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9, 바이칼 호수 2일차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창문을 열면 이런 풍경이 보인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바이칼호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베레크나데즈디에서는 아침을 제공해주지만 (금액별도) 아침 식사 시간이 아홉시부터여서 일곱시에 일어나서 한참을 바이칼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보통 한번에 길게 어떠한 물체를 잘 바라보지 못하는 현대인의 고질병같은 것에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칼 호수는 그저 나에게 감사함만을 주는 공간이었다.
만난지 이제 겨우 12시간 조금 넘었음에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공간.
그런 공간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어느순간부터 유튜브등의 콘텐츠도 안보는 사람이 되어서 그게 의문이었는데 여기 와서는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어떠한 자극도 주지않아 더 충격인 이 고요함을 내가 오랫동안 보고있음에도 질리질 않는다니.
내 마음가짐의 문제도 있겠지만, 애초에 내가 콘텐츠를 보기 싫어했던 이유는 빠르게 정보를 얻고 싶은데 그게 안되서 였다.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봐도 약 5분은 봐야하기에. 하지만 나는 그 5분을 할애하기엔 너무 조급했고, 빨리빨리 병 말기 환자였다. 빠르게 정보를 얻고 사라지고싶은데, 다음으로 넘어가고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짜증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안봤던 것 같다.
그걸 확실히 느낀건 중국어를 배우면서였다.
기본적으로 영어는 의무교육을 받는 기간동안만 쳐도 약 10년가량은 꾸준히 배운다.
반대로 중국어는 내 스스로의 흥미가 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운지 3개월만에 hsk 5급을 딴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왜 난 빨리 실력이 늘지않는가 혼자를 타박했다.
그때 친구가 해줬던 말이 뜨끔해서 더는 징징거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가 정말 그랬구나 싶었다.
친구가 내게 해줬던 말은 “조급해 하지말라”는 것이었는데, 당시엔 그냥 징징거리는 걸 듣기싫어서 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조급함이 문제였구나 싶었다.
어느새 여덟시 반이 되었기에 식당으로 내려가봤다.
이 집에선 고양이를 많이 키우고 그 고양이들이 전부 개냥이라서 유명하지만, 아옹다옹 하는 모습을 보니 그저 귀여웠고 계속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양이들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아침이 나왔다며 전달 해 주셨고, 음식을 받으며 내일 바이칼 호수 남부투어와 오늘 저녁 러시아식 사우나 반야를 체험 해 보겠다고 말했다.
바이칼 호수에 갔다온 사람들을 보니 다들 북부투어만 가기에 남부투어는 뭔가 싶어서 남들이 안하는걸 하겠다는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 것과 원래 바이칼 호수를 겨울에 오면 개썰매를 탈 수 있다는데 개썰매는 탈 수 없으니 러시아식 사우나를 대신 경험하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러시아 가정식이라더니 다른 서양식 아침이랑 별반 다를것 없는데..? 하며 기대 없이 떠먹어봤는데 의외로 맛있어서 놀라웠다.
죽같이 생긴것은 달콤하고, 차는 상큼하고. 빵은 설탕과 계란을 적절히 섞어 달달하고 포슬포슬하니 맛있었고, 계란은 까보니 매우 부드러워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서 뒹굴거리며 오늘은 뭐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피크닉이나 즐기자 싶었다.
전날 가본 마트가 이 마을의 왠만한 음식을 책임지는 것 같을 만큼 컸고, 슈퍼 안에 베이커리도 따로 있었으며 주류코너는 말해뭐해 수준으로 훌륭했다.
오늘은 피크닉이다- 하고 마음을 정한 뒤 전날 보고 당황했던 샤워 부스를 이용한 후 숙소에서 나와 다시 슈퍼를 향해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이제 다들 예상하겠지만, 무원이였다.
