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군인들 만나본 ssul

28-05-19 시베리아횡단열차 2부 1일차

by 역마살아임더

일어나니 여섯시 반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일어났는진 몰랐으나, 시선이 느껴져서 흘끔 보니 내 옆 침대에 있는 군인들이 나를 힐끔거리고있었다.


그들이 일어나서 움직이는 소리에 내가 깬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려 잠시 창 밖을 쳐다보다 잠이 몰려와 다시 기절했다.

두시간만 잤으니 그럴만도.


유난히 평화롭던 아침


더이상 눈이 감기지도 않을 때 까지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아까처럼 군인들의 눈이 따라붙었다.

머쓱해 하며 침대를 접고 일어나 아침을 뚝딱뚝딱 꺼내어 먹고, 뭘 하던 시선이 따라 붙는 그들의 눈을 민망해 하며 피했다.


내가 뭘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낯을 가리는건 아니지만, 내 건너편 침대 네개를 쓰는 남자애들이 전부 쳐다보고, 게다가 내 윗침대 남자애까지 날 오며가며 관찰하면 누구라도 눈치 보지 않을까...심지어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라면.



열차에서 종종 군인들을 볼 수 있고, 저번 열차에서도 마지막 날 새벽에 군인들이 탔던걸 생각하면, 군인들을 마주하는게 그다지 어려운 경험은 아닌것 같은데 신기했다. 남의 나라에서 마주하는 남의 나라 군인이라.



우리나라 군인이랑 별반 다를바 없구나 싶은건 우선 보급품이었다. 모두들 똑같은 바지에 반팔, 슬리퍼를 신고 있는걸 보니 우리나라랑 정말 별반 다를바 없구나 싶고 짧게 깎은 그들의 머리를 보니 뭔가 한국에 있는 제대한지 얼마 안된 동생도 생각나고.



그렇게 한 세시쯤 됐을까, 더이상 책을 읽으면서 무시하기가 뭐해 책을 덮고 힐끔 거리니 한 명이 내 앞 의자에 앉으며 영어로 말을 걸었다.


러시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갑자기 기차에서 만나리라 생각은 못해서 놀라웠지만, 그 아이와 이야기 나누다 보니 알게 되었다.

지금 영어를 할 줄 아는 애는 부왓트 (발음 그대로 적었다) 이고,

전날 내 짐을 올려준 애는 이고르. 그리고 한명씩 소개를 해 줬는데, 러시아 발음이 너무 생소해서 그런지 한참을 발음했다. 그들이 만족할 만큼 그들의 이름을 발음하자 흡족해 하며 마저 이야기를 나눴고, 어쨌든 결론은 다들 나를 매우 흥미롭게 보고있었는데 내가 자기들을 쳐다도 안보고 책을 보거나 사진을 찍고, 다이어리를 쓰고 있어서 말을 걸고싶었다는거다.


말하면 아무도 안믿고 코웃음 치지만, 내 성격은 인싸가 아닌 아싸이다.

이 말을 누구에게나, 심지어 우리 부모님도 안믿고 남자친구에게 말하니 비웃음만 샀다.

태어날 때 부터 인싸인것 같다고.

세상 어느 아싸가 퇴사할 때 1층부터 4층까지 사무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퇴사를 하냐는게 남자친구의 말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매우 억울했는데 최근 인터넷을 서핑하다 딱 맞는 표현을 찾았다.

극심한 아싸인데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인싸가 된 상태.


물론 그 말에도 아무도 안믿었지만.


그 이후로 어디서 왔냐, 어딜 여행해 봤냐 어디 사냐 등등의 호구조사를 마친 후 내가 대화하는걸 보며 부왓트에게 다른 아이들이 궁금한걸 하나둘씩 물어보고, 부왓트가 대답 해 주며 한참을 대화 한 것 같다.

특히나 열차에 탔을때의 내 모습은 너무......집 앞 편의점 가는 차림인데 내가 보여준 어디어디를 여행 해 보았다 하며 보여준 사진속의 나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며 신기해 했다.


이늠시키들이?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이르쿠츠크 호스텔에서 소화제를 줬던 한국분들이 나를 찾아냈다.

여자분 둘이었는데, 그들은 오랜 친구 사이로, 나보다 며칠 늦게 한국에서 출발했지만 여행 일정은 비슷했고, 심지어 나랑 같은 베레크나데즈디에서 묵었다고 하더라. 나이도 얼마 차이나지 않아 신나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군인 애들이 너무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젠 한국-러시아 간의 친목도모가 벌어졌다.

보이나요 보급품으로 가득한 그들의 착장 (?)


지나가던 애들이 다 구경을 하고 한두마디씩 거들다보니 열차 안에선 우리가 제일 시끄러웠다고 장담한다. 거의 한 대대는 이 열차에 나눠 탄 것 같았는데, 갑자기 얘가 사라지고 쟤가 나타나고 쟤가 나타나고 얘가 사라지는 등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몇가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1. 도시락 라면 에나벨설


나는 한국에서 퇴사하면서 회사에 많던 도시락 라면을 챙겨 퇴사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서 이걸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친해지겠다는 굳은 다짐하에.

