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귀여운 고양이의 상트의 미술관 구경

08-06-19 상트페테르부르크 2일차

by 역마살아임더


소울키친호스텔의 좋은 점 중 하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아침 여덟시 쯔음?) 애플파이를 먹을 수 있었다.


KakaoTalk_20200311_174145144_08.jpg 글 쓰며 또 사진 보니 먹고싶네요


사과잼을 팍팍써서 그런지 식감도 좋고, 투박한듯 포슬포슬한 식감이 자꾸 먹히니 한번쯤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여기서 직접 구워주는거니까, 바로 구운걸 먹으면 을마나 맛있게요.

음식도 침실을 제외한 아무데서나 먹어도 된다고 하길래 애플파이를 접시에 담은 후 어제 체크인 하기 전 숙소를 둘러보다 발견한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테라스가 상당히 경쟁이 치열해서 저녁에는 거의 앉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곳 이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앉아보니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알법도 하다.


여유 그자체


강 바로 앞에 있어서 그런지 강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애플파이는 맛있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오늘도 날씨가 좋겠구나.




전날 예상과 다르게 넵스키대로 끝까지 가게 만들었던 자라에서 산 바지를 입고 산뜻한 기분으로 숙소를 나섰다.


귀여운 고양이 출발합니다...(?)

사진 찍고 있는 나에게 호스텔 직원이 아는 척을 하자, 전날 거주지등록을 위해 맡겨두었던 여권을 돌려달라고 하자 여권을 돌려주며 호스텔 직원이 러시아어에 담긴 내 이름의 뜻을 알려주었다 (?)

내 이름을 러시아어로 발음하면 “귀여운 고양이”가 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귀여운 고양이가 되어 좀 귀엽게 (?) 길을 나섰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국립 러시아미술관. 모스크바에서 읽었던 “소근소근러시아그림이야기”에 나오는 작품의 거의 대부분은 트레티야코프의 그림이었지만, 그 다음으로 많은 책 내 소장품을 가진 곳은 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미술관이었다. 그래서 책에서 봤던 작품을 볼 생각이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갈만한 거리이길래 쨍한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길을 걷다가 보니 스타벅스가 보였다. 스타벅스를 보니 귀여운 고양이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걸?! 하며 스타벅스에 들어가려다가 마주쳤다.


KakaoTalk_20200311_174145144_06.jpg 세로 화면엔 다 안들어와서 가로로 촬영할 정도!


이르츠쿠츠에서 만났던 카잔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이야. 스타벅스 건너편에 웅장하게 있길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모스크바 못지않게 관광지가 멀지 않은 곳에 다들 모여있군 하는 감상과 함께 커피를 들고 나왔다. 이름을 말해달라길래 이름을 말해줬더니 스타벅스 파트너가 좀 웃는것 같은건, 당신도 내 이름이 귀여운 고양이라 웃는건가요.


KakaoTalk_20200311_174145144_05.jpg 카잔성당과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러시아 박물관을 향해 커피를 마시며 강을 건너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더니, 왠 성 바실리 성당이 보였다.

엥? 여긴 상트인데 하면서 지도를 켜서 확인 해 보니, 성 바실리 성당을 본따 만든 피의 구세주 성당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러시아 박물관을 갔다가 저길 가야겠군! 이라며 다음 목적지까지 즉석에서 정한 후 미술관을 향해 걸어갔다.



KakaoTalk_20200311_174145144_04.jpg
KakaoTalk_20200311_174145144_02.jpg
파란 하늘과 어울리던 건물과 미술관 앞에 있던 푸쉬킨 아저씨. 생각보다도 푸쉬킨을 좋아하는것 같다.



그리고 어느덧 박물관으로 보이는 포스의 건물을 발견하고 여기군! 확실히 여기야! 하고 생각을 하고 열심히 사진을찍었는데, 건물에서 보이는 이름이 러시아 박물관이 아닌 것 같아서 두리번 거리자, 여기는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했다. 허허. 누가 봐도 강렬하게 나 니가 찾던 박물관이다~ 하는데, 깜빡 속아넘어갈뻔.


