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모스크바, 안녕!

06-06-19, 모스크바 7일 째

by 역마살아임더

모스크바를 떠나는 날 아침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맑았다.

모스크바에서의 아침은 항상 그렇듯 납작복숭아와 요구르트를 먹고



먹으면서 오늘은 뭘 할까 곰곰이 고민하다가 이제까지 모스크바에 묵으며 제대로 못 본 붉은 광장과 크렘린 궁과 노보데비치 수녀원을 천천히 돌아보는걸로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던 날 휙 둘러보는걸로 마무리 했으니까



더없이 맑은 모스크바의 마지막날이었다.







모스크바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하는 기차는 오늘 밤 늦게 출발하기에 출발하는 역 보관함에 우선 짐을 맡겨둔 후 굼백화점에 돌아왔다. 시베리아를 건너오는 동안 4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짐이 이젠 익숙해질만도 한데, 여전히 무겁더라. 이걸 끌고다니는 나도 대단하다 싶었다. 보는 사람은 두배로 더 대단하다 생각하는지, 계단에서 날 마주치는 러시아인들마다 짐을 들어다줬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굼 백화점은 한산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요일을 잊어버리는데, 목요일이라 그런가 꽤나 한적했다.


마지막 굼 백화점과 젤라또



굼 백화점에서 파는 젤라또가 맛있다 하니 마지막으로 한번 더 사먹으며 바로 앞의 붉은 광장으로 나왔다. 크렘린 궁에도 들어가볼까 생각 했지만,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충분했던것 같다. 크렘린 궁 내부에 있는 정원을 끊임 없이 걷다가 그냥 지쳐서 주저 앉았다. 햇볕은 쨍쨍한데 나무들이 우거진 풀밭은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크렘린 궁은 멀리서 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약 일주일 정도를 모스크바에서 지내면서 오며가며 멀리서나마 본 건물인데, 다음에 왠지 모스크바에 또 올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더 봐야겠지 싶었다. 일주일을 있어도 부족할 것 같은 볼 것이 넘치는 모스크바.



풀밭에 앉아 이즈마일로보 마켓과 전날 갔던 트레티야코프에서 산 엽서에 한국으로 보내는 편지를 쓰고는 근방 우체국을 검색했다. 그리고 우체국을 찾아 삼만리가 시작됐는데, 모스크바와 상트,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톡 등등에서 느낀 나의 생각은, 이 사람들 우체국을 왜 이리 꽁꽁 숨겨뒀어.


보통 한국에서 우체국은 가능하면 대로변에, 찾기 쉬운 위치에 있지않은가. 혹은 골목안에 있더라도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져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찾은 우체국은 정말 당황스러운 위치에 있었다.

건물 세개가 맞물리는 골목 안에서 그것도 작은 문으로 들어가야지만 찾을 수 있었기 때문.



러시아에서는 구글맵이 그래도 잘 인식되는 편이었는데 우체국을 못찾아 같은 위치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찾았을때의 감탄이란! 어렵게 쓴 편지를 보내고 나오니 저 멀리 붉은 광장이 다시 보였다.

왠지 아직 반나절은 더 모스크바에 있을 예정이지만, 붉은 광장을 마지막으로 보게 되니 벌써 모스크바를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바이바이, 모스크바, 붉은광장.







노보데비치 수녀원을 다시 가보기 위해 스몰렌스카야 역에 도착했다. 한번 가본 길이라 그런지 이제는 헤매지 않고 잘 도착했는데, 이상하게 지하철 역을 보니 또 괜시리 센치해졌다. 일주일간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모스크바만큼 지하철 역이 예쁜 나라는 간 적이 없어서 지하철에 매번 감탄해서 그런가. 마지막은 아니지만 괜시리 센치해지더라. 아쉬움은 뒤로하고, 노보데비치 수녀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시간이 꽤 남은 상태에서 왔기 때문에 천천히 구경 했다.


방금 봤던 그 건물입니다.