하지만 막상 열차에서 내가 먹기 바빴고, 도시락 라면 한가지만 챙겨온 나는 머지않아 도시락 라면이 물렸었다. 그런 나에게 자신을 세르게이라 소개한 애가 너네 나라 유명 음식이 뭐냐 물었다.


이런 질문이 나올 때 나는 보통 비빔밥이라고 말한다. 김치는 반찬이지 음식이 아니니까!


비빔밥이라고 설명 하다보니 사진을 보여주는게 좋겠다 싶은데 열차 안은 데이터가 안터지기에 고민하다 챙겨온 전투식량이 고추장 비빔밥인게 생각났고, 패키지에 사진이 있는게 기억이 나 전투라면을 꺼냈다!


사진참조: SSG닷컴

이거라고 보여주자 이게 그 음식이냐 물은 세르게이는 궁금하다며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


팔라고 하는 그 논리도 매우 공산주의 스러운것인지라 당황해 하며 내가 이걸 너에게 팔면 난 뭘 먹냐. 니가 가진 음식을 줘라. 라고 말을 했고, 그가 나에게 건넨것은....


나의 비빔밥과 도시락라면의 콜라보



물론 러시아 수출용 도시락 라면과 국내용 도시락 라면은 다른걸 알지만, 도시락 라면에 물릴대로 물린 나에게, 심지어 알혼섬에선 짐을 줄이기 위해 두어개 정도 버린 도시락 라면이 다시 내게 돌아오다?

이거 그거 아니냐. 에나벨.


그렇지만 밝게 웃는 세르게이에게 싫다고 할 순 없었다.











잘생긴 세르게이....에게는 고추장이 매웠다고 합니다.










2. Do I meet You at Moscow?


아담, 아굴라, 그리고....사라졌으면 하는 나


한참을 이야기 하고 서로의 사진을 찍으며 놀던 군인들 중 아담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남자애가 아예 내 핸드폰을 갖고가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내 셀카를 보며 이거 너냐고 묻길래 맞다 해주고 다른 군인 애들과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나에게 너 모스크바까지 가냐고 물었다.


그렇다 하자 잠시 고민하던 그는 나에게 자기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내리지만, 바로 다음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갈테니 같이 놀지않겠냐 물었다.


엥? 하며 돌아본 눈이 조금 진지해서 당황했다.


나 남자친구있는데? 라며 얘기해보자 상관 없다고, 자기가 붉은 광장과 크렘린 궁을 소개해주고싶다고 하였다. 당황 하며 그래 그럼, 연락해 라고 말하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줬으나,


내가 당황한걸 알았는지 아니면 다음 기차로 모스크바에 오는게 실패했는지. 그 후에 연락이 온건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였다


(사실 이 글 쓸 때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연락왔다)









3. 그런 잘생긴 얼굴로 달달한 말 하면 반칙이다.



아담은 내 열차 칸에 있는 남자애들과는 다른 대대에 있는 것 같았다. 자주 사라졌다 나타났고, 아굴라 라고 하는 남자애랑만 다니고 있었다. 둘의 생김새가 내가 본 부왓트나 이고르와는 다른걸 보면 러시아 연방 내 있는 다른 연방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담은 젠틀했으나 아굴라는 까불거리는 편이었는데, 신기하게 아굴라의 핸드폰은 열차안에서도 느리지만 터졌다. 그래서 러시아식 웃긴 영상을 보여줬는데 그 중 한 개가 다소 기분이 나쁜 내용이 포함된 영상이었다.


그걸 보고 어떻게 반응할 지 몰라서 표정이 굳자, 아까 비빔밥과 도시락 라면을 교환해 간 세르게이가 뭘 보여줬냐고 아굴라의 핸드폰을 뺏어 보더니 나에게 급히 사과했다.














그다지 기분은 안나빴지만, 여기서 더 표현을 안하면 자꾸 비슷한류의 영상을 보여줄 것 같은 느낌에 괜찮다고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내 눈치를 보다 나에게 그렇게 말 해준 세르게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자리를 떴다.


그리고 한참을 떠들다 보니 피곤하기에 기지개를 펴자 다시 영어를 할 줄 알던 부왓트가 앞에 앉았다.

그러더니 그가 번역기에 쓴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뭐야 왜이렇게 스윗한건데 너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싫다고 하니.

이렇게 젠틀한게 러시아 사람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는데 마침 열차가 멈춘다고 하기에 내렸다 와서 얘기하자 했다. 그러자 다시 물어본 말은







술 마실래? 였다

(번역 기록이 날아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열차에서 술을 마신다구요?

식당칸? 이라고 묻자 아니, 여기서. 라고 말했다. 어떻게? 라고 묻자 부왓트는 웃으며 사라졌다.

웃으며 사라진 후 열차가 멈췄고, 잠시 나가서 바람을 쐬고 왔다.



