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엔 더 나은 섭생을 위하여.
* 이번 글과 함께 추천 음악
:: FKJ / Pe
어떻게 하면 글을 정성스럽게 담을 수 있을까, 하며 꾹꾹 눌러쓰다 보니 2021년이 다 끝났다. 마지막 글이 두 달 전이라니, 게으른 프리랜서(라고 쓰고 백수라고 쓴다.)가 아닐 수 없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감정은 마치 이렇게 어렵다. 연인에게든 친구에게든 좋아하는 이에게 손편지를 쓰는데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몰라서, 어떤 말부터 꺼내야 될지 몰라서 가장자리부터 괜히 에두르다, 결국 중심으로 천천히 스며들 듯 어려운 마음으로 나에게 편지를 쓰는 느낌이 든다.
한해에도 그렇고 최근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들 모두.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건 역시 내 미래와 관련된 일이었다. (진로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커리어를
주제로 잡은 글에서 더 이야기하겠다.) 잔잔해 보이는 내 겉모습에 비해 늘 불안하고 불규칙하고 대중없는 삶이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내 길을 찾으려고 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진심을 다해 자문을 구했고 맞는 것과 아닌 것으로 나뉜 수많은 가지들을 혼자 쳐내며 비포장도로를
스스로 포장도로로 천천히 만들어왔다. (물론 내가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제안해준 나의 주변 사람들 덕이 가장 크다.)
딱히 큰 사연이 없어 보이는 내 모습에 비해서 진짜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먼저 묻지 않는 이상 꺼내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다기보다 상대방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속도가 느리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럴 때 스스로가 바다 같다고 이따금씩 생각한다. 겉으론 잔잔해 보이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어둡고 소용돌이치고 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심해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휘몰아치는 머릿속에 비해 상황이 따라주는 속도는 너무 느려서 답답했고 이 와중에 인류애는 생겼다가 또 사라지며 공을 세웠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엉망진창인 방을 대체 어디부터 치워야 하나 막막함과 같은 마음 때문에 올해는 유독 더 말을 아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환기를 하고자 내 마음에 창을 냈다. 코와 입 둘 중 하나만 막아도 어쨌든
숨은 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취향’이라는 내 마음속 창이었고 글을 쓰며 취향을 수집하는 행위가 내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럴수록 취향이 확고해지길 바랬고 그러기 위해선 내 취향이 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그게 내가 스트레스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누구를 붙잡고 입으로 뱉는 말을 서로 공유하는 것도 좋았지만 시간이 걸려도 혼자 곰곰이 생각하며 글로 정리하는 게 숨통이 트이는 방법이었으니까.
인스타그램의 프로필을 보면 스스로를 ‘수집품 가게’라고 칭하고 있다. 원래는 아니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브런치에서 간간이 이런 글을 올리고 나서부터 카테고리를 바꿨다. 맘에 들었다. 스스로가 어영부영하거나 우유부단한 사람보다는 적어도 취향에 관련해선 나에 대해 확신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할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수집품 가게’라는 카테고리에 명분과 책임감이 생겼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후로 내가 뭘 할 때 행복한지 취향을 찾는 것에 온 신경이 꽂혔다. 마치 좋아하는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취향을 파악하는 것처럼 대상만 다를 뿐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을 했다. 올해는 유독 더 그래야만 했다.
인간관계든 취향이든 가시적이지 않은 분야에 관해선 선뜻 일을 벌이진 않지만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돌다리를 두들기다 못해 부서지기 직전까지 두들기다 한번 확신이 생기면 깊이깊이 아래로 구멍을 내고 뿌리를 내린다. 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로 나를 정의하고자 시작했는데 범위가 넓지 않은 나의 취향에 관련해서 글을 쓰는데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한계를 많이 느꼈다. (어느새 좋아하는 글쓰기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볕 드는 날은 온다고, 올해 하반기 막바지에는 다행히도 기쁜 소식이 생겨서 아마 내년 상반기부터는 커리어 쪽으로도 더 글을 확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결론은 다행히도 내가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느껴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미래에 불안함을 늘 안고 살 것이며 유독 그게 심했던 시기가 있을 것이다. 나는 올해 특히 그랬다. 하지만 결국엔 비옥한 토양에서 열매가 더 잘 열리고 꽃이 피는 건 자연의 섭리고 이치다. 그동안은 미숙토였다면 이제는 거친 자갈들이 부서지며 점점 기름진 흙이 되는 것처럼 결코 헛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독한 경험주의자(라고 생각하)니까. 나에 대해 제일 많이 고민했고 나를 위해 배려했던 값진 시간들이 내년부터는 꼭 빛을 발할 거라고 믿는다. 또 내가 그렇게 되게끔 할 것이고. 내 수집품 가게인 내 sns와 브런치에서 열렬한 사랑과 함께 내 세계를 더 확장해가고 많은 것들을 공유할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출간할 내 책도 내 수집품 가게가 될지도.)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아직 쓰다가 미처 마무리를 짓지 못한 글들이 정말 많다. 나를 확립하고 정의함으로써 마침내 내 글들이 매듭을 지어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음이 너무 쉽게 나부끼는 때일수록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행복 아카위빙’이라는 글을 쓴 태초의 마음가짐 역시 잊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과 본인만의 행복 수집품은 무엇인지 잊지 않길 바라며 우리 모두 2022년엔 느리게나마 기쁘게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Great adio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