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시베리아 횡단열차 2부 전야제

27-05-19 이르쿠츠크 안녕, 시베리아횡단열차 99호차 반가워

by 역마살아임더

갑자기 아침 일곱시 반 쯤 눈이 떠졌다.

내가 왜 눈을 떴지를 생각하며 눈을 깜빡거렸으나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로 마음먹고

전날 사다 놓은 체리를 오물거리다가 그냥 여기 앉아서 먹지말고, 어제 산책하다 본 숙소 뒤에 있던 건물 앞 공원에서 먹어야겠다 싶어 비닐봉지에 체리를 넣고 길을 나섰다.


님들은 출근하시됴? 저는 한쿡 백수입니댜


여기 사람들도 9시부터 출근을 하는지,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츄리닝에 머리는 부스스한 내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여행하면서 사람들이 출퇴근 하는 시간에 맞춰 카페 등에 들어가서 사람 구경 해야지 했는데 실제로 구경하게 되니 약간 부끄러우면서도 백수인 날 봐! 부럽지! 하며 더 당당하게 걸었다.



전날 봐둔 건물 앞에 공원처럼 가꾼 곳에 앉아 체리를 먹자니 짜릿했다.

님들은 다 출근하죠? 저는 백수에요, 그것도 한국 백수.

퇴사하기 전부터 나중에 퇴사하면 사람들 출퇴근 하는 시간에 꼭 맞춰서 사람구경 해야지 했는데, 그걸 심지어 해외에서 하고 있으니 더 재밌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지나가는 사람들 중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이름 모를 건물

해당 건물에 대해 글을 쓰다 궁금해져 찾아보니, Company "VostSibUgol" 이라고 한다. 해당 회사 건물인가보다.

무슨 회사 건물이 이렇게 예뻐?




다시 숙소에 돌아가서 횡단열차에서 지낼 짐과, 다시 캐리어에 넣어 올려둘 짐 두가지로 나눠서 정리를 하며 같은 방에 있는 한국인 여자분 두 분과 말을 텄다.

둘은 어릴적 부터 친구로, 나와 같은 오늘, 아니 정확히는 내일 새벽 모스크바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갔다가 키예프 공화국으로, 그리고 로마로 간다고 했다.



오늘 출발하는 열차는 새벽 세시 반에 출발하는 열차여서 밤을 샐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호스텔에서 나와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숙소에서 짐을 맡아주기는 하지만 저녁 열시까지만 맡아준다고 하기에, 숙소보다는 기차역에 맡기는게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행 하며 느낀 러시아에서의 짐 보관

- 기차역, 버스 터미널 등 왠만한 큰 교통시설에는 짐 보관소가 있다.

- 한국처럼 사물함에 맡기는 방식이 아닌 큰 공간에 사람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24시간이 아닐 수도 있으니, 운영 시간은 확인 필요.


이르츠쿠츠 역에서 짐 보관후 받은 번호표


처음 기차역에 내려서 이르쿠츠크 시내로 들어올 때 탔던 동일한 1번 트램을 타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르쿠츠크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긴 후, 이번에는 실물티켓을 교환하기 위해 어슬렁거렸다.

이르쿠츠크 기차역은 크게 총 세 개의 건물로 구성 되어있는데,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가장 왼쪽에 있는 건물 문으로 들어가면 거기가 바로 블라디보스톡에서 봤던 고객센터 같은 것이 있다.

거기에 바우처를 들고 들어가서 티케뜨....라고 말하면 직원이 티켓 판매기에 데려가서 직접 티켓을 교환해준다!


▣이르쿠츠크 기차역 이용 꿀팁

- 짐 보관소는 기차역에 들어가서 바로 왼쪽으로 보이는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가면 있다!

- 실물 티켓 교환은 가장 왼쪽에 있는 건물 문으로 들어가면 있는 티켓판매기에서 교환 가능

- 이르쿠츠크의 2층으로 올라가면 샤워실과 수면실 (?) 이 있다. 샤워실에서 화장실도 이용가능하므로 가급적 같이 이용하는것이 좋다고 하다.. (이용료는 30루블로 기억)


블라디 >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모스크바, 모스크바>???에 대한 총 세개의 티켓!


짐을 맡기고 티켓을 교환하고 나니 어느새 한시여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다시 트램을 타고 모드느이 크바르탈 쇼핑몰 근처에 있는 음식점 “Rassol'ink” 를 들어갔다.