어디서 묵느냐는 나의 질문에 저쪽 어드메를 가리켰고, 그러는 너는 어디에 머무냐는 질문에 나도 어드메를 가르켰다. 여기서도 만날꺼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정말 만나자 신기한 마음이었지만 이상하게 오싹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인 것 같다.
무원이를 뒤로 하고 길 곳곳에 있는 소똥을 피해 걸어 슈퍼에 도착했다.
바이칼 호수에 와서, 이 후지르 마을에 와서 느낀점인데 너무 공기가 맑고 광활한 공간이라 그런지 가시거리가 매우 넓어지고, 분명 걸어가면 머나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이런 경험은 한국에서 일산에 갔을때 이후 처음이라 분명히 내 숙소에서도 보이던 슈퍼를 가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던걸 생각 해 보면 조금 놀라우면서도 담담했다.
진짜 코앞에 있는데...왜 이렇게 멀리 걸리는거니...
슈퍼에 도착하여 피크닉 용 살라미 소세지, 작은 와인 한 병 (러시아는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술 가격이 싸다!), 한국에서 가져온 콘플레이크를 말아마실 우유를 구매한 후 숙소로 다시 돌아가 피크닉 용 매트를 든 후 숙소 뒤 바이칼 호수로 가서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곳에 자리를 폈다.
이렇게 드넓은 공간에 나만 홀로 있으니 뭔가 호수가 나만의 것이 된 것 같고 이 넓은 공간에 나 뿐이다보니 아무데서나 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는것도 즐거웠다.
신나게 사진을 찍은 후 음식을 먹고 있는데 뭔가 거친 숨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 소름이 쭈뼛한채로 돌아보자 후지르 마을에 돌아다니는 흔한 큰 개 1이 내 어깨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너무 놀랐지만 놀란 마음에 아!!!! 놀랬자나 이시키얌!!!! 하며 팔꿈치가 자동반사로 나가자 큰 개는 쫄보였던건지 놀라며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다.
괜시리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바이칼 호수 근처 절벽을 따라 걸었다.
바이칼 호수에 오기 전에 미리 조금 찾아봤을 때 바이칼 호수 주변에 샤먼바위라는 이름과 곳곳에 있는 소원을 비는 리본이 즐비한 사진을 보고 러시아 사람들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싶었다.
개인적인 러시아인들에 대한 평은 주님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뚜까뚜까 패리 이런 느낌이었는데
(곳곳에 정교회 건물이 많다고 해서)
의외로 소원 비는 걸 좋아하는구나 해서 또 나만의 편견이구나 싶었었다
베레크나데즈디 숙소에선 샤먼바위가 매우 가깝다. 그래서인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샤먼바위가 나타났다. 그 유래는 잘 모르지만 뭔가 두개의 바위섬이 있는데 어느 곳을 먼저 등반하면 딸이 생기고 반대로 가면 아들이 생긴다는 속설이었던 것 같다.
그런 속설이 있지만 나에게는 어떠한 해당 사항도 없기에 그저 멀리서만 지켜보았다.
그저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장소
절벽에서 아슬아슬한 사진을 찍고싶었던 나는 열심히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고, 꽤 많이 건졌다고 생각한다.
샤먼바위에서 바라보니 조금 더 내려가면 바이칼 호수에 발을 담글 수 있을 만큼 호숫가에 가까워지는 공간이 보였고, 피크닉 하며 생긴 쓰레기나 여타 다른 짐을 놓고 난 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숙소로 다시 돌아갔더니....
고양이님이 내가 숙소 문을 여는 사이에 재빠르게 함께 들어와 내 침대를 차지하셨다.
뭐야아- 싶으면서도 어차피 안쓰는 침대에 앉아있는데 야박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더는 말을 하지않고 고양이와 누워 잠시 뒹굴 거리다가 좀 더 해가 지기전에 얼른 호수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몸을 일으켜 호숫가로 내려갔다.
직접 호수 바로 코앞에 앉아있자니 기분이 매우 묘했다.
