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상트에서 만난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호스텔

07-06-19 상트페테르부르크 1일차

by 역마살아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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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잠들기 전에 눈에 안약을 넣고 잤더니 자는 사이에 열심히 낫는 중이었는지, 눈곱이 잔뜩 껴서 알람이 울리는데도 눈이 떠지질 않았다. 눈을 뜨고싶은데 자력으로 떠지지 않아 이게 무슨일이야 하며 혼자 버둥거리다 눈곱 때문인걸 깨닫고살살 눈곱을 긁어내고 눈을 떴다. 이런 눈 관련한 질병은 처음이라 눈을 뜨고도 당황했고 생경한 감각에 창 밖을 봐도 여기가 어디더라 싶었다.

철길을 보고 또 잠시 어엉? 하다가 깨달았다. 지금 한국 아니고 러시아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레닌부르크 역으로 가는 중이었다는게.

이번 여행을 하면서 길 위에서 눈 뜨는게 도대체 몇번인지. 여행의 반 정도는 길 위에서 눈을 뜬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눈 뜬게 가장 멍청이 같고 서울의 현실에서 꿈으로 다시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나를 깨운다면 한번 더 깨울수 있을꺼야. 눈 떴는데 내가 여행중이라니, 너무 좋잖아.




러시아 열차타기에는 짬바가 생겼다고 일어나서 전날 사놓은 과일을 우물거리고 세수를 하고 나니 어느새 레닌그라드역에 도착했다고 소리가 들렸다. 전날 내 열차 칸 문을 안열어줘서 야밤중에 힘들게 했던 내 윗자리 아저씨는 그게 내내 미안했는지 내릴 때 짐까지 들어주시더라. 스파씨바 스파씨버 하면서 역에서 내려 기나긴 기차역과 지하철을 잇는 통로를 지나 가장 처음 마주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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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웨이에 있는 서브웨이였다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Spasskkaya역"에 도착해서 숙소로 곧장 향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에어비앤비를 제외하고 모두 “Soul Kitchen Hostel”에 묵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스텔이라는 평이 궁금하기도 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혼자 여행한 여성분들은 다들 여기에 묵는 것 같길래.


KakaoTalk_20200309_191420009_02.jpg 러시아스러우면서도 우버덕분에 유럽느낌 물씬


낑낑거리며 4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짐을 이고지고 걸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트는 모스크바보다 훨씬 더 유럽 느낌이 나는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는 찐 러시아에 있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유럽으로 떨어진 느낌. 괜히 설렜다. 표트르 대제가 유럽을 바라보고,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하며 천도했던 수도답게 모스크바는 러시아 냄새가 물씬 났다면, 상트는 유럽이 섞인 러시아의 맛이 났다.

당시 러시아 수도를 천도했던 표트르 대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옮겼을까. 당시에 유럽이 그렇게 발전되어보여서 부러웠을까 싶고, 유럽을 쫓고싶다던 그 마음이, 간절함이 길거리에서 느껴지는것 같기도 했다.


KakaoTalk_20200309_191420009_03.jpg 그래도 여전히 알록달록함은 포기못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


낑낑거림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려 하자, 너무 일찍 왔던 탓인지 오후 한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하다 하여 우선 짐부터 맡긴 후 숙소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왜 이 숙소가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스텔이라고 하는지 알것 같긴 했다. 나는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알혼섬을 빼고는 모두 호스텔에서만 묵었는데, 가장 예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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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예뻤던 Soul Kitchen Hostel 내부


심지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요리하는 것은 매우 환영이며 매주 수요일 저녁 쿠킹클래스도 열린다고 하더라. 쿠킹클래스도 열고 사람들을 모아 함께 놀러가기도 하는. 인싸를 위한 호스텔인것 같았다.

태생적으로 인싸는 아닌지라 그들의 정보에 참고할께- 라고 한 후 숙소를 나왔다. 숙소에서 멍때리고 있을까 했지만 한참 청소중인지라 북적북적 거리는 분위기가 부담스럽기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내렸을때완 달리 뽀송한 컨디션에 처음 보는 상트를 느껴보고싶었다.