이곳에서 토끼고기 샐러드를 판다는 구글맵 후기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만, 인종차별을 겪었단 사람들 후기에 조금 걱정하며 들어갔는데,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인테리어는 왜 때문에 이렇게 예쁜거죠


사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인종차별은 그다지 못겪어본 것 같다.

당연히 사람마다 다른 경험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었다. 별 신경을 안쓰고 다녀서 혹시 나에게 어떤 인종차별을 해도 내가 못알아들었을 수도 있지만, 혼자 다니는 아시안 여자애를 괴롭히는게 자존심이 상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어떠한 위험함은 딱히 못 느끼고 다닌것 같다.


그런 내 막연한 생각때문일까, 이 가게에서도 인종차별은 못겪었었다.


토끼고기 샐러드와 밀크셰이크, 그리고 보르쉬까지 해서 천루블!


토끼고기 샐러드와 러시아의 가장 흔하고 유명한 보르쉬를 시켜보았다.

러시아에 온지 어느새 2주째인데 보르쉬도 안먹어볼 순 없지! 하며 시켰는데,

처음 만난 보르쉬는, 사워크림을 섞기 전엔 그냥 케챱에 물 푼 것 같기도 했지만, 사워크림을 섞자 훨씬 더 맛있어졌다.


토끼고기는 초계국수 위에 올라가있는 삶은 닭을 찢어 소금간을 해놓은 맛이 났다. 좀 더 질긴 닭고기맛이 났다. 러시아에 와서 별의 별 고기를 다 먹어본 것 같았다. 소 혀, 토끼고기. 다음엔 뭘 먹어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르쿠츠크까지 가 본 결과 러시아의 많은 음식점/카페는 함께 운영하는 것 같다. 모든 가게에서 최대한 간단하게라도 카페 메뉴를 팔았으며, 카페에서도 간단한 음식은 팔았다. 우리나라 카페에서도 샌드위치를 파는 경우는 있었으나, 음식점에서 커피나 케이크를 본격적으로 팔진 않아서인지, 음식점을 고를 때 마다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바로 뒤 130 지구로 올라가서 흐엔므에 들어가서 짧은 반바지를 사고 나왔다.

분명히 바이칼 호수 근방에서는 엄청 추웠는데 이르쿠츠크는 너무 더워 긴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니 땀이 삐질삐질 나고 옷이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너무 거북했다.

유럽에서는 H&M과 자라가 특히 값이 쌌었다!


쇼핑까지 하고나니 어느새 네시였다.

열차는 새벽 세시 반인데, 어디서 더 시간을 보내나 잠시 고민을 하다 그냥 발 닿는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어디선가 카페를 볼 수 있겠지 싶은 생각에 아무데나 발길을 옮겼다.



돌아다니다 결국 다리가 아파 잠시 쉬며 근방에 카페를 검색하자, 한 카페에서 이르쿠츠크 예술가들의 엽서나 간단한 장식품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하여 들러보기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카페 “Belaya Vorona”

이 카페의 한켠에는 엽서, 작은 소품등, 이르쿠츠크의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팔고있었다.


꾸욥...


엽서도 팔고 있었는데, 이제까지 러시아를 여행하며 기념품을 팔았던 것 중에 제일 괜찮게 생겼어서 조금 비쌌지만 괜찮게 생겼으니 친구들과 남자친구에게 보낼 목적으로 여러개를 산 다음 음료를 마시며 편지를 썼다.


어렸을 때부터 해외로 출장이 잦았던 로맨티스트 우리 아빠가 종종 장기로 출장 가실 때 즈음이면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주셨었다. 가끔은 아빠가 더 빨리 올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아빠보다 편지가 먼저 와서 아빠가 전달 해주는 해외의 풍경 구경이 재밌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여행을 가서 예쁜 엽서를 보면 편지를 보내는 편이었는데, 이건 우리 아빠가 거의 유일하게 나에게 준 로맨티스트로써의 유산은 여행지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엽서를 보내는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한국에서 엽서를 받는 이들이 감동 받아 하는걸 보며 괜히 뿌듯했다.



산 엽서중에 몇몇개는 마음에 들어서 보관용으로 두 장씩 샀는데, 그 중 한개가 바로 이 엽서이다.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듣기에 강추라 하였던 ‘skott - mermaid’ 가 생각나는 엽서.

보자마자 바이칼 호수가 생각났다. 내가 바이칼 호수를 보고 들었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아마 이 엽서를 그린 작가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지않았나 싶다.

호수 밑바닥엔 정말 인어나 뭔가 미지의 무언가가 살며, 사람이 없는 곳 한켠에는 호수위를 누워 유영할 것 같은 그런 느낌.



