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 유 냄궁민슈? 설국열차 탑승기

16-05-19, Владивосто́к 4일차,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by 역마살아임더

오후 7 10, 모스크바행 01 열차 탑승 예정


드디어 시베리아횡단열차 1부의 서막이 오른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챙긴 후 6시까지 맡아달라고 부탁 한 후 체크아웃했다.


이 이즈바 호스텔에 대한 간략한 후기를 적어보자면,



▣이즈바호스텔 후기


장점

클로버 마트가 바로 근처에 있어 밤중에라도 뭔가 필요하면 사러나가기 좋음

나름 10시 넘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조용히 해 줌

짐을 무료로 맡아줌! (당일까지지만)

침구 나름 깔끔한 편

간단한 요리도 해 먹을 수 있음

세탁기 사용이 무료


단점

샤워실이 공용이며, 커텐으로만 나뉘어져 있음. 화장실과 붙어있어 아침에 꽤나 북적거림

정수기가 있지만, 마시면 배앓이 하기 딱 좋아보임

도미토리기준) 방 안이 좁아서 캐리어 펼치기엔 불편함

입구앞에 계단이 어마무시한 경사. 넘어지면 엉덩이 뿐만 아니라 뒷통수도 깨질 느낌



그래서 다음번에 또 블라디보스톡 행을 할 경우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클로버마트에서 가깝다는건 매우 큰 이점이었으니까



귀여운 곰이 맞이해주던 이즈바 호스텔






16일은 하루종일 날이 흐렸다.

아침부터 밝은 날씨는 아니었고, 당장이라도 비를 흩뿌릴 것 같은 날씨였다.

내가 블라디를 떠난다는걸 알고 정떼라고 이렇게까지 날이 흐렸나?


오전엔 블라디에 관광오면 다들 들러본다는 아르바트 거리를 구경 할 셈으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날이 흐려서였을까 한국인이고 러시아인이고 사람이 아무도 안보였지만, 오마이크랩이라는 킹크랩 전문점은 눈에 띄었다.


전날 1인용 킹크랩을 먹어봐서일까, 사실 갑각류여신이라고 스스로 부르고 다닐 만큼 갑각류에 사족을 못썼다. 그런 내가 킹크랩 전문점을 보고 마음이 동한것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가게에 들어가 킹크랩 반마리와 홈메이드 레몬에이드, 그리고 새우 샐러드를 시키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가시? 때문에 걱정 됐지만 그런건 어림도 없지!


이 가게에서 사람들은 내가 이걸 다 먹겠냐는 눈으로 가져다 주었고, 그 눈은 잠시 후 쟤 뭐야 하는 눈으로 바뀌었음을 믿어 의심치 아니한다. 왜냐면 매장 내 종업원들이 다들 흥미로운 눈으로 보다가 게껍질 그릇이 다 차자마자 바로 바꿔다 주면서 맛있어요? 라고 물어보았기 때문. 먹방찍어둘껄...


3년동안 회사생활을 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팀원들과 회식으로 건대에 있는 마라롱샤 집에 갔을때 내가 그렇게 신나게 먹는건 처음 봤다고 놀릴 정도로 갑각류를 좋아하는데, 이 오마이크랩에서의 식사는 단연코 만족스러웠다. 블라디에서 기억나는건 까르보나라와 킹크랩!


가게에서 약 3만원 가량의 돈을 지불하고 킹크랩과 새우로 가득찬 배를 만족스레 두드리며 아르바트 거리를 지나 며칠 전 갔던 해양공원으로 향했다. 해양공원 가는 길에 봤던 카페에서 잠시 글이나 쓸 요량으로.


나는 커피와 술을 잘 못마신다. 맥주 한잔에도 가게에 있는 맥주는 혼자 다 마신양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는, 전형적인 알코올 분해 효소가 한 개도 없는 사람이며 커피 역시 투샷이면 밤샘도 거뜬할 정도이다. 그래서 보통 커피는 아예 안마시거나 원샷 혹은 반샷만 마시는 정도. 그러다보니 카페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해양공원을 가는길에 발견했던 카페를 도전하고자 했던 이유는 러시아가 의외로 디저트가 유명한 나라라는 평에서였다. 굼 백화점 내부에도 유명한 에끌레어 맛집이 있지만 디저트를 찾아먹는 편은 아니라 에끌레어까지는 너무 거창했고, 그냥 해외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여행자 이미지를 갖고싶은 마음이었다.


이 모든게 다 합쳐서 오천원 조금 안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카페 직원의 추천으로 커피 한잔과 마카롱을 시켜 창가에 앉아 다이어리를 쓰다보니 카페 한 켠에 데이트하는 러시아 커플이 보였다.