어딜가나 사람이 가득한 공간에서 태어나 살다가 갑자기 이렇게 눈 닿는 곳 마다 심지어 고개 돌리는 곳 마다 눈에 걸리는 것 없이 멀리 보이는 것도 당연히 신기했지만
이렇게까지 깔끔한 물은 처음 봤었다.
안이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한 바이칼 호수 밑바닥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여도 되는건가 싶어 신기했고,
5월 말인데도 얼음이 끼어있는 공간. 그리고 폐를 찢을 듯이 맑다못해 쾌청한 공기는 처음 맡아보는 그것이었다.
왜 민족의 젖줄이라고 불렸던 공간인지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어느 민족의 젖줄인지도 확실하지 않아서인가
솔직히 이 곳에 오는게 안힘들었다면 거짓말이다.
말 안통하는 나라에서 버스를 일곱시간이나 타는것은 누구라도 부담인데다가 이렇게 드넓은 공간에 하나 있는 조그마한 아시안 여자애. 누가 채어다 어디 묻어버려도 티도 안날것 같았어서 내내 긴장하며 돌아다니고 주변을 살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칼 호수의 태어나서 처음 보는 더럽게 아름다운 이 풍경은 그 모든걸 감수하고서라도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경치를 매일 보는 이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눈 덮인 산이 건너편에 보이고, 바로 코앞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넓은 바이칼이라니.
각종 병도 다 나을 것 같았다.
나중에라도 또 보러 올 가치가 넘친다!
그냥 사람들의 미신이자 그냥 하는 말이 분명하겠지만 바이칼 호수에 발을 담그면 3년이 젊어지고, 목 밑까지 담그면 5년, 그리고 머리끝까지 담그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한다더라.
그래서 꼭 목 밑까지 담그겠다 라고 마음을 먹고 수영복까지 챙긴 다음에 여행을 떠나 바이칼에 왔지만 얼음이 끼어있는 장관을 보고 솔직히 많이 쫄아서 발만 담궈야지- 하면서 발을 담궈 보았고
정말 후회했다.
겨울에 계곡물에 들어가도 이것보단 안추울것 같았다.
발이 들어가자마자 바로 살과 호숫물이 닿는 곳이 썰리다 못해 곱게 채썰리고 다져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태같지만 왠지 겨울 바이칼에 와서 다시금 추위를 겪어보고싶어졌다.
이렇게 드넓은 공간이 꽝꽝 얼어 그 위로 차가 달릴 수 있다니, 너무 황홀하잖아.
호수에서 나와 가만히 앉아 다이어리를 쓰며 노래를 틀어놨다.
한국을 떠날 때 남자친구가 들려준 노랜데 귀에 꽂혀서 재생목록으로 다운 받았던,
개인적으로 바이칼 호수랑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하는
실제 가사는 전혀 바이칼이랑 어울리지않는 것 같고 또 제목처럼 인어라기보다는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의 노래인것 같지만 바이칼 호수 주변을 여행 하는 내내 엄청 들었던 것 같다.
노래만 들으면 바이칼 호수 앞에서 멍때리던 그 순간이 다시 기억나서.
어디선가 인어가 나타날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호수, 아무도 없고 넓고 고요해서 황홀했던 그 호수가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내 앞에 나타나는 것 같아서 노래는 역시 대단하다.
시간을 거슬러 나에게 감정을 돌려줄 수 있으니까
한시간 정도를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서 들은 것 같았다.
아무도 없기에 카메라 버튼 겸 해서 가져온 블루투스 스피커로 이 노래만 한 한시간 정도를 들으며 나만의 감상에 빠져들수 있다는 점이 이 호수에 와서 가진 시간 중 가장 환상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감성 넘치는 시간이었다.
이 모든 감성을 망친 그 큰 개만 아니었다면.
후지르 마을에서 딱 한가지 싫은 점이 있다면 이 개들 때문이었다.
