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19, Владивосто́к 3일차,시베리아 횡단열차 D-1
여전히 침대에서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오늘 뭐하지 고민 하다가 생각났다. 내일은 드디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는 날이라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티켓은 이미 한국에서 퇴사 전 출력 해 놓았지만 역에 가면 실물 티켓을 바꿔준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뭔가 내가 이걸 정말 탔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당연!
아침으로 사과를 먹으며 찾아본 결과 역에서 실물 티켓으로 교환 해 준다 하여 첫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이 되었다.
5월 15일의 블라디보스톡 아침 날씨도 여전히 흐렸다. 그나마 다행인건 비가 안온다는 것? 그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휘몰아치는 차가운 봄바람에 바람막이를 여미며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러시아에 온 첫 날, 첫날이니 뭐라도 봐야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걸어왔던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에 들어갔다.
러시아의 모든 공공기관, 큰 건물은 들어가기 위해선 모든 소지품 검사를 해야한다. 기차역, 지하철역, 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어김없이 소지품 검사를 했었다. 물론 지하철은 사람들이 하도 바쁘게 다니기에 필수는 아니고 검사원과 눈이 마주치거나 큰 짐을 들고 있으면 해야했지만.
가볍게 나왔기에 검사할 짐도 없어 가볍게 짐을 검사 시키고 역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이 예쁘다더니 천장에 그림도 예쁘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뭔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이자 출발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밑 층으로 내려간다 (어차피 2층짜리 건물)
화장실을 지나 쭉쭉 간다
(TMI_ 화장실 이용비 20루블!)
고객 센터에서 번호표 뽑고 대기
번호가 되면 창구로 가서 여권과 바우처를 내민다!
러시아어로 뭔가 할 줄 아는 말이 있었으면 했지만, 1도 없기에, 그냥 소심히 여권과 바우처를 내밀었다.
한국어를 통해 얻어낸 소중한 티켓.
나는 5월 16일 오후 7시 10분 이르츠쿠츠 행 티켓을 얻었다!
티켓을 바꾼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숙소를 향했다. 사실 숙소에서 빨래를 돌리고 있었기에. 그런 나의 발길을 잡은건 다름아닌 서점이었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한국의 올리브영 같은? 츄다데이를 잠시 들러보려다가 그 건너편에 있는 서점을 발견해서 들어갔다가 러시아가 그림이 유명한 나라였지 하는게 새삼 생각났다.
색연필만 해도 이렇게 종류가 많은데 그냥 동네 서점 1일 뿐인 이 규모에 감탄하며 그림을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근거없는 도전감으로 흑탄을 하나 구매 하며 각 도시에서 느낀점을 내가 나에게 엽서로 써서 편지를 보내불까 하는 마음으로 엽서도 한 장 집었다.
나중에 한국에 도착 해 보니 블라디보스톡, 바이칼, 모스크바에서 보낸 편지가 내 앞에 도착 해 있었고, 다시 그 엽서를 읽는건 꽤나 여행지의 기억을 돌이키는 일이어서 기분 좋았다. 다음에도 멀리 여행을 가게 된다면 한번쯤은 시도 해 볼 일인것 같았다. 비록 몇몇 도시에서 (사실 러시아의 많은 도시에서 ) 우체국 찾는건 어려웠지만.
실물티켓을 교환하러 간 시간대도 이미 오후였던지라 배가 너무 고파 참을 수가 없어 식사를 하러갔다.
이번에 골랐던 집은 독수리 전망대로 가는 길에 발견했던 음식점이었는데 간판에 힌깔리 (조지아식 만두)가 그려져 있어서 힌깔리를 먹어보고자 했던 속셈이었다.
(나중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더니 이 집이 러시아의 김밥천국 같은 곳이었다는걸 알게 된 것은 한달 하고도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이제까지 먹은 음식들은 야채가 한 개도 없었다.고 하면 과장이지만, 야채를 생생한 상태로 두지 않고 굽거나 튀기거나 찌는 등 가공을 최소 한번은 거친 상태의 야채를 줬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샐러드가 너무나도 고파져 샐러드와 힌깔리, 그리고 차를 주문 했다.
이 힌깔리는 장갑을 끼고 손으로 기둥을 쥔 채 바닥을 뜯어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내가 시켰던 힌깔리는 총 다섯가지 맛이 나오는 힌깔리였다. 치즈, 양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야채 맛이었는데, 음...소고기 외에는 맛이없어서 전부 남겼다.
그 이후로 힌깔리는 다시 안찾았던 것 같다.
샐러드는 특히하게 소 혀 샐러드가 있기에 소 혀 샐러드를 시켰는데 내가 원하는 샐러드가 아닌 소스에 매우 많이 버무려져 있었고 그나마 채소들도 익힌채로 나와 슬펐었다.
그렇지만 화장실이 예뻤고, 식사를 하고 보니 어느새 흐렸던 날씨가 반짝 맑아졌기에 독수리 전망대에서의 사진을 다시 도전 해 볼 법 하단 생각이 들어 재빠르게 짐을 챙겨 독수리 전망대로 향했다.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신나게 독수리 전망대에 올라가니 오늘은 운이 좋게도 아무도 없어 혼자 삼각대를 놓고 마구 찍었다.
사진을 찍고 신나게 걸어 내려오다 보니 다시 날씨가 흐려졌다.
아무래도 사진찍으라는 날씨의 깊은 배려였던 것 같다.
가끔 나는 내 본명에 "Sun"이 있어 여행 하는 내내 해가 반짝 한다고 주장 하는데 이번에도 같은 경우였던 것 같다.
내가 사진을 못찍어서 아쉬워하니 잠시 구름이 비켜줬다고 착각하며 기분좋게 내려왔더니 해가 다 지고 있었다. 시간도 어느새 여섯시가 되었고, 힌깔리 조금과 샐러드만 먹어서인지 배가 고파 주변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이 음식점은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맛있는 까르보나라를 판다는 구글맵 후기가 마음에 들어 들어간 "Proto franco"
까르보나라를 시키고, 1인용 랍스터를 판다는 말에 킹크랩도 함께 주문 한 후 신나서 사진을 찍는데 눈이 마주쳤다.
나와 함께 블라디보스톡을 왔던 내 옆자리 중년 부부와.
이 부부와는 공항에서 유심칩을 사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블라디보스톡 시내로 들어오면서도 얘기를 나눴던 지라 기억에 남아있었었는데. 아저씨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 주셨는데 두 분은 호텔에서 묵으시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예정이라고 하셨다.가볍게 안부를 나누는데 기분이 묘했다.
뭔가 타지에서 어른을 만나는것도 처음이지만 애초에 이렇게 여행하며 자주 누군가를 마주친 기억이 없었던지라 신기했었다.
혼자 셀카를 찍고 있었던지라 약간 머쓱해 하는 나의 맥을 적절히 끊어주며 까르보나라가 나왔다.
내가 정말 장담하건대 2019년 먹어봤던 파스타중에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첫 입을 넣는 순간 추운 블라디보스톡의 한 음식점이 아닌 따스한 통나무 집에서 장작불이 타고 있는 와중에 먹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1인용 킹크랩이 나왔는데
만원도 안하는 킹크랩이니 무엇을 기대했는가 싶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어딘가 싶었다.
그리고 원래 갑각류 여신이라고 스스로를 부를 만큼 갑각류를 좋아하니 내일은 마지막으로 킹크랩이나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한 후 여행 3일차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