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투디 언바이칼~~!

20-05-19, 바이칼호수 위,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날

by 역마살아임더
시베리아를 함께 건너는 중인 기구한 내 캐리어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 위에 떠있는 섬으로, 바이칼 호수를 보기에 가장 좋은 섬 이라고 한다.

길게 여행 하는 만큼, 따로 차를 타고 다섯시간은 더 들어가야하지만 남는게 시간이므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숙소바로 앞까지 버스가 와 준 덕분에 그나마 편하게 간 것 같다.

버스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곳을 가는 사람들을 묶어서 실어다주는 차라고 보면 되는 이것은 바로...



밴이었다.

아홉시에 온다는 말과는 달리 실제로 버스는 아홉시 반에 왔고, 나와 같이 기다리던 젊은 부부를 마지막으로 차는 출발했다.

이들은 각각 탄 곳은 달라도 내리는 곳은 모두 후지르섬이었고, 숙소 주소가 적힌 종이를 주면 또 숙소 앞에서 내려주는것이 매우 편했다.


다만 엄청 흔들려서 이날 딱히 내 발로 걸어다니진 않았지만, 걸음수가 3만보 가량이 찍힌다는게 단점



버스는 잠시 주유소에 들르는가 싶더니 이르츠쿠츠 시내를 벗어나 어딘지 모를곳들을 달리기 시작했고, 약 두시간 정도 가다보니 아무것도 없는 들판사이에 생긴 정지선 표시도 없는 도로가 나타났다.

가는길에 보인 비행...장..?


후지르 마을이 아무리 자그맣다고 한들, 그래도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데도 이런 도로를 달려서 간다는 것이 적잖이 충격이었다. 또, 도로를 달리는 동안 당연히 핸드폰이 안터져서 러시아에서는 사람이 안사는 곳은 핸드폰도 안터진다는 말이 진짜구나 하며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별반 다를것 없는 창밖을 바라보다 잠이들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흔들린다 > 요람에 누운것 마냥 잔다 라는 공식이 몸에 배겼나보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나니 어느새 열한시 반을 넘었고, 중간에 한번 내려서 밥을 먹는다곤 하지만 언제 먹는지 알 수가 없고, 애초에 차가 약속 시간보다 늦게 출발 했으니 좀 더 있다 먹겠지 하는 계산에 이르츠쿠츠 슈퍼에서 산 방울토마토를 먹기시작했다.

호스텔에서 이름 구별용으로 붙여놨던 내 이름표와 방울토마토

우당탕탕 거리는 도로를 달리는 덕분에 내가 씹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방울토마토가 입에 씹혔다.

이런 놀라운 경험, 러시아에서 해냅니다.

방울토마토를 다섯개쯤 먹었을까, 버스는 휴게소 겸 식당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블로그에서 본 정보에 의하면 버스가 한참 달리다가 아마도 제휴가 되어있는듯한 한 휴게소 겸 식당에 멈춰서 30분에서 한시간 정도를 멈춘다했고, 여기가 거긴갑다 하며 따라 내려 줄을 서서 메뉴판을 들여보다가 당황했다. 모두 러시아어였기 떄문에.

적잖이 당황하며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도 어깨를 으쓱 하더니 그냥 메뉴판에 있는 그림을 보고 주문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

그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나도 소심한 모험을 실시했고,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인지 모르겠지만.....여튼 모험이었다.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어떻게 알고 종업원이 내게 음식을 가져다 주더라. 매우 신기해 하며 앉아서 식당안을 구경하니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식당안엔 모두 중국인, 중국인


열차에서 만났었던 중국인, 무원이의 말에 의하면 베이징보다도 더 중국 북부로 올라가면 중국 내부에서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탈 경우 많은 중국인들과 함께 여행하기에 내가 한국인들과 접촉하고싶어하지않아하듯, 무원이도 중국인들과 접촉하기 싫어서 블라디보스톡에 와서 열차를 탔다고 하던데, 이 사람들은 다 중국에서 넘어왔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는 내 앞에 누군가가 헤이! 하면서 앉았다.


정말 놀랍게도 무원이었다.

내가 정말 놀라워서 너 어떻게 여기 왔냐고 하니 버스타고 왔지? 라며 창의력넘치는 대답을 했다.

그러더니 뒤엔 나도 널 만날 수 있을 까 했는데 정말 만날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분명히 열차에서 듣기론 이르츠쿠츠에서 지낼 숙소도 안구했다고 하더니, 중국인의 행동력인가 싶어서 대단한 마음에 다시 만나서 반갑고 맛있게 밥 먹으라고 하며 같이 다시 대화를 나누었더니 내가 중국인들로 생각했던 내 주변 이들은 대만인인것 같다고 설명 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중국어는 할 수 있지만 억양으로 어디 지역 사람인지까지 밝혀낼 정도는 아니기에 그의 말이 매우 흥미로웠다. 약간 한국에서 전라도 지역 경상도 지역을 구분해내는 거랑 같은걸까.