어딘가에 한국인의 묘가 있다고 하고, 얀톤 체호프의 묘가 있다곤 하지만 얀톤 체호프와 큰 연이 있는게 아니고 (몇년 전 그의 작품을 읽다가 ?????? 하며 내려놓은 기억 뿐) 그냥 관리가 잘 된 묘지들을 따라 걸었다.



보통 한국이던 어디던 묘지에 오면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이날은 해가 워낙에 쨍쨍해서 그런건지 무섭다는 생각도 안들더라. 그렇게 한참 묘지를 돌아보다 보니 지금 유일하게 입장 가능하다는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이콘 가득한 내부


러시아 여러 성당들을 돌아다니다, 그리고 몇몇 미사를 구경하다 발견한 점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다 미사를 서서 보나보다. 지난번 구세주 성당에서 미사를 구경한 바에 의하면 꽤나 오랜시간 미사를 드리는 것 같던데, 내내 서서 드리다니. 기독교가 아닌데다가 러시아어를 읽을 수 없던 나로써는 감흥 없이 이콘 그림을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성인에게 기도를 드렸다. 이제 절반 정도 온 나의 여행이 한국에 귀국하는 그 순간까지 아무일 없길.

그리고 내 징크스인 한국으로 출국 할때마다 공항에서 뭔가의 헤프닝을 겪는 일이 없기를.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



다행히 노보데비치 수녀원은 구석 어딘가에 긴 의자가 있어 잠시 앉았다.

바깥은 정말 날씨가 쨍쨍했고 온도는 높았다 (26도로 기억) 그래서 어딘가에 앉아 쉬고 싶었는데 기도실 내부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자니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바람이 부는 수녀원 내부에 앉아 그들의 기도 드리는 엄숙함의 공기를 맡고 있자니 이상하게 잠이 왔다.



꼭 유럽권 성당에 가서 앉아 있다보면 잠이 오더라. 왜일까.

살랑 거리는 머리카락이 내 볼을 몇번 쓰다듬을 때 즈음 몸을 일으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수녀원 여기저기를 더 둘러봐야지.




전에 왔을 때 공사중인건 알았는데, 공사중이라 그런지 관람 가능한 건물도 많이 없었다. 몇년 정도 더 수리할 예정이라고 하던데...아무래도 빨리빨리의 민족일지라도 문화재 복원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모스크바에 일주일간 이렇게 진득하게 있었으니, 다음엔 트레티야코프에서 이반뇌제의 그림이 전시 될 때 오고싶으니 그때엔 노보데비치도 공사가 끝나있겠지.


슬슬 관람 마감시간이 가까워지길래 나가려고 했는데 종이 쳤다.

다섯시가 다 되어가서인가보다. 공사중이지만 종은 쳐야지, 아무렴.



수녀원 내부에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렇게 종이 치니 또 이상하게 홀리걤성이 꿈틀거렸다.

아무도 없는 수녀원, 곳곳에 있는 묘지, 그리고 울리는 종소리까지 섞이니 다른 이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오덕들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감성. 알지알지?

수녀원을 나와 다시 백조의 호수로 발을 옮겼다. 저번엔 왁싱 에약 시간 때문에 호수 초입에서 피크닉을 했다면 이번엔 내가 아무데나 앉고싶은데 앉아야지 하며 산책했다.



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 영감을 얻었다더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보였다.

호숫가에 앉아본 적 있는 나로써는 이해 가는 감성이었다.

물론 예술 감각은 좀 부족해 그림을 그리기엔 역부족이고, 이렇게 사진이나 글로 끄적거리지만



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멍해지면서 생각이 가라앉는 기분도 좋아하고. 물을 바라보며 살고싶었다. 이런 내 얘기를 듣고 중학교 은사님은 물을 바라보며 살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던데 너는 그럴 걱정도 없으니 살고싶은데 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셨었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만난 호숫가도 반갑고, 바이칼도 너무 좋았는데. 앞으로도 물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지.