러시아사람들은 무뚝뚝하게 생긴 얼굴과 큰 체격과는 별개로 매우 로맨틱한 사람들이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짧은 3박 4일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만난 러시아 남자들의 퇴근길엔 세명 중 두명은 큰 꽃다발을 들고 퇴근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어머 로맨틱해- 하고 생각하다가 하도 그런 모습이 보이니 요즘 유행하는 꽃이 뭔지 관찰하기에 이르렀다.

크고 우람하다...! 그들의 큰 손


이 카페에서 본 내 나이 또래로 유추되는 커플의 손에도 남자가 안겨준 큰 꽃다발이 있었다.


비록 말은 못알아 듣지만 그네들의 흐뭇한 데이트를 구경하며 바깥을 구경하자니 내가 나한테 던진 일곱가지 질문 중 다섯번째 질문인 나에대한 자신감은 높은데 느끼기에 자존감은 낮은 그 괴리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자존감이 낮아서일 수도 있고, 남에 의해 올라가는게 자존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자존감은 시작부터가 스스로 자(自)로 시작하는 만큼 남이 아닌 나 스스로가 가져야 하는 마음인데 나 스스로가 그렇게 남에 의해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 하니 괴리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자존감도, 자신감도 낮았던 것은 아닐까.

낮아지게 된 이유를 곱씹어보니, 아마도 어릴때 부터 자꾸 잘해라, 잘해라 하는 분위기와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낸 뒤틀림이라고 생각 된다. 분명 잘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훨씬 월등한 이들을 보며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깎아 내리기에 생긴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와서 나에게 얻은 것이 없고 오히려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이제는그냥 있는그대로 나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그대로의 내가 좋다고. 적어도 지금의 나는 러시아어 한마디도 못해도 비록 4일뿐이지만 홀로 여행하며 인종 차별도 당하지 않았고, 아무리 그네들이 나를 빤히 보며 기를 죽이려 한다 해도 끄떡하지 않는 저세상 멘탈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이 멘탈은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낮은 사람의 멘탈이라기엔 강한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이런 진지한 고민을 하는데 팔뚝으로 자꾸 사랑을 고백하는것 같던 내 옆 테이블 남자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내 자존감과 자신감은 사실 이미 높은데 내가 못알아차리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 높은, 자존감 높은 누구라도 내심 불안감은 있는 편인데 평소 작은 불안한 요소라도 크게 받아들이는 쫄보 성향의 나에게는 그 작은것도 크게 와닿았던 것 일지도 모른다.

애당초 자존감이니 자신감이니 하는게 전부 부질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이 내용을 엽서나 다이어리에 끄적거리고 있지 말고 마지막으로 뭔가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 다시 해양공원에 들어갔다.


왜 뜬금없이 다시 해양공원이냐 한다면,

처음 해양공원에 왔을때 부터 눈에 띄었던 관람차를 타보고자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대 후회를 했다.


날이 워낙 흐렸던 16일, 그냥 올라오기엔 너무 추운날씨와 흐린 하늘 덕에 보이는 것은 없고 얻은건 떨리는 내 몸이었다.

영상을 찍어볼까 했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었고, 안전벨트나 안전장치 하나도 없이 그냥 올려보내는 그들의 대담함(!)에 묵언수행하듯 조용히 다니던 내가 겁이나서 아무말이나 지껄이게 되어 블라디 보스톡의 마지막을 아주 화끈하게 장식했다.




흐린날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하니 예뻤던 블라디보스톡 해양공원 내부 놀이공원



관람차를 타고 블라디의 미친 바람에 정신없이 얻어터진 후 겨울나라에서 한달을 더 있으려면 뭐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굼 백화점으로 얼른 후다닥 가서 기모 맨투맨을 한 개 구매 한 후 덜덜 떨리는 손이지만 유명하다는 젤라또까지 한번 먹고 다시 맡겨둔 짐을 찾아 숙소로 돌아가 짐을 끌고 나왔다.





원래 예상보단 빠르게 역으로 출발 한 것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걸어서 15분 정도였던 이즈바호스텔에서 블라디보스톡 기차역까지 30킬로에 육박하는 짐을 끌고 가기에는 너무 버거웠으며, 첫날 저녁 기차에서 먹을 음식과 물, 그리고 아까 카페에서 쓴 엽서를 기차역 앞에 있는 우체국에서 보내고 기진맥진하여 역에 도착하니 어느새 여섯시 였기 때문이다.