여기까지 와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기에 신기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몇분 후에 차가 출발하는지 알 수가 없어 저 사람만 따라가야지 하고 찜콩 했던 사람이 마침 밥을 다 먹고 일어났기에 난 저사람을 따라가야한다며 약간 도망치듯이 후다닥 자리를 떴다.

버스에 다시 오르니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밥을 먹은 사람들이 모두 탔고, 다시 버스는 출발 했다.

무원이를 두고.



자작나무 숲을 달리고, 평야를 약 두시간 정도 더 달리고 나자, 드디어 버스는 후지르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처음 만난 바이칼호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신기했다.

한눈에 담기지도 않을 정도로 넓은 호수, 민족의 젖줄이니 뭐니 하는 수식어가 수도없이 붙는 바이칼.

그 맑음에 일단 놀랐고, 넓이에 또 놀랐다.

나만 놀란것은 아닌지, 같이 버스를 탔던 외국인들도 달려가 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약 5일간 지겹게 보게 될 바이칼이겠지만, 처음만나는데 신기한건 어쩔 수 없었다.



한 10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바이칼호수를 가로지르며 배가 도착해서 차가 먼저 배에 실어졌다.



차 먼저, 그리고 남은 공간에 옹기종기 사람을 태우는 배

배에 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도 배에 걸어올랐다.

배는 약 15분 가량을 탄다고 들었다.

배가 뜬다는 것으로도 신기한데, 배가 잠깐도 아니고 10분정도 탄다니,

이게 정말 호수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라 하기엔 짠 소금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담백한, 담담하니 아무말 하지않을것 같은 호수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묵묵하게 들어줄 것 같은 담담함.

이렇게 맑은 물 위로 지나간다

배에서 내린 후 다시 버스를 찾아 타고


(이번에도 식당에서 점찍어둔 사람만 쫓아다니며 버스를 눈치로 탔다!)

한시간 남짓하게 달리니 어느새 후지르 마을에 도착했다.

숙소 바로 코 앞에서 짐을 내려주고, 그것도 모자라 숙소 문을 못열어 고민하는 나를 보고 기사아저씨와 아직 버스안에 남아있는 이들이 모두 다 나를 보고 응원 해 주었다.

응원만 하지말고 문을 열어줘....하는 찰나에 사람이 나왔고, 숙소안으로 무사 입성 했다.




내가 선택한 숙소는 “베레크 나데즈디”

인터넷에 후지르마을 숙소를 검색하면 주로 나오는 숙소는 “니키타 하우스”와 “다이애나의 집” 이었는데, 애초에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최소화 하고싶었던 나에게는 당연히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부*닷컴에서 검색하다 그나마 숙소 후기가 좋은 곳으로 예약했다.

바로 앞에 바이칼호수가 있어 샤먼바위에 가기도 쉽고, 방안에서 호수가 보인다는 평에서였다.



▣후지르마을에서 숙소 구하는 꿀팁

- 가장 쉬운것은 니키타 하우스로 가는 것.

> 다만, 요즘 한국인들이 많이 이곳을 찾아 모든 가격이 조금 쎈 편이라고 한다.

- 화장실이 숙소 안에 있다면 당장 골라야한다.

> 화장실만 있어도 후지르 마을에서의 삶의 질은 수직상승한다.



그리고 고양이 때문이었다.

이 개냥이같은 고양이가 선택의 이유


여러마리의 개냥이를 키우는 덕분에 지내는 내내 인간 캣닢이 된 양 고양이들의 관심을 받는 설레는 생활을 했던 듯.



러시아에서 마주한 보기 드물게 영어를 잘 하는 주인집 딸의 설명으로 투어 가격은 얼마인지, 이르츠쿠츠로 돌아가는 비용은 얼마인지, 리스트비얀카로 가는 직통 버스는 얼마인지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서 고개를 돌리자 와! 소리가 나왔다.


숙소에서 보이는 바이칼 뷰


비록 방은 깔끔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꾸미려 노력했다는 평을 주고싶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 자다 깨면 죽음이겠군 하는 감상과 함께 일단 침대에 누웠다.

나는 혼자 왔음에도 불구하고 2인실을 혼자 써서 한 침대는 짐을 놓는 침대로, 다른 한 침대만 사용해서 매우 만족했었다.


잠시 누워있다가 숙소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바이칼 호수로 한번 내려가볼 생각으로 일어났다.

아직 네시 반 밖에 되질 않았으니, 조금이라도 호수를 보고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숙소 샤워실 문을 열었다가 적잖이 당황했는데,

바로....이것 때문이었다.

샤워실...?

이게 샤워실이었다.


억울하게도 사진으로보면 그럴듯 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슬레이트로 만들어진듯한 간이샤워실에 불과했고,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으면 후지르 한복판에 알몸으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따뜻한 물을 틀어 미리 공기를 덥힌 후 옷을 벗으면 잠시 후 온수를 다 쓰게 되었다.


