님, 저 확진이래요.." 열이 좀 나서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문자를 받았단다. 걱정이 돼서 받자마자 전화를 한 거라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며칠 전 토요일 저녁부터 목이 조금 간질간질했지. 아내를 재촉해 검사를 받으러 갔다.  연휴 중이라 줄이 길지 않았고 10분 만에 검사를 받고 돌아왔다. 같이 여행을 간 동생과 어머니도 모두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모두 음성이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며칠 동안 같이 밥을 먹고 하루 종일 시간을 같이 보낸 회사 직원 O대리에게도 검사를 받아보라고 전화를 했다. 이때가지만 해도 정말 설마 했다. 그냥 평소처럼 아내와, 딸과 같이 밥도 먹고 티브이도 보고 그랬다. 3일 날 아침 연락이 왔다. 뭐라고? O대리도 확진이었다. 같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3명이 모두 확진이라니.


1월 27일, 목요일. 함께 일하는 O팀장과 O대리, 내 기억을 모아 추적해본 사건의 발단은 이 날이었던 것 같다. 오후 스케줄도 없고, 최근 들어 일이 빠져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해서 점심에 반주로 막걸리 몇 잔을 걸쳤다. 곧 명절 연휴가 다가올 테지만, 그래도 압구정동 <묵전>의 모둠전은 (남이 만들어준 거라 그런지) 맛나다. 평소엔 조금 달다 싶었는데 이날 따라 가평 잣 막걸리도 입에 착착 감겼다. 함께 한지 약 1년 반의 시간이 지났는데 우리가 노래방 한번 같이 가본 적이 없구나. 그래, 코로나 판데믹의 시대에 다들 처음 만났으니. 코인 노래방은 안전하겠지? 낮시간에 들른 노래방엔 다른 사람도 한 명 없었다. 노래 몇 곡을 신나게 이어 불렀다. 그래 묵전, 아니면 코인 노래방이었겠구나. 이게 다 잣 막걸리 때문이야.


[ 다시 2월 4일, 금요일. 오늘 ]

오후 입력시간이다. 체온((35.9도)과 산소포화도(99%)를 쟀다. 너무 멀쩡하다. 이제 목도 안 아프다. 하루 종일 방구석 모드다 보니 머리만 지끈지끈. 늘 생각이 너무 많아 괴로워하는 내게는 이게 제일 힘든 것 같다. 코로나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완치된 이후에도 우울증(depression) 증상을 보인다는 연구결과(https://www.webmd.com/lung/covid-19-depression#1)도 있다. 뭐 꼭 연구결과를 찾아보지 않아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텅 빈 가게를 바라보는 자영업자들부터 학교는 들어갔지만 학교를 가본 적 없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코로나 판데믹 시대의 모습들을 떠올리면 온통 우울한 기운이 가득하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학습을 하는 어린아이들이 마스크 때문에 발달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기사도 봤다. 첨단 과학문명이 꽃을 피운 AI와 메타버스, 자율주행 자동차의 시대라지만 이 원시 생명체(사실 생명체로 분류도 안된다) 바이러스의 생존본능 앞에 온 인류가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백신이 나오고 치료약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 녀석도 열심히 스스로 진화 중이다. 그리스어 알파벳도 얼마 안 남은 모양인데.


저녁시간이 다 됐네. 미각이나 후각에 문제가 생기는 증상도 있다는데 나는 배만 고프다. 뭘 만들고 있을까? 딸까지 확진자 두 명을 돌보느라 힘들 텐데... 격리 해제돼서 나가면 아내가 좋아하는 회에 소주 한잔이라도 (아... 집에서 시켜 먹어야겠다. 바깥세상은 위험해!) 같이 해야겠다.


이제 한 밤만 더 자면 오미크론 너랑은 바이 바이다.

잘 가라, 다시는 얼씬거릴 생각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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