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숨막히는 눈치싸움하기

17-05-19.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의 꽉 찬 2일차

by 역마살아임더



아침부터 쓸데없이 감성 넘치는 펩시 라임맛


아침 일곱시에 눈을 떴는데 어느새 아저씨는 이미 내리고 안계셨다.

내가 그렇게 많이 잤나? 싶었지만 새벽에도 어디선가에선 열차가 멈추는 듯한 느낌이었으니, 거기서 내렸겠거니 싶은 마음으로 아침 세수를 하고 간단하게 씻고왔다.


▣ 오늘의 꿀팁!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씻는 방법!

- 사실은 그런거 없다.

- 정 씻고 싶다면 샤워실을 이용하는것이.... (열차 별로 없을 수도 있음)



블로그 찾아보면 뭐 골프공을 가져와서 세면대를 막고 물을 받아 머리를 감는다 하는데,

열차 한 객실에 약 40명이 타는데 그 40명에게 주어진 화장실은 두칸이다. 그 두칸을 그렇게 오래 쓰기는 매우 어렵기에 그냥 간단히 드라이샴푸와 물티슈를 적극 활용하는것이 러시아인들과 공생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양치 하는 정도의 시간은 그들도, 나도 양해 가능하다



그렇게 열차는 어느새 하바롭스크에 도착 했다.

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 구간 중 큰 역이 몇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하바롭스크.

횡단열차를 타는 사람들 중엔 이 역에서 내려 하바롭스크를 구경 하고 다시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할 만큼 볼거리가 있는가보다.


하지만 나의 목적지는 오직 바이칼 호수 이기에 고려 하진 않았다.

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 구간 중 큰 역중 하나였던 하바롭스크


정차 시간이 꽤 되는데다가 마침 아침 시간이라 내려서 기지개를 쭉쭉 펴고 다시 열차에 타서 아침을 먹으려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둘러보다가 다시 만났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났던 그 중년부부와.

블라디보스톡에서 하바롭스크를 여행 하신 후 이 열차를 타고 바이칼호수를 보러가신다고 했다.

너무 신기했는데, 그 부부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말을 텄는데 내심 불안했다.

중년의 나이를 가진 한국인들은 당연히 나에게 왜 퇴사했냐며 열정이 부족하니 하는 라떼마는 소리를 할까 불안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여행한 곳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고, 이렇게 비행기에서도 만났고, 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도 만나고 이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까지 만나니 너무 신기하다는 말을 했다.

열차를 오래 타고 가면서 여러번 이야기 했음에도 내가 왜 이 때 이 열차에 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물어보지않았다. 꽤나 고마운 일이었다. 이들과 불편해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내심 러시아인들만 가득한 곳에서 조금은 불안했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열차는 하바롭스크역을 떠났다.

하바롭스크 역에서 출발! 내 맞은편 아줌마도 촬영하시는걸 보니 열차가 마냥 "일상"은 아닌가보다.


아침을 먹고난 후 열차 안을 돌아다니다 전날 열차에 타서 내 짐을 올려준 옆 섹션의 무원과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몇시간 후 나는 인사한 것을 후회했다.

무원이가 적잖게 많이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땐 그걸 몰랐다.


매일 아침마다 청소하시던 차장님. 차장님 극한직업 아닌가요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가, 앉았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 어색해서 참을 수 없었다.

한국은, 내가 있던 서울은 너무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여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야했고, 스스로가, 그리고 분위기가 가만있는 시간을 용납하지 못해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기가 어려워 핸드폰이라도 하는 곳이 한국, 그리고 내가 있던 서울에서의 내 여가시간이었다. 뇌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없이 꽉 찬 24시간.


그리고 반대로 아무것도 할 것 없이 보내는 첫 24시간.

이런 아무것도 안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는 시간이, 혹은 일어나서 멍때리며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너무 어색했고 공허함이 컸다.


이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때 온갖 책, 넷플릭스, 심지어 러시아사람들과 함께 놀 카드게임까지 준비한다고 했나보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할 속셈으로 퇴사할 때 회사에서 사귄 친구가 준 책 한 권, 다이어리 한 권, 넷플릭스에서 미리 다운받아둔 킹덤, 그리고 핸드폰과 카메라가 끝이었다.

