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19, 시베리아 횡단열차 첫째날의 짧은 반나절
블라디보스톡이 시베리아 횡단열차 출발지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타지는 않아 한적하게 출발했다.
건너편 침대엔 노부부가 자리했고, 내 맞은편 침대와 바로 윗쪽 침대는 주인이 없이 조용히 블라디보스톡을 빠져나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저녁으로 먹을 KFC 치킨과 간식으로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산 시나본 롤케이크를 조금 뜯어먹고, 열차에서 입고 지낼 옷으로 갈아입고 오니 슬금슬금 열시가 되고 불이 꺼졌다.
열차에서는 열시가 넘으면 불을 끈다더니. 근데 불을 끄니 아무것도 안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내 자리가 머리맡엔 창문이 있다 보니 눕기 전 잠깐 멍때리면서 밖을 바라보았다.
밖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이는 러시아의 평야와 기차의 덜컹거리는 백색소음, 그리고 탄 사람이 적은 열차.
고요해서 아름다운 밤이었고, 한국이 아닌 장소에서 이런걸 느꼈다는거에서 기분이 이상했다.
한국에선 열차를 타고 자면서 갈 일이 없었거니와, 한국에선 어딜가나 불빛이 있어서이리라.
백색소음 외엔 들리는 소리도 없고 열차가 살짝 흔들리기까지 하니 흔들리는 아기 요람이 따로 없었다.
내가 누워서 잘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열차는 여러 역에 멈추었다.
아무것도 안보이는건 아니지만 아예 자라고 판을 깔아주니 눕자마자 자동으로 눈이 감기었다.
침대에 눕자 더 열차의 진동이, 소음이 더 잘 느껴져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열차에 자면 잠만 잔다고 하는가보다.
늦은 밤, 어느 역에 도착했는데 내 건너편 침대에 아저씨가 탔다.
그 아저씨의 인기척에 잠시 깼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물을 따르다 갑자기 열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아저씨한테 물을 좀 뿌려서 당황해서 마구 닦으려고 했는데 아저씨는 쿨하게 괜찮다고 손을 흔들더니 주무셨다.
왠지 불은 꺼져있는데 실수했고, 괜찮다곤 하지만 뭔가 찝찝하면서 미안한 마음에 그냥 조용히 자는게 최고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러시아어로 사과 인사가 뭐더라 하면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첫째날 밤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