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바이칼 남부투어 가보겠니?

22-05-19 바이칼 호수 3일차

by 역마살아임더


전날 반야를 하며 땀을 쪽 빼고 나서 술 한잔 들이키니 잠이 쏟아졌다.
비록 선잠이었지만, 마음 졸이고 가슴 졸이던 것에 비하면 생각보단 잘 잤다.
다만 자다 계속 깨고, 뭔가가 창밖에 서있으면 어떡하나, 문 열었더니 여기 문앞에 있으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함과 어디선가 그 개가 내뱉던 헉헉 거리는 짐승 특유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했지만.

갑분공포감을 밀어내기 위한 이날 아침의 고앵이님


그래도 나름 푹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씻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이날 아침은 조금 흐려서 투어 하기에 적합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돈을 내서 안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정말 말그대로 바이칼호수를 보고온다.”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자 싶었다.


KakaoTalk_20200107_185044566_02.jpg 정체모를 포슬포슬한밥, 빵, 그리고 의문의 계란과 차


오늘도 매우 만족스러운 가정식이었는데, 전날 먹었던 죽이 생각이 났는데 죽은 없어서 내심 아쉬웠었다.
남부투어를 하기 위한 차는 열시에 숙소로 왔다.


KakaoTalk_20200107_185044566.jpg 내가 타본 우아직! 개인적으로 승차감은 매우 구렸다.




▣ 바이칼호수 남부투어 / 북부투어

- 우아직을 타고 바이칼 호수 남부와 북부를 돌아보는 투어.
- 보통 사람들은 북부투어를 많이 한다고 한다.



나중에 횡단열차에서 만난 애가 알려줬는데, 남부투어는 여름에 가서 호수에서 수영하는 시간을 갖기에 좀 더 가격이 비싸고, 투어 시간도 좀 더 걸린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걸 몰랐고, 남쪽이던 북쪽이던 여기저기 우아직을 타본것에 만족한다!

이제 다음에 북부투어를 해보면 위아래로 호수를 다 둘러본게 되겠지


우아직 내부 영상, 나와 남부투어를 함꼐 한 이들



오늘 나와 함께 남부투어를 할 사람들은 나 빼고 전부 러시아인으로, 신혼부부, 그리고 혼자 여행 온 여자 둘과 그리고 나 였다.

저 신혼부부는 개인적으로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남자가 어딜가나 아내 손을 꼭 잡고 돌아다니고 내리는 곳마다 뭔가 혼자 저 멀리 가서 구경하고 와서 자랑하는 듯한 모양새가 꽤나 귀여웠다.


그리고 신기했던건 집에서 만들어온 술이라면서 끊임없이 술을 먹는 것.

러시아인들의 알콜러브란...


KakaoTalk_20200107_185044566_04.jpg 솔직히 이날 찍은 사진 중 우아직이 가장 예쁘다


남부투어건 북부투어건 마찬가지일꺼라 생각되는데, 가이드 아저씨가 러시아인이고 러시아어로 설명해주신다.
정말 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아저씨가 러시아어로 뭔가 설명을 해 주시는데, 러시아어로 아는 건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네, 아니오, 물 정도만 할 줄 아는 나는 그냥 바람이 부는 바이칼 호수를 여기저기 본다는 것이, 그리고 알혼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음에 의의를 뒀다.

KakaoTalk_20200107_185044566_01.jpg 가장 먼저 들렀던 언덕에서 바라본 후지르섬, 바이칼



한가지 더 신기했던것은 알혼섬 내부는 도로가 없다.
마을 투어를 하면서 본 후지르 마을 내부에도 도로가 없는데 호수 주변에 당연히 도로가 있을리 만무.
그래서 다 비포장도로 수준이 아닌 그냥 돌밭을 굴러가는데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우아직 기사님들은 길을 용케도 찾아 그곳만 지나간다.
그래서 그 길만 풀이 자라지 않고 있었다.

KakaoTalk_20200107_184945207_02.jpg 신혼부부 남편이 준 사탕. 러시아 사람들 진짜 단거 좋아한다.