예쁘게 직접 포장까지 해줬던 책,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 보겠습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자아성찰 (!)을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그렇게 이유없이 무언가에 쫓겨했을까.

실제로는 아무도, 아무것도 나를 재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불안해 하고 쫓겨했을까.

왜였을지는 모르겠다.

어렸을 적, 으레 많은 부모님들이, 특히 내 경우엔 아버지가 다른 집 아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더 뛰어나야한다고 압박 주고 비교해서인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은 것을 보니 이게 답인것 같긴 했다.

보통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답이니까. 그 덕에 어려서 부터 비교에 익숙해진 나는 끊임없이 초조해하고 불안해 하는 중 인것 같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인정 해 줘야지만 내가 괜찮아진다고 생각하며. 몸만 성인이고 멘탈은 아이 때 부터 전혀 크지 않은 채로.


정말 틀린 생각임에도 계란 한판이 다되어가는 나이가 다되서야,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그걸 깨닫는 중 이기에 이제는 달라져야겠다. 대단함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순한 감상이지 평가는 아니라는걸.

누구도 나를 평가 할 수 없다. 이 평가받는다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작아지게 만들었고 착각하게 만들지않았는가. 항상 최고여야한다고 착각했다. 내 인생은 이제까지 살아온 짧은 20년 하고도 몇년이 끝이 아닌 꾸준히 나를 완성시켜야하는건데.


이 생각은 이렇게 평화로운 경치 덕에 완성 된 것 입니다


결국, 나 스스로와 주변이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어릴 적 무서운 영화를 보고 혼자 자기 무서워 하는 아이가 된지 20년이 지났으면 극복을 하거나, 아니면 무서워 함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겠는가.





아침밥을 먹은 후 스스로를 다독이며 가만 누워있다보니 잠이 오는 것은 인지상정. 낮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넷플릭스에 담아둔 킹덤을 보기 시작했다.


근데 쓸데없이 친절한 넷플릭스가 언어 설정을 영어로 해 주어서 '한복을 입었는데 영어로 대사를 치네...신기하다' 하고 한참을 보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걸 깨닫고 한국어 설정으로 바꿨다. 이런 내가 웃겨서 혼자 웃고 있으니 맞은편 아줌마가 날 보고 웃었다.



그리고 또 열차가 정차했다.


정차역에 보이는 매점. 러시아어를 모르는 나는 그저 요구르트만 사지요..


이렇게 몇시간을 타고 가도, 몇 일이 걸려 기차를 타야지 러시아의 끝에 도착한다고하니, 이 땅은 얼마나 넘치게 넓은걸까 싶었다. 열차 안에서 보면 정말 드넓다.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평야가 펼쳐졌다. 한국이었으면 빼곡하게 건물이 들어찼을텐데. 이 드넓은 땅에 열차를 건설하자 생각한 사람도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우리 자리 테이블 풍경


다시 자리로 돌아가 누워서 이번엔 친구가 준 책을 꺼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 보겠습니다. 라는 책으로 퇴사하는 나를 응원하는 마음에 잠시 찡했고, 책 가득히 담겨 있는 작가의 당당함과 생각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잠시 누워서 팔랑 거리며 읽다보니 팔이 아파 고개를 들었더니 건너편 침대에 있던 노부부 중 아저씨가 나와 똑같은 자세로 책을 보고 계셨다.



어느새 창밖을 쳐다봐도 눈이 아프지 않을 정도의 햇살이 되어 책을 아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접어둔 후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참 오랜 시간동안 창밖을 바라봤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중국인 무원이 때문이었다.

자꾸 내가 뭔가 시간이 나 보이는 것 같아보인다 싶으면 어느새 내 옆에 앉아서 말을 거는 그가 다소 부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에 대해 설명하자면, 무원이는 베이징에서 큰 회계사무소에서 일한지 3년이 되었고, 3년이 되어 긴 휴가를 왔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구나! 했지만, 자꾸 내가 틈을 보인다(?) 고 생각 할 때 마다 내 옆에 앉는 그는 약간 부담이었고,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을 즐기고 싶었기에 그를 피하고 싶었던 나의 시선은 자연히 창문으로 향했고, 상당히 많은 부분 향했다.