나오자 마자 숙소 근처에 성 이삭 성당이 있다기에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KakaoTalk_20200309_191420009_10.jpg 깃발사진 이정도면 내 시그니처 삼아줘야한다


2월에 혼자 동유럽~러시아 여행을 했던 동생 말에 의하면 모스크바보다 상트가 더 볼게 많다고 나에게 모스크바를 왜 3일 이상 있냐며, 오히려 상트가 더 볼거 많다고 조언해줬는데 궁금해졌다. 그 상트에서 처음 맞이하게 될 유명한 관광지 1번 (이라 하니 이상하지만) 성 이삭 성당!


쌍트 (45).jpg 웅장한 성 이삭 성당


숙소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이삭 성당을 보니 모스크바보다 볼거리는 풍부한가보다 싶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마린스키 궁전과 롯데호텔을 보니 뜬금없는 롯데호텔에 당황스러웠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KakaoTalk_20200309_191420009_08.jpg 성이삭 성당과 마주보는 마린스키 궁전


이삭 성당의 첨탑 부분에 가볼 수도 있는데, 해가 질때 가는게 좋다 하기에 다음에 해 질때를 노려보기로 하고 우선은 내부를 둘러봤는데, 자기들을 박물관이라 칭하는게 재밌어서 가이드를 신청했는데 성이삭 성당은 과연 박물관이 맞는것 같긴 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둘러보면 몇몇 스팟에서 크기와 벽화를 보고 신기해 하다 말았을 것을 오디오 가이드까지 이용하니 각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니 흥미로웠다.

이래서 다들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하는가보다.


쌍트 (49).jpg 필름사진으로 찍으니 뭔가 으스스하다


내부를 둘러보고 전반적으로 받은 느낌은 ‘정말 더럽게 화려하다’였다. 화려함에 기가 눌릴 정도.

표트르대제가 본인의 수호성인을 위해 지은 성당이라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지 더 화려했다. 지독하다 싶을 만큼 금으로 번쩍 거렸고, 높이가 매우 높았다. 이제까지 약 한달정도 의도치 않게 러시아 한달살이를 하고 있는 셈인데, 그 동안 참 많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봤었다. 그리고 이제는 왕이 자신의 수호성인을 위해 지은 성당까지. 과연 종교란 무엇이길래 개인이 개인의 삶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걸까. 집은 불교를 믿고, 개인적으론 무교인 나로써는 이들의 믿음이 신기했다. 이해가 안될 것 같지만, 기왕에 장소가 갖춰진 김에 노력해서 이해 해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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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닿는 곳 마다 화려하던 성 이삭 성당


그래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도 힘껏 고개를 쳐들고 눈을 찌푸리며 관람했던것 같다. 그러다 고개가 아파 주물거리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늘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힘껏 하늘을 바라볼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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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맺히고 고인다는게 뭔지 보여주는 내부 자연조명


그리고 오후 두시의 햇빛이 고이는 내부 건물은 너무 예뻤다.

이날이 날이 흐려서 그랬는지, 모스크바의 오후 두시였다면 매우 해가 쨍쨍해서 타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이날은 해가 어둑했다. 그래서 더 분위기가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의 성당이란, 빛이 따스롭게 들어오는 천장과 벽은 감탄스럽구나.

유럽의 교회들은 들어가면 이상하게 경건해지고 누구라도 기도를 드리지 않고는 못배길것 같은 느낌이 나게 만든다. 여기도 역시.


KakaoTalk_20200309_191420009_18.jpg 천장의 돌멩이 하나, 장식 하나까지 나 정말 다 신경썼어요~ 가 느껴진다.