편지 내용은 안보이게 작게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마트에서 6리터짜리 물과 간단한 주전부리, 음료수를 사고 원래의30킬로에 육박하는 캐리어와 열차에서 필요한 짐이 들은 가방까지 합쳐지니

니...으데로 피난가니?

이건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 아닌 피난민꼴 이었다.

혹은 시베리아로 숱하게 유배 보내졌던 유배민의 모습.



열차 탑승은 열차 출발하기 30분 전부터 가능하기에 6시 40분부터 탑승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블라디보스톡 역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플랫폼은 지하에 있다는 점 이었다. (블라디보스톡 입구는 1층에 있다!)


더플백을 내려놓고 다시 올라오는 내 눈에 보인 나의 남은 짐들...RIP 내 손..

이 30킬로에 육박하는 캐리어와 6리터짜리 물, 그리고 큰 더플백이며 원래 들고다니는 에코백과 백팩까지 옮기고 나니 그 추운 블라디보스톡에 있었지만 내 몸에선 김이 나는 것 같았다.


차장님 손에 들린것은 러시아 국민들의 여권


시베리아횡단열차에 타기 위해서는 러시아 자국민도 여권을 보여줘야 했다.

이 점이 꽤나 의아했는데 확실한건 아니고 왜일까 계속 의문을 갖고 생각해 보니, 이 열차는 몽골로, 중국으로도 통해있기에 사람들의 여권이 필요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이었던 만큼, 여러 사회주의 공화국이 모여 만든 국가이기에 필요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둘 다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열차에 타면서 열차 티켓을 주면 차장이 티켓을 걷어 갔다가 내릴 때가 되면 내릴때가 되었다며 자리에 와서 티켓을 다시 돌려준다. 그래도 혹시 몰라 (?) 실물티켓이 아닌 바우처를 건네 주고 열차에 올랐다.

열차 입장!



열차에 타면 매트리스와 침대 시트, 베갯잇과 베개를 나눠주는데 이건 모두 알아서 씌워서 사용해야 한다.



나의 침대이자 짐 보관함, 침대밑에 공간있어요...

그리고 좌석 밑에 짐을 보관 할 수 있는데 내가 들고 탄 28인치 캐리어의 경우 좌석 밑에 안들어가서 끙끙 거리니 옆 칸에 있던 중국인 남자애가 저~ 맨 윗칸으로 올리는걸 도와줬다.


그의 이름 무원...........3일간의 어색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열차가 출발하는걸 기다리다보니 블라디보스톡 역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념비가 있다는게 생각이 났다.


9,288이라고 적혀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념비를 한장 찍어와야지! 하는게 갑자기 생각이 났고, 그래서 열차에서 내려 냅다 뛰었다.

어느덧 사람들이 많이 탑승해서 플랫폼에 사람들이 많이 없어 더 조급한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가서 사진을 급하게 찍었는데, 내가 달리는 걸 보며 차장들이 즐거워 하는걸 보았다. 그들이 즐거웠다면 만족한다. 그리고 결국 인증사진을 찍었기에 땀을 쭉쭉 흘렸지만 매우 만족한다.


왜냐하면 모스크바에 이 기념비의 반쪽 (?) 이 있기 때문!

급하게 찍느라 비뚤어진 비석

뭔가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의 기념비를 같이 찍어두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마 열흘 후에나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모스크바 행 001번 열차 16번칸 23번 침대에서의 3일하고도 반나절이 시작 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자마자 해야할 일!

열차에 타면 차장실 앞에 있는 시간표 찍어두기! 열차에서 시차가 30번이나 바뀐다고 한다. 열차가 언제 멈추는지는 차장실 앞에 있는 시간표만이 안다.



▣열차 시간표 보는 방법

- 가장 오른쪽의 Mck는 모스크바를 의미한다.

고로 모스크바 시간에서 7시간을 더한 구간을 지난다는 뜻

혹은 그 옆의 UTC(표준시간)에서 10시간을 더한 시간으로 참고하면 된다.

- 가운데 있는 숫자들은 해당 정차역에서 얼마나 멈춘다는 뜻이므로, 시간분배를 잘하면 된다.

- 하지만, 그냥 상단에서부터 순서대로 이 역들에 멈추기에, 이 시간에 멈추는구나 라고 이해하면 된다!

- 열차 정차 10분 전부터 화장실 사용 금지이므로 유의!

(지만 문제 되본 적 없음)


사실, 열차 시간표를 안봐도 객실 내 출입문 위에 어디 역에라고 뜨기에 그걸 참고하는게 가장 빠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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