뭔가 이렇게 열차를 타고 오랫동안, 멀리 가는것은 처음이라 내가 이렇게 멀리 가는 중이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남들은 구글 맵에 기록 해 둔다고 하는데 나는 다행히 아이폰이라서 촬영을 하면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곳이라 해도 자동으로 지역이 지도에 찍혀서 너무 좋았다.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어딘지 모르겠더라도 일단 사진을 찍어놓아야지 하는 생각에 사진을 찍다가도 몇 번 예쁘다 풍경을 지나치고 나니 갑자기 인생의 진리가 생각났다.



나중이란 순간은 없다. 어떤 순간이든, 어떤 선택이든 “지금!”뿐이다. 사진 찍을만한 좋은 타이밍은 그 시간이 지나면 안오니까. 사진찍는 것도 이런데 하물며 인생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열차에 자신들 보다 더 나이많은 한국인이 있다며 두 할머님을 소개해 주셨다.


사실 그 할머님들은 내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차를 탈 때부터 함께 하셨는데, 너무 한국인스러운 외모지만 뭔가 풍기는 느낌은 한국인의 그것이 아니라 (어떤 느낌인진 명확히 모르겠다) 고려인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한분은 심지어 팔에 깁스까지 하고 계셨고, 이렇게 나이 많은 어르신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엔 너무 힘들지 않나 라는 나의 짧은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너무 깜짝 놀라며 인사를 했고, 그분들의 나이를 듣고 더 놀랐는데 그분들 역시 내 나이에 깜짝 놀라셨다.

스물 한살쯤 되는 애긴줄 알았는데 (그분들 입장에서) 훨씬 나이가 많다고 신기해하셨고 나는 그네들이 여든에 가깝다는 사실에 놀랐다. 국민학교 때부터 친구셨다는 두 분은 평생동안 친구로 지내며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함께 하신다고 했다. 이번엔 바이칼 호수를 본 후 다시 열차를 타고 블라디로 돌아가실 예정이라고 했다.

나도 어디가서 여행 좀 여기저기 해 봤다고 자부하는데 그분들은 이미 남미도 한바퀴 돌아보고 오신 고수이셨다. 앞으론 어디가서 여행 좀 해봤다 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머쓱함과 그네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것이라고 생각도 안했던 나의 좁은 편견이 민망해졌었다.

역시, 뭐든지 내 기준에서만 생각하면 안된다.


개인적으로 열차에서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


바깥을 구경하는 건너편 할머니를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해 사람들은 우리, 외국인에게는 이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여행이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삶의 한 순간이라 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이게 왜 여행이지? 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런데 저렇게 창밖을 열심히 구경하는 할머니를 보다보니 러시아인으로 평생 살아온 저 할머니에게도 열차가 삶의 한 순간인데도 저렇게 바깥 풍경을 낯선 눈으로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정도인데.

이 러시아라는 땅덩어리는 얼마나 큰걸까.


횡단열차에서는 뭐든지 느긋해지는 것 같다. 같은 풍경이고, 같은 사람이고, 어차피 인터넷은 안되고.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타지않는 한 창밖 말고는 볼 것도 없고. 그러다보니 느긋해지는 것 같다.


어느새 그렇게 해가 졌다.


맞은편 아줌마의 선반


잠만 자다가, 창밖을 하염없이 보다가 또 잠만 자다가, 책을 잠깐 보다가, 정차역에선 나가서 잠시 스트레칭을 하다가. 그러는 와중에 갑자기 시차는 생기고.

시차가 생기는건 신기했다.

내가 오후 세시쯤 한시간을 잤는데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세시였다.

시계를 붙잡고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보며 맞은편 침대 러시아 아줌마는 웃었다.

그렇게 한시간을 자도 안가던 오후 세시가 잠깐 창밖을 보다보니 네시가 되었다가, 다섯시가 되었다가. 시간이 마구 변했다.


이제까지는 시차가 생기려면 내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서 내려야 갑작스럽게 시차가 생겼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시차가 생긴다니. 내가 시간 위에서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열차에서의 꽉 찬 하루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