건너편에서 보는 풍경



노보데비치 수녀원 건너편까지 걸어와서 벤치에 앉았다. 꽤 넓은 규모의 호수였지만 산책 하며 만나는 러시아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정말 싫은 점이라면, 이 꽃가루



이걸 보고 남자친구는 게임 라스트오브어스같다며 신기해했지만, 난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이날 저녁, 꽃가루 때문에 눈이 다 충혈됐기 때문에.......

나중에 어찌 되었든, 일단 햇살을 즐기기로 했다.



오늘은 피크닉을 즐기러 온 게 아닌지라 가만 돗자리가 없어 벤치에 앉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잔디밭에 벌러덩 누운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얼마전에 왔을때는 누워있는 사람이 없어 잔디밭에 앉으면 안되는 분위기인가? 했지만, 오늘은 누운 사람이 많이 보이는걸 보면 그냥 그때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나보다. 역시 잔디밭을 보면 일단 눕고 보는건 한국이나, 러시아나. 사람 사는거 다 똑같다.



한참을 가만 바라보다 일어났다. 햇살때문에 믿어지지않지만 여섯시 반 이었기 때문.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 마지막 즐길 음식은 바로.....

평양냉면이었다.






모스크바에는 북한에서 만든 음식점이 있다. 바로 카페 고려.

북한에서 외화벌이 수단으로 만든 음식점이라는데 사실 러시아를 여행하며 북한 사람들을 몇번 보긴 했다.

(전혀 대화한 적 없음)


블라디보스톡에서 처음 도착하자마자 시내로 어떻게 고민하다 공항철도 시간표를 보기위해 공항철도 승강장으로 걸어갈 때, 러시아에 도착한지 두시간만에 약 30명의 북한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연히 한민족인건 알고 있지만, 자켓 카라에 인민기를 붙이고 앉아있는 그네들의 모습에 잠시 놀랐던 적도 있고, 모스크바의 어느 맥도날드에서 너무 더워 맥플러리를 먹기 위해 들어가 테라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뒷쪽 테이블에 북한 유학생..? 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대학생으로 보이는 인민기를 붙인 남자 둘이 햄버거를 먹고 있기도 했다.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나라라 그런지 교류가 많은건 알고 있었지만 살면서 한번도 못보던 국가의 사람들을 갑자기 무더기로 만나니 신기한건 어쩔 수 없었다. 대화를 나누면 안된다는 말에 당연히 멀찍이서 서로를 관찰하는걸로 끝났지만, 그래도 정말 평양 사람이 만들어준다는 평냉은 매우 관심 가지 않습니까?



카페고려는 “Ploschad’ Gagarina”역에서 한참 조금 걸어야 나오는 한적한 상가 인근에 위치해있었다. 약 한달 정도 러시아에 지내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외운 키릴문자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뻔!

문을 열고 지하로 한참 구비구비 내려가면 이런 그림도 걸려있고,



내부는 그냥그냥 한적하고 깔끔했다. 은근 한국인들이 많이 여행오는지라, 여기저기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보였고, 신기하게 느낀건지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메뉴판을 뒤적거리다 평양냉면을 주문한 뒤 가게를 둘러보았다.


궁금하다면 보는 것 추천


가게 내부에 틀어져있는 비디오에서 김일성 수령님 만만세 이런 노래가 가끔 나와 흠칫 하긴 했지만 그냥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가게 내부를 구경하고도 한참 후 음식이 나왔다. 왜이리 음식이 늦게 나온건진 아직도 궁금.....



음식에 대한 평은...음...내가 이제까지 서울에서 먹었던 평냉은 도대체 뭐지? 싶었다.

맛있다는게 아니라 신기한 맛이었다. 굳이굳이 유사한 맛이 나는 음식을 꼽자면, 우뭇가사리 무침이었다.