내가 앉아있던 방향은 역방향이다보니, 멈춘 땅위에 오랜만에 서자 잠시 어지럽고 멀미가 났다. 나가서 오랜만에 기지개도 켜고, 스트레칭을 하다가 아까 만난 한국분들에게 뭔진 모르지만, 저 군인 애들이 술 먹자더라. 라고 전하자 좀 있다 가볼게요! 라고 흔쾌히 답해주셨다


뭔가 혼자 인것 보단 낫겠지 싶은 마음에 조금 안심이 됐고, 다시 열차가 출발 한다기에 기차에 올라탔더니 세르게이가 내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이야기를 했다. 괜찮냐 물어보던 세르게이가 보낸 마지막 말은 심쿵이었다. 다이어리에 적을만큼!



뭐야, 그렇게 귀엽고 잘생긴 얼굴로 이런 말 하면 너 개 반칙인거 알지?














4. 그렇게 벌어진 술판


열차에 다시 타니 여덟시. 떠드느라 밥도 못먹었네 싶어 저녁을 먹고 있자니 아까 비빔밥을 갖고간 세르게이가 와서 그런다. 너 거의 나를 죽일 뻔했다고.


살벌한 말에 무슨소리야 하니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봤는데, 너무매워 죽을 뻔했다는데,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아! 나는 한국인이잖아! 그리고 그거 안매운건데..? 하자 세르게이는 연신 물을 찾으며 사라졌다.


미안.


저녁을 먹고 난 후에도 부왓트가 보이지 않아 아까 술마시자는건 그냥 한 소리였나 싶어 신경 쓰지않고 있었는데 부왓트가 오더니 아까 그 한국인 친구들도 같이 불러서 좀있다 불이 꺼지면 놀자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길래 알겠다고 웃으며 답하고 한국인 분들 칸으로 넘어가 말을 전하고 나서 별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열시가 되어 불이 꺼진 후, 어디서 가져온건지 같이 놀자고 하더니 보드카를 꺼내 먹고 놀고, 조용히 노래를 틀고 놀고, 러시아 노래를 들려준다며 노래를 틀고, 내 몸에 있는 문신을 보여준다며 갑자기 옷을 벗고, 내 향수를 보여준다며 향수를 자랑하고



그러다 유라라는 온몸에 문신이 많은 남자애가 나와 호스텔에서 만난 분에게 제대로 꽂혀서 연락 할 방법을 알려달라, 왓츠앱 없냐, 러시아 번호 알려줘라 등등 갖은 구애 활동을 하기에 깔깔거리며 다들 구경하였다. 결국 방법이 없다 생각했는지, 열차를 타는 동안 장병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보급품을 기념으로 주겠다며 자기 보급품을 꺼내어 보더니 부족한 것에 대해는 주변 친구들의 보급품을 뺏기에 이르렀다.


함께 깔깔 거리며 웃다보니 그 한국인분의 칸에 있던 러시아 분이 소문을 듣고 구경을 와 함께 합류했고, 우리 칸은 아주 터질듯 시끄러워졌다.고 생각한다.

그 러시아분이 오자, 내 짐을 올려줬던 예고르는 러시아어를 알려준다고 하며 따라하라고 하였고,

예고르에게 러시아어 욕과, 인싸가 되는 인삿말 등을 배우고 나니 어느새 새벽 두시가 훌쩍 넘었다.


▣ 현지인이 알려주는 러시아어

촛칵상! > 또라이!
제로아블라탄! > 우리말로하면 안녕하심니까 형님들~! 이라는 의미

사실 이 말들은 쓰면 나쁜 말이라고 잠시 자리에 합류했던 영어를 잘 하던 러시아인 언니가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거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 내부에선 절대 음주 금지이다. 열차칸에서만 맥주를 마실 수 있고 보드카는 절대 반입 금지, 반입 하더라도 음주 금지인데 어떻게 우리는 안들킬 수 있었을까.



왠지 다들 알고는 있었지만 알음알음 봐준게 아닌가 하는게 유력한 나의 생각이다.

우리가 아무리 소근소근 거린다 해도 여섯명 정원의 한 코너에 그 두배는 되는 인물이 낑겨 앉아 술을 마시고 깔깔 거리고 있는데 몰랐을 리는 없다고 본다.


원래는 음주하다 걸리면 바로 다음 역에서 내리는데, 다음 역이 바로 노보시비르스크여서였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두시가 훌쩍 넘어가자 하루종일 군인애들과 떠들고 놀았더니 피곤해진데다가 보드카도 들어가니 그들의 목소리가 어느새 길게 늘어져서 들리고 그들이 틀어놓은 노래는 귓가에 윙윙 거리며 머리를 울리게 했다. 잠이 필요했다.


내 자리로 기어가 자겠다는 말을 하자 내 자리에 앉아있던 애들이 일어났고, 침대를 펼치고 맘껏 놀라고말한 후 귀마개를 꽂았다.


절대 잠이 안 올 것 같은 시끄러움이었지만, 술이 들어가 노곤노곤 했던 정신은 소음을 차단하고 자리에 눕자 바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내려왔다.

그렇게 술과 함께 하는 밤이 깊어갔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음주는 절대, 절대 금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