KakaoTalk_20200311_174145144_01.jpg 내가 속은 그 러시아 자연사 박물관


러시아 미술관은 그 옆이라길래 꽤 큰 건물을 건너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키릴문자를 못읽었으면 어쩔뻔했어.


KakaoTalk_20200311_174145144.jpg 웅-장한 러시아 미술관


왕궁같이 생겼다 했더니 원래는 미하일롭스키의 왕궁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하더라. 표트르대제가 수도를 천도한 것도 있지만, 그 전부터 러시아 황실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제2의 수도로 여기며 곳곳에 별장을 지어 여름이나 겨울에 놀러왔다곤 하더라. 그래서인지 겨울궁전, 여름궁전이 따로 있다고 할 정도. 게다가 예르미타시 미술관도 원래는 왕궁으로 쓰던 건물이라고 하는걸 생각 하면, 러시아 왕조들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랑은 엄청 큰 것 같다. 무엇이 그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집중하게 했을까.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29.jpg 공주님 한명이 계단 난간 타고 내려올것 같은 미술관 로비


게다가 이렇게 로비가 예쁜 박물관은 처음봤다. 당장에라도 왕비가 위풍당당하게 내려올 것 같은 느낌에 연신 우와 우와 하면서 미술관 전시관으로 입장했다. 입장해서도 왕궁이라 그런지 천장의 자그마한 곳 까지 꾸며져 있어서 고개를 연신 돌리며 찾아 보는 맛이 있었다.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27.jpg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25.jpg
이렇게 화려한 미술관이라니



내가 아는 그림은 물론 소근소근 그림이야기에 나왔던 그림뿐인데다가, 이 미술관 어딘가엔 샤갈의 그림도 있다고 하는데, 일단 이 넓고 넓은 미술관을 헤매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싶은 마음으로 편하게 관람에 나섰다. 다른 사람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관들은 동선이 엉망진창이라고들 하던데, 모스크바에서 생각한대로 이것 또한 이들이 의도한 바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엉망진창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음껏 즐기라는 뜻이겠지. 남들이 많이가본다는 유럽, 그 중에서도 예술, 문화의 강국. 예를 들어 영국이나 프랑스를 가보지 않았던 나에겐 러시아만으로도 매우 놀랄만큼의 예술 작품 소유 규모였다. 더욱이 현대 미술이 아닌 소위말하는 오래된 그림들이 있는건!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26.jpg 갑자기 감성타임~ 왕족이 되어 건물 배회하는 상상을 해 보아요.


원래 미하일롭스키의 왕궁으로 쓰였다고 하더니, 곳곳에 지나가다가 누군가가 실제로 살았을법한 풍경을 보면 문득문득 멈추게 되었다. 비록 우리나라는 궁궐을 어떤 전시공간으로 쓸 수 없지만, 이렇게 미술관으로 만들어서 왕궁도 구경하고 전시품도 구경할 수 있게 만들어놔서 그런가. 동시에 두가지를 보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내가 바로 얼마전에 트레티야코프를 다녀와서 그런지, 이상하게 겹치는 그림이 많아보였다. 트레티야코프도 갔다오고, 소근소근러시아그림이야기 라는 책까지 읽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몇몇 그림들이 보고 또 보고 처럼 반복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트레티야코프와 유사하게 러시아 민속화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그림들이 많아서 이것 저것 보며 많은 생각이 들더라. 한 미술관, 그것도 꽤나 큰 미술관에서 다 담지도 못할 만큼 유명한 작가들이 이렇게 많았으며, 그네들이 그린 민속화들이 이렇게 많다니. 러시아 화가들은 그림에 사회운동의 성격도 띄우게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24.jpg


예를들면 이 그림은 유명한 러시아의 현실을 그린 그림, 소령의 구혼이다. (실제로 매매혼에 대한 비판을 담은 그림이라고 한다) 나이많은 소령의 구혼과 이를 부정하고싶고 도망가고싶은 딸을 붙잡는 엄마와 그를 보고 뒷말하는 이들까지 담아둔 그림으로, 표정이 마치.....퇴사하고싶어 몸부림 치던 나와 같았다.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22.jpg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 폼페이 최후의 날 그림은 눈에 담기자 마자 이집트왕자1의 "Deliver us" 노래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괜히 그런 느낌이 들게 하더라. 전반적인 그림의 구도와 색감때문인가.