카페 내부는 아기자기 했다. 약간 다른 의미의 대륙의 느낌으로 넓은 공간 곳곳에 콘센트가 많아 러시아의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과외, 과제, 공부를 하는게 보였다. 역시 어느나라나 카공족은 있는거구나.

한참을 혼자 놀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는게 보였다. 열시쯤에는 기차역으로 출발할 생각이었기에 근방에 우체국을 찾아보고 저녁을 먹고 기차역을 갈 생각으로 일어났다.


▣ 러시아의 우체국 팁

- 그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신기한 위치에 우체국이 위치

- 보통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 준비해 간 엽서를 건네면 보내준다.

- 주소는 당연히 영어로 써야한다!

- 우체국들이 신기하게 늦게까지 운영하는 경우도 다수.



우체국이 왜 열시까지 운영할까에 대해 한참 생각 해 보았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많은 외국에서는 우편으로 업무 처리하는게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그렇다 해도 열시까지 운영하는건 신기했다.

심지어 은행도 일곱시까지 운영하는 경우도 많이 봤었다. 우리같은 한국인에겐 꼭 필요한 운영시간이 아닐런지.


마지막 이르쿠츠크


엽서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아홉시였다.

저녁을 먹자니,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고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우선 기차역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바로 앞에 보인 KFC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열차에서 먹을 물과 간식을 사러 슈퍼에 들른 후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대륙사이즈로 매우 큰 용량을 보이던 물

내가 러시아에 갔을 때는 백야 현상이 시작할 때여서 그런지 아홉시까지도 해가 지지않았었다. 대신 한번 해가 지자 매우 빠른 속도로 해가 졌고, 아차하면 주변은 온통 어둠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꽤나 무서웠다.


해가 지자 아까는 로맨틱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던 길거리는 전날 저녁에 본 것 처럼 어느새 무서워졌다.

버스를 타고 가려다가 또 구글맵에게 뒷통수를 맞은건지 버스가 오지 않기에 막심을 불러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예상보다 한시간은 늦은 열한시.

부랴부랴 짐을 찾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르쿠츠크는 횡단열차를 타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큰 도시이다보니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콘센트 근처에 있는 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다 차지했더랬다. 몇바퀴를 돌아본 후 자리를 잡았다.


나름 철저한 보안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가방 사이에 끈을 달아 자물쇠를 채워두면 안심이 된다!

- 근데 러시아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나랑 같은 시계를 차고있던 러시아 남자애, 잠을 자며 기다리는 노부부


열차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보다보니, 우리같은 외국인에게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여행 수단이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일상이라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여행하는 나는 28인치 캐리어며 뭐며 바리바리 싸들고 기다리지만, 아기를 안고 친척의 집을 방문하는걸로 보이는 젊은 부부, 가족을 방문하는걸로 보이는 노부부, 어디론가 가는 것 같은 젊은 러시아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가는 일일까. 내가 생각한 그네들의 가는 길이 맞을까.


가끔 드는 생각인데, 항상 인생에 있어 내 얘기가 중요한 것 마냥 행동하고 사고 했지만, 사람에게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들도 다 이런 생각을 하겠지?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결국은 그냥 한 명의 사람이라는 그런 끝없지만 뜬금없이 깨달음이 있는 생각.


99호차가 다가오는 12시 57분의 풍경


어느새 열차가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와 사람들과 같이 플랫폼으로 내려가면서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과 의외로 힘들지 않다는것에 놀랐다.

내심 새벽 세시까지 기다리면 많이 힘들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힘들지 않아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생각 해 보니 나는 이미 3년동안 전 회사를 다니며 더 많은 밤을 샜던게 생각났다.

그만둔지 한달도 안됐는데 벌써 그 많은 밤을 샜다는 사실을 잊다니.

여행하면서 어느새 그동안 있던 나쁜 기억도 잊었구나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이번 열차에는 군인들이 더 많았다. 뭔가 새벽 세시까지 깨있어서 꼬질꼬질해진 내가 민망하여 괜히 더 씩씩하게 열차를 탔으나 캐리어를 어떻게 하나 고민하자 그들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짐 올려줄까? 라고 손짓하였고 스파씨바-를 외치며 침대를 얼른 정리하였다.


열차가 출발하는걸 느끼자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얼른 자리에 누워 자려고 했다.


근데 그들이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잠시 고민하며 눈을 굴리다가 안녕...? 이라고 손을 흔들고는 잠에 들었다.


왜 쳐다보고그러세요.



그렇게 두번째 시베리아횡단열차행이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