나중에 열차에서 만난 한국인 애 말로는 남부투어는 호수에서 수영할 시간을 준다고 하는데 그걸 알리가 없는데다가 5월 말에도 얼음이 껴있는 바이칼 호수는 당연히 들어가서 수영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여기저기를 기사님이 많이 데려가 주셨고, 가는데마다 오래 있으라며 시간을 넉넉하게 주신 덕분에 호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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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직 창문밖으로 빼곡히 보이는 드넓은 평야



그리고 바이칼 호수에 대해 나의 가장 큰 느낀점은, 와 진짜 여기서 이렇게 가도가도 끝이없는 공간이 다 있나였다.

너무 넓고 광활해서 활홀한 공간. 그게 바로 내가 느낀 바이칼에 대한 느낌이다.
정말 넓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도 이렇게 많을 정도로 정말 넓다. 우아직을 타고 그렇게 달리는데도 끝이없는 공간.

KakaoTalk_20200107_184945207_01.jpg 곳곳에 있던 소원을 비는 리본들


그리고 투어 답게 호수 주변 곳곳에서 보이던 리본 묶어보기에 대해서도 해볼 수 있게 해준다.

대충 아저씨 옆에서 말하는거 바로 번역기 돌려본 결과, 각 색깔별로 뜻하는 바가 몇개 있는 것 같았다.

다산, 부, 애인, 성공, 건강 등 그냥 어느나라나 다 걸법한 그런내용.


전혀 미신을 믿을 것 같지 않게 생긴 사람들이면서 의외로 이런건 되게 좋아한다 싶었다.

문신이 많은 이유도 몸에 문신을 많이 할 수록 행운이 온다고 믿어서라던데.


러시아인들은 은근 귀엽구나 싶었다.












투어 하면서 가 본 공간 중에 엄청 바람이 많이 부는 절벽 위 언덕을 데려가주셨었다.

그 바람이 부는 바이칼 호수를 절벽에서 내려다보는데 정말 여기서 고꾸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람을 막아줄 어떠한 것도 없어서 그런지 찬바람이 거세게 나에게 바로 불어왔고,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것은 좋았으나 휘청 거릴만큼의 힘이라 잠시 아찔 했다.

KakaoTalk_20200107_184945207_05.jpg 이렇게 위에서 보는데도 맑아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점심 시간쯔음이 되면 아저씨가 직접 밥을 차려 주신다.
오전엔 날이 흐렸지만 아저씨가 밥을 차려주실 때가 되자 날이 맑아져서 피크닉 나온 기분이 들었다.
피크닉 나온 기분 덕분에 아저씨가 차려주신 메뉴가 엄청 대단한 밥은 아닐지라도, 풍경을 반찬 삼아 그럭저럭 먹었었다.

KakaoTalk_20200107_184945207_09.jpg 밥은 형편없었지만 차가 매우 정성들인 본격템이었다



밥을 먹은 곳은 여름에 왔다면 수영하기 참 좋아보이는 공간이지만, 지금은 물에 발만 담궈도 발이 썰리는 기분인데. 들어갈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고 이건 비단 나 뿐만 아니라 투어를 하는 사람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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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치를 보며 밥을 먹었다! (마지막 사진은 밥 먹으러 오기 전 장소에서 찍은 가이드 아저씨)




수영은 하지않고 그냥 풍경을 보며 밥을 먹다가 서툰 영어로나마 말을 터 준 사람들 덕분에 다음 공간에 갈 때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나에게 장소를 설명해 준 것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KakaoTalk_20191120_093226377_14.jpg 같이 투어를 했던 사람들, 바이칼 호수를 내려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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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했던 공간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스피릿 마운틴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스피릿마운틴으로 직역하면 영혼의 산이었다.

가이드 아저씨 말에 의하면 그 바위에서는 나의 내면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했단다.