후지르 마을은 정-말 환경친화적인 마을이라 그런지 소들을 그냥 풀어놓고 키웠고, 개들도 풀어놓고 키웠다. 길바닥엔 솔직히 소똥과 개똥이 마구 돌아다니지만 하도 넓어서 더러운걸 잘 모르는 그런 동네.
왠지 해 질 무렵이 되면 소들과 함께 개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이 개들이 소몰이를 하는게 아닌가 싶었었는데,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몸을 일으키면 나보다도 클 것 같은 이 개가 내 어깨에 코를 들이대며 헉헉 하는 소리를 내뱉자 온몸에 소름이 쭈뼛 돋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개를 큰 소리로 자극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을 억눌렀다. 비명이 나오려다가 입을 깨물고는 그 와중에 외국 개임을 감안하여 Нет! (러시아어로 No) 라고 하며 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가방에 늘어놓았던 짐들을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후 그 공간을 떠났다.
이렇게 먼 공간이었나, 이렇게까지 내가 멀리나왔나 왜 언덕은 이렇게 높은지 모르겠다며 울음을 삼키며 사람이 한두명이 돌아다니는 장소가 나올때 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덜덜 떨며 올라왔다.
잠시간이지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너무 놀란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잠에 들었다가 쇼크사 한 사람의 이야기도 생각이 나고, 다시는 숙소 밖을 못나갈 것 같다는 공포감에 휩싸였고, 일단 배를 채우면 아무런 생각이 안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을에 그나마 문 연 것 같은 식당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방금 호수에서 만난 그 개가 보이자 온몸의 털이 쭈뼛 서고 손끝이 떨려왔다.
결국 식당에서 밥 먹는 것은 포기하고 슈퍼에서 술 한잔과 안주거리를 산 후 숙소로 돌아와서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았다.
한국에 돌아갈까, 아니면 하다못해 그냥 이 후지르 섬이라도 당장 떠날까 하는 온갖 상상이 다 들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였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찾아온 공간에 저깟 개 한마리 때문에 내가 무서워서 피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오늘 저녁에 러시아식 사우나 반야를 예약한걸 주인집 딸이 와서 알려주길래 일단 땀을 쭉 뺀 후 생각 해보자고 마음을 다독거렸다.
반야는 러시아에서 즐기는 습식 사우나로, 이렇게 달군 돌들이 있는 곳에 찬물, 혹은 뜨거운 물을 부어 나오는 열기로 즐기는 습식 사우나라고 한다.
정통 반야는 이렇게 뜨거운 김에 온몸에서 땀이 뚝뚝 흐르는 채로 눈이 가득한 바깥에 나와 나무로 온몸을 때리며 몸에 쌓인 독소를 빼낸다고 하는데, 겨울도 아닌데다가, 나무로 몸을 때리는건 개인적으로....원하질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베레크 나데즈디에서는 나뭇가지는 없고 그냥 독립된 공간에서 습식 사우나를 즐기면 됐었다!
그리고 사우나를 즐기며 땀을 빼다보니 기운이 빠지니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여 그 안에서 저녁을 즐겼었다.
혼자!
한시간 정도 땀을 쭉 빼고 다시 방으로 들어오니 드디어 해가 지고 있었다.
약 아홉시쯤 되는 시간이었는데 그놈의 개 때문에 놀라 벌렁벌렁 거리던 심장은 땀을 한바가지 쏟아내고 나니 어느정도 진정이 됐다.
그래도 뭔가 가라앉지 않는 심장때문에 잠은 오질 않았고, 이럴 때를 대비하여 사놓은 맥주를 꺼냈다.
땀을 쭉 뺀 상태에서 알콜이 들어가자 몇 입 먹지도 않았는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비록 선잠이지만, 그래도 걱정하던 것에 비해서는 깊은 잠 이었다.
이렇게 바이칼 호수에서의 둘째날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