그리고 둘러보다보니 막상 수호성인을 위해 지었다는 성당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것 저것 마구 섞어놓은 느낌이라 관리는 잘 안했구만 싶었고, 한번 성당의 몰락을 겪고 나니 반 종교단체의 본부로 쓰였다는데. 내심 그게 불쌍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장한 것은 인정. 건물 들어가기 전에 오...! 진짜크다! 내 필름 카메라에 한 프레임에 안 담기겠는걸? 하는 감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한번 같이 감상 해 보시죠




성당 구경을 하고 나니 체크인 시간이 넘었길래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모스크바에서 상트의 날씨를 보니 모스크바보단 춥다길래 전날 긴바지를 입고 나왔었는데 너무 더웠다. 날이 마냥 흐린줄 알았는데 또 간간히 해가 비치는데 너무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데 전날 꽃가루 때문에 눈이 충혈 되어 결막염 약을 넣고 안경을 쓰고 돌아다니는 지라 선글라스도 못끼고. 이래저래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땀이 줄줄나고 있었다. 원래 한국에서 딱히 땀을 흘리지 않는 편인데도 엄청 덥고 땀이 났다.


모스크바보다 해는 강렬하지 않지만 원래는 늪지대였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습했다. 이제 겨우 6월 초인데 7월의 한국 날씨 같은 습함이랄까. 숙소에 돌아가서 한바탕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반바지를 가진게 너무 없더라. 반바지를 사러 가야지 하고는 숙소에서 나왔다.

분명히 밥을 먹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체크인도 하고 짐도 풀어놓고 샤워도 하고 나오니 배가 고파 숙소에서 뒤적거리다 찾아놓은 음식점 “Mickey & Monkeys”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는데 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KakaoTalk_20200309_193345285_02.jpg 왜 갑자기 어두워지는건데....하늘에 포커스 맞춰서 이런거 아님...


밥 먹으러 들어가는 길에도 어디선가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에 에이 설마 했지만, 음식을 주문하고 앉아있노라니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더니 요란하게 쏟아지는 비에 당황했다.

여행한지 한달 만에 맞는 비였고, 원래 여행 하는데 비가 온 적이 없기에 신기했다. 너무나도 소나기 스러운 비였기에 음식을 먹고 나면 비가 멎겠지 하며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한국이 정말 좋은나라구나 싶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파스타를 시키면 으레 피클도 주기 마련인데 피클은 별도라니. 한국이 갑자기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KakaoTalk_20200309_193345285_01.jpg 맥주와 파스타가 만 천원~!








비가 온 다음 가게들이 밀집해있다는 넵스키대로를 따라 걸었다. 자라든 뭐든 있겠지 싶어서.

한바탕 비를 쏟아낸 하늘은 내가 언제그랬어~? 하듯이 다시 해가 쨍쨍했다. 비 한방울 맞지 않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만족스러운 하루인가.


쌍트 (46).jpg 운하가 옆에 있어 언제라도 물냄새를 맡을 수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대로 방면으로 걸어가는 길 곳곳에 있는 건물에 누군가의 현판이 같이 걸려있었다. 신기해서 찍어놓고 걸어가며 찾아보니, 상트에서는 유명인이 살았던 건물, 집에는 누구의 생가 라고 붙여놓는다고 한다.


KakaoTalk_20200309_191420009_19.jpg 지금 보니 고골의 집 인것 같다. 세상에!


비록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예르미타시 박물관도 있을 정도로 예술 작품이 많다는 상트라서 그런가 이런것 하나 마저도 예술도시 다워보였다.

생각해보면 러시아의 모든 곳은 예술 도시, 예술국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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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의 곳곳을 함께 곱씹어보세요


넵스키 대로에 있는 자라를 갔다가 결국 넵스키 대로 끄트머리에 있는 쇼핑몰까지 가서 자라와 H&M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했다.

모스크바보다 건물이 예뻐서 그런지 상트의 밤은 퍽 고즈넉 하면서 유러피안 감성이 넘쳤다.

모스크바보단 다른 느낌이지만, 모스크바의 매력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매력은 엄연히 다른 것 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모스크바가 더 취향에 맞았다. 예쁜 호스텔로 치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더 취향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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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북유럽 스러워진 저녁하늘 (feat. 밤 9시 다되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