갑자기 이런곳에서 제 내면과 대화요? 그리고 어딜가나 정교회 건물이 있는, 러시아 국교가 정교회인 곳에서 갑자기 상당히 샤머니즘적인 발언이라뇨.........처음에 듣고 네? 하긴 했지만 바이칼 호수 곳곳에서 보이는 소원을 비는 리본이 잔뜩 달린 나무나 바위를 떠올리고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반신반의 하면서 올라가자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넓은 공간이고 바위들이 많은 덕분인지, 소리가 잘 묻혀서 바람이 많이 불던 곳임에도 소음없이 고요한 공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내가 여기다 내 걱정거리를 다 말하고 가더라도 이 영혼의 산에서는 모든게 다 ㅇㅋ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ㅇㅋ 해주는게 나인지 아니면 제 3의 다른 존재인진 알 수 없었지만. 게다가 날이 맑게 개어서 그런지 너무 투명하고 푸른 하늘이 걸려있었다.

그냥 바위 아무곳에나 주저 앉아 가만히 있다보니 약간 횡단열차에 탄 양 아무것도 없지만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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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바위를 마지막으로 다시 숙소에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아무 소득 없이 그냥 차만 타고 돌아다닌 것으로 보이지만, 호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어디는 아직 얼음이 끼어있고 어디는 얼음이 없어진 것을 보며 왠지 설국열차에서 송강호가 슬쩍 내다본 창밖에 있던 추락했던 비행기가 전에는 꼬리만 보이던게 이제는 날개도 보여 라고 말한 장면이 갑자기 생각났다.

어디는 아직 얼음이 있고 어디는 얼음이 없어.

그 외에도 우아직 사진을 많이 찍은건 소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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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이날 우아직 인생샷 찍은거 아니냐~~~



이 우아직은 듣기로 옛 소련시절 군용 차량 만들어진 차량인데, 비포장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힘 좋은 자동차라고 한다는데,
군용이건 아니건 간에 너무 귀엽게 생긴 모습과, 이 지역에서만 탈 수 있다는 점에서 뭔가 희소했기에 우아직의 인생샷을 찍어준 것만으로도 만족 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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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오니 어느새 여섯시.
바이칼 호수가 꽤나 넓기 때문에 남부만 짧게 돌아보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숙소 앞에서 잠시 고민을 했다.
마을을 돌아다닐 것인지 아니면 호숫가로 내려가서 호수 구경을 더 할 것인지.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마을을 돌아다녀보자! 였다.
어느새 3일이나 이 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한번도 제대로 돌아보질 않았단 생각과 호수에 가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지만 마을에선 적어도 나를 내다보지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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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섬에 있는 많은 집들은 직접 수제작 (?) 한 티가 나는 집들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의 손재주는 이렇게 대단하다 싶은 것과, 사람이 사는건가 싶다가도 집 옆에 안테나가 붙은걸 보면 이나라 사람들도 티비를 엄청 사랑하는 구나, 이 외진(?) 곳에서도 TV를 보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은 대단했다.



그렇게 마을 한바퀴를 돌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의문인데, 해가 질 무렵이 되면 길에 돌아다니던 소들이나 개들이 다 사라진다.
지금 하는 추측으로는 소 몰이 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지만,
어느새 길에 개들이 보이지 않자 호수를 한번 더 보고싶어 호수를 한바퀴 돌아보고 숙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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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물에게 쫄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글을 쓰는 지금에도 큰 개가 지나가면 움찔 할 정도라고 하면 당시 얼마나 무서웠을지 감이 잡힐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매력이 있어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칼 호수는 공포를 극복시켜줄 만큼 너무 아름 다운 공간이어서 한참을 앉아 호수를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한참을 바라보다 주변이 꽤 어둑어둑 해지자 숙소로 돌아와 창문 앞에 의자를 갖다 두고 황홀한 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본 것 같다.



바이칼 호수의 일몰을 즐겨보아요



샤워하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엔 정말 찐한 남색 융단에 보석을 박아넣은 양 반짝거리는 별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놀란 점은 별이 정말 가까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강원도 쯤 가면 별이 보이지만 그렇게 쏟아질 만큼 가깝단 생각은 안해봤는데, 후지르마을에서 본 별은 돗자리 깔고 누워서 별을 보다보면 별이 나에게 쏟아질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별이 많아서 감동이었다.

바이칼 호수에 온지 이제 3일. 매 순간이 감사하고 매 순간이 감동이다 라는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