우뭇가사리 무침 소스에 면을 먹는 느낌? 근데 또 따지자면 면 맛이 오묘했다. 진짜 평양냉면 맞는건가...옥류관에선 이런거 안나온다던데!!! 를 외치며 평양냉면 후기는 끝 맺기로 한다...







카페 고려 근처의 아샨마트에 들러서 기념품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기차에서 먹을 간식거리와 물을 사고 있는데 눈이 정말 너무 아파왔다. 눈물이 줄줄 나고 눈이 시려 뜰 수도 없을 정도. 결국 화장실로 달려가 눈을 살피니 꽃가루 때문에 징하게도 충혈이 되어있었다. 두 눈 렌즈를 모두 빼버리고 싶었으나, 렌즈나 안경이 없으면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나이기에 언어도 못읽는 나라에서 까막눈으로 다닐 순 없기에 한쪽만 빼고 얼른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다.



이런 날이 올꺼라곤 생각 안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에서 결막염약을 챙겨온 나에게 스스로 엉덩이를 두드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와중에, 내가 내릴 역이 맞는지 잘 안보여 눈을 찡그리며 정류장을 확인하는 나를 보며 지하철 건너편에 앉은 게이 커플이 슬그머니 손을 놓는걸 봤다.

미안해다. 당신들을 보고 찡그린게 아니라 정말 내 모든걸 걸고 지하철 정류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당연히 이 글을 볼 일은 없지만, 정말 미안하다. 오해이다...





기차역에 도착해 짐을 찾고, 시베리아를 건너왔다는 이유로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열차역에서 짐을 들어주겠다는 삐끼들을 무시하고, 얼른 안약을 넣은 후 기차역에 앉아 열차를 기다렸다.



:) 당연히 당할 일은 없겠지만, 갑자기 기차역에서 짐 들어주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피합시다!

보통 짐을 들어줬다며 뭔가를 요구할 것 같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도 한국 외에는 나의 짐을 타인에게 맡기는 일은 잘 없어야한다는거,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안약 덕인지 눈물은 멎었고 안경을 써서 훨씬 쾌적한 눈을 가진채로 열차를 기다렸고, 열차가 도착했다는 말에 여권과 티켓을 챙겨들고 플랫폼으로 갔다.


이번에도 갑자기 도와주신다며 들어다 주신 러시아 여성분 :)


미리 이르츠쿠츠에서 교환 해 둔 티켓으로 기다리고 있자니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선 이미 정차해있던 열차에, 이르츠쿠츠에서는 열차가 완전히 정차한 후에, 그리고 모스크바에서는 열차가 도착하는 것 부터. 살면서 완전 어릴 적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경유하려고 갔던 순간 외엔 밟아본 적도 없던 나라에서 그 나라를 열차를 타고 관통하다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다 싶었다.


이게 바로 시베리아를 건너온 짬바다-! 하는 차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까지는 약 8시간을 기차를 타고 달린다. 무궁화호도 아닌 열차를 8시간이나 타야한다니, 상트까지는 또 얼마나 먼 거리일지, 창밖을 볼 생각에 잠시 설렜지만, 이번 열차는 야간 열차라 자고 일어나면 도착할 것 같았다.



3등석은 시베리아를 건너는 내내 타고 왔으니, 이번에는 2등석을 앉아보았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3등석보다는 2등석을 치안상 더 추천한다고 한건지 알 것 같은게, 2등석에서부터는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문을 닫을 수 있으니 무슨 일이 생겨도 밖에서 알아차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심지어 내가 탈 때 먼저 타 있던 사람이 문 닫고 자버리는 바람에 못들어가고 복도에서 문 부서져라 쾅쾅 두드림...)


열차에 타고나니 익숙하게 매트리스와 요를 가져다 주셨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안약을 한번 더 넣고 자리에 누웠다.

어느새 러시아의 끄트머리에서 끄트머리까지 도착하게 되다니. 유라시아 대륙을 다 건너다니.

감기는 눈 사이로도 새삼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러시아 필름사진 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