그림을 보자마자 특정 노래가 생각 나며 소름이 돋는 경험은 처음이라 그런가, 마침 그 앞에 있던 의자에 앉아서 "Deliver us" 를 틀어놓고 못박힌듯 그 자리에서 그림을 꼼꼼하게 뜯어봤다. 닭살이 가라앉지 않았고, 이런 예술경험을 하게 된 것에 감사하고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런 소름돋는 전율을 느낀 점이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내가 이 그림을 안다 모른다라기 보다는.



전시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러시아에서 나름 노인 고용을 위해 신경 쓰는구나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게 각 전시실을 지키는 사람들? 이 러시아 미술관만 해도 수많은 방이 있는데, 각 구역을 담당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크게 무언가를 하진 않으시지만, 전시 관람을 하는데 예의가 없이 군다거나,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막으시는 듯 했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지하에 있는 현대 미술실까지 내려왔고, 샤갈의 그림도 보고, 왠지 색감이 마음에 드는 이 그림까지 보고나니, 어느새 전시가 끝났다.


어느 한적한 주말 오후, 대청소를 마친 후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문에 걸터앉아 바람과 햇볕을 쬐는 모습에서 주말 오후의 나른한 바람과 눈이 부신 햇살이 느껴지는것 같았고, 그림속 인물의 여유와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아야지. 뿌듯함과 여유, 개운함을 느낄 수 있는 삶.













나오니 넓고 맑은 정원 한복판


사람들이 러시아 미술관의 동선이 엉망진창이라고 하더니, 과연 나올때 좀 헤맸다. 내가 들어갔던 입구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와서 한참 헤맸고, 맡겨둔 짐 찾으러 한참을 걸어다닌 것 같았다. 하지만 좋은 작품들을 많이 봤으니 만족해 하며 나오자 정원이 보였다.

왠 정원이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정원에서 산책을 즐기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더라. 해가 쨍하게 내리쬐는 오후였다.


미술관 건물을 나오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적한 주택가가 나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이는 아시안 음식점에 들어갔다. 이제 한 한달 정도를 여행하다보니 쌀이 먹고싶었다. 미역국이 너무 먹고싶었다. 남들은 김치찌개나 김치가 땡긴다 하는데 뜬금없는 미역국을 향한 식욕이 신기했지만, 김치찌개보다 더 구하기 힘든 미역국을 어떻게 구하겠는가. 그냥 아시안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걸로 만족하기로 했지만, 그래서 아시안 음식점을 찾았지만, 음식점 정보를 쓰지 않는게 낫겠다. 볶음밥을 시켰으나 밥은 매우 짰고, 내가 아시안인걸 보고는 젓가락을 갖다줬어서 그런가....아니 도대체 볶음밥을 어떻게 누가 젓가락으로 먹습니까 ㅠㅠㅠㅠㅠㅠ

툴툴 거리며 나와 아까 지나가며 본 피의 구세주 성당을 찾아 걸어갔다.



쌍트 (1).jpg 멀리서 보이는 피의 구세주 성당


구세주 성당으로 걸어가는 앞길에 기념품가게가 매우 길게 늘어서 있어서 그런가, 성당을 발견하고 걸어가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려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러고보니 구글 맵에서 여기 앞에서 파는 기념품들이 제일 싸다고 본 것 같기도.