게다가 벽이 너무 얇아 내가 샤워를 하면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가 다 들렸다.

말그대로 길 위의 샤워가 따로 없었다.





숙소에서 나와 후지르 마을을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다.

슈퍼 위치가 어딘지나 볼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길도 비포장도로의 모래바닥인 이곳은, 바로 후지르마을

아무것도 없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마을이 정말 마을(!)이다 싶었다.

내가 왔던 5월은 더욱이나 비수기라서 그런지 가는 음식점들마다 다 문을 닫았고, 약국과 슈퍼만 문을 열었었다.


숙소에서 아침만 신청하고 저녁은 신청 안했던지라, 저녁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벌써 감감했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먹으려고 갖고 온 음식을 먹으면 되지만, 이 음식도 언젠가는 먹어야 하는 것이기에 마냥 먹을 순 없을텐데 하는 걱정과 함께 슈퍼를 들어가 먹을만한게 있는지 둘러본 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바이칼 호수를 향해 곧장 걸어가며 마을을 구경했다.



러시아의 아이스크림들은 투박해서 솔직한 맛들

마을 자체가 아기자기해서 귀여웠다. 숙소도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것 같더라니, 곳곳에 사람들의 손길이 다 묻어있었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창문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창문틀을 만들어 쓰는 것이 하나의 문화여서 전쟁통에 피난을 가거나 이사를 가도 떼어간다고 하는걸 어디서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창문이 다들 화려했다.

여기저기 동네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마을 끝자락에 도착해 바이칼 호수로 내려갔다.

우아직을 많이 타고 다니던 후지르마을과 마을 곳곳.


비수기라서 아무도 없는 마을에 조금 쫄았지만, 덕분에 호수 앞에 가서 걸터앉을 때 까지 아무도 없는 점은 너무 좋았다. 호수와 나 단 둘이만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말을 걸면 따뜻하게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은 호수를 온전히 나만 즐길 수 있어서.

가만 서서 호수를 구경하다 한국에서도 어디서도 잘하는, 아무데나 엉덩이 깔고앉기를 시전했다.

가만 앉아서 멍하니 호수를 10분정도는 들여다 본 것 같다.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나.


이정도면 스투시 룩북에서 실어주세요..


나는 유튜브등의 콘텐츠도 안보는 사람이 되어서 그게 의문이었는데 여기 와서는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어떠한 자극도 주지않아 더 충격인 이 고요함을 내가 오랫동안 보고있음에도 질리질 않는다니.

내 마음가짐의 문제도 있겠지만, 애초에 내가 콘텐츠를 보기 싫어했던 이유는 빠르게 정보를 얻고 싶은데 그게 안되서 였다.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봐도 약 5분은 봐야하기에. 하지만 나는 그 5분을 할애하기엔 너무 조급했고, 빨리빨리 병 말기 환자였다. 빠르게 정보를 얻고 사라지고싶은데, 다음으로 넘어가고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짜증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안봤던 것 같다.


세상에 호수 위로 고기잡이 배도 뜬다니


그걸 확실히 느낀건 중국어를 배우면서였다.

기본적으로 영어는 의무교육을 받는 기간동안만 쳐도 약 10년가량은 꾸준히 배운다.

반대로 중국어는 내 스스로의 흥미가 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운지 3개월만에 HSK 5급을 딴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왜 난 빨리 실력이 늘지않는가 혼자를 타박했다.

그때 친구가 해줬던 말이 뜨끔해서 더는 징징거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가 정말 그랬구나 싶었다.

친구가 내게 해줬던 말은 “조급해 하지말라”는 것이었는데, 당시엔 그냥 징징거리는 걸 듣기싫어서 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조급함이 문제였구나 싶었다.



흔히들 가랑비에 바지가 젖는걸 모른다고 한다. 천천히 젖어들어가는걸 내 인생의 태도로 삼기로 했다.

이제까지는 어딜가서나 빛나야한다고, 빨리 성과를 내야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천천히 젖어들어서 나만의 자리를 갖기로.

이 호수를 보기까지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왔는데,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었던 만큼 얼마든지 이젠 기다릴 수 있을것이다.




해가 점점 길어지는 것을 보고 슬슬 숙소로 돌아오며 다시 슈퍼에 들러 맥주와 주전부리 등을 한아름 사들고 숙소로 들어왔더니 문 앞에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날씨 덕분에 창밖에 음식과 물을 내놔야지 하며 창문을 열려고 하자 그곳에도 고양이가 들어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다닥 샤워를 한 후 방으로 돌아와 문단속을 하고 창문 앞에 의자를 갖다두고 바이칼 호수를 안주삼아 맥주를 한잔 하다 잠에 들었다.


상당히 고급 안주값을 하던 바이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