가까이에서 본 구세주 성당은 바실리 성당을 닮은듯 닮지 않은듯 뭔가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다들 알고있기로 바실리 성당을 지은 후 건축가의 눈을 뽑았다고 하니 똑같이 만들 순 없었던건가.


쌍트 (3).jpg
쌍트 (2).jpg
필름 카메라로 찍으니 더 앤틱해보인다



입장하는데에는 조금 헤맸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그런가 관광객이 많아 그 뒤에 섰는데 알고보니 단체 관람객용 줄이라고 했다. 그래서 개인 입장 고객용 줄을 찾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들어오는데에도 시간이 좀 걸렸다. 관광객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게 바로 상트에서 만난 단체 관광객 VS 나의 싸움의 서막이었다)


드디어 입장한 피의 구세주 성당은 어제 본 성이삭성당이랑은 조금 다르구나 싶은게 성 이삭 성당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 예술인 곳이었는데 구세주 성당은 전반적으로 어둑어둑했다.

날씨만으로 따지자면 전날 이삭성당에 갔을 때가 더 흐렸고 오늘은 아주 햇살이 쨍쨍하기가 한여름의 그것인데도 불구하고 어둑어둑한 내부가 내심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성당 내부의 화려함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09.jpg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10.jpg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05.jpg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12.jpg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13.jpg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06.jpg
눈에 보이는 곳곳 마다 그림이 없는 곳이 없고, 화려하지 않은 곳이 없던 피의 구세주 성당


쌍트 (4).jpg 안전하게 돌아가는걸 허락하소서 아멘!



성당까지 구경하니, 여행하며 하루에 두 곳의 관광지나 본 내가 너무 기특하여 이만 숙소에 돌아가야지 하며 넵스키대로를 걸어올라가는데, 러시아의 교보문고로 불린다는 돔 크니기 서점이 눈에 들어오자 슬그머니 들어갔다. 해리포터가 연상되는 외관에 너무 반했고, 오랜만에 책을 보니 신났다. 다만 키릴문자라 1도 모른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쌍트 (9).jpg


기념품을 사기 위한 관광객도 많아서인지 북적북적하는 느낌에 휩쓸려 괜히 기념품으로 나에게 쓸 엽서와 남자친구에게 쓸 엽서, 그리고 배지를 하나 고른 후 2층까지 구경하고 나와보니 숙소에 들어가기엔 아직 남은 해가 너무 쨍쨍했다. (저녁 여섯시임에도 불구하고!)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03.jpg 이 카페, 추천합니다.



뭔가 커피를 마시며 오늘 느낀 감정을 적고 싶어 근처에 카페가 없을까 골목 안을 기웃거리다 카페를 발견했다.

가게 이름이 너무 웃겨서 날 홀리게 한 “Skuratov Coffee” 알고보니 가게 이름은 아니었지만, 창문에 커피포르노라고 떡하니 써있는게 웃겼다. 대놓고 커피 짱짱이다라고 말하는건가. 잠시 앉아서 다이어리를 끄적거리고 나오니 달이 떴다. 들어갈 때 본 시간이 여섯시 반~일곱시 사이였는데 해가 지는걸 보니 두시간 넘게 앉아서 끄적거렸나보다.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02.jpg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두번째 달


아홉시가 된 시간에 또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하며 슈퍼에 가서 소고기를 한 덩어리, 그리고 작은 와인을 사와 숙소가 자랑하는 부엌을 들어가니 오늘이 마침 쿠킹 클래스가 있던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보드카를 마시며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서 요리하는건 좀 부담이니 그냥 저녁을 스킵할까 하다가도 내가 뭐 잘못한것도 없고 껄끄러운 사람이 있는것도 아닌데 왜! 라는 생각에 요리를 잘하는 척, 많이 해본 척 하고 구워내니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었다.



와인 한잔과 이 밤. 달콤하게 짠-

그렇게 상트에서의 둘째날이 흘렀다.



KakaoTalk_20200311_174136467_01.jpg 존맛탱. 내가 한 요리는 맛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