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러니까 시민혁명을 당하셨죠, 페테르고프

11-06-19. 상트페테르부르크5일차

by 역마살아임더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뭐하지 하고 뒹굴 거리며 곰곰이 고민 했다. 예카테리나 궁전에서 돌아오며 내일은 페테르고프를 가봐야지 했는데 막상 일어나니 너무 귀찮았다. 전날 너무 싸돌아다녀서 그런걸까.
그래서 일단 아침 먹으면서 생각 해야지 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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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모스크바에서 봤던 유기농 제품을 팔던 슈퍼마켓의 체인점을 우연히 골목에서 발견해서 사온 코코넛 우유와 맛살 김밥으로 약 한달만에 아침에 밥을 먹어 감격했다. 밥을 먹으며 오늘 뭐하지 고민을 골똘히 하고 있는데 같은 방에 들어온 한국인 분이라고 소개하신 분이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눠본게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한참 떠들다 정신 차리니 어느새 같이 페테르고프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냥 생각 없이 여행하는 중이라 페테르고프 가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하자 택시와 배(?) 그리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구비구비 가는 방법이 있다 하셨는데, 택시를 둘이서만 타기엔 좀 부담인지라 숙소에 혹시 페테르고프 갈 사람 없는지 물어보았는데 없길래 그냥 둘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구비구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어쩌다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는 원래 러시아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다는 점이다.

블라디보스톡이라는 곳, 부동항이라는 명칭에 대해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배웠을때부터 한번쯤 꼭 가보고싶은 곳이어서, 블라디가 뜨기도 전에 갔다온 적 있다는 점이 너무 신기했다.


나도 똑같은 곳에서 끌렸지만, 실제로 가보진 않았으니.

그 용기에 감명 받았으니 다음엔 판공초 호수를 가볼까 싶었다.


재수할 때 가장 힘이 되었던 영화 세 얼간이에 나오던 곳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페테르고프에 도착했다.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01.jpg 오늘도 맑은 하늘!



페테르고프는 내가 유일하게 잘 알고 있는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왕녀인 아나스타샤가 태어났다고 하는 궁전인데다가 로마노프 왕조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어서 엄청나게 화려하다고 하던데, 입구에서부터 기겁했다.
이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엄청 넓은 이 정원이며, 궁궐에서 부터 길게 강까지 길이 늘어져있다고 한다.
그 규모와 넓이에 그저 둘이 우와-우와- 거렸었다.

아니, 이러니까 니네가 시민혁명으로 망하는거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베르사유도 엄청나다곤 하는데, 내가 베르사유를 가 본다면 그때 또 비교해 보겠지만, 일단 내가 본 유럽의 왕궁중 제일 큰건 확실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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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원은 무료로 개방 되어있는 곳인데, 여기만 매일 한바퀴씩 돌아본다 해도 살이 빠질 것 같더라.
정원을 한참을 가로질러 걸어걸어 궁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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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사진으로 찍으니 괜히 아련해 보인다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05.jpg 웅장하고 색감예쁘고 다 하던 페테르고프 건물


근데 의외로 귀염 뽀짝한 크기에 이게 다라고? 라고 생각 했는데, 뒷편으로 돌아가야지 매표소가 있다고 같이 가신 분이 알려주셨다 (편의상 동행인이라고 부르겠다!) 지금 글을 다시 쓰며 아나스타샤 영화를 봤더니 러시아 궁전들은 다들 저렇게 층이 낮고 옆으로 넓었다.


넓은 땅을 자랑하는건가.


그렇게 궁전 건물을 돌아가 마주한 것은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09.jpg 이게 엄청 광각으로 찍은겁니다 여러분.



한 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원이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더 놀라운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




입장 줄이 의외로 짧아보이길래 기웃거리며 줄을 서보니, 이곳의 입장 티켓도 사기 어렵게 되어있었다. 티켓의 양은 한정되어있고, 특정 정해둔 시간에만 입장할 수 있도록 되어있더라.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12.jpg 다들 참고하세요, 페테르고프의 입장 가능시간


저 시간에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티켓 수량이 다 팔리면 그 마저도 관람도 못한다고 하는 것 같았다. 우선 티켓 판매 시작한지 얼마 안된것 같으니 기다려보자 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앞 줄에 엄청난 자기애 소유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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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동행하신 분과 엄청 웃었다. 말하는걸 들어보니 홍콩쪽 애들인 것 같았는데, 본인 얼굴을 가방에 갖다 박을 생각은 어떻게한거지. 자기애가 뛰어나다 못해 과하다 싶더라. 적어도 아무도 가방 안훔쳐 가겠다 싶어서 웃겼다. 나는 여행하면서 내가 왜 자기애가 낮은지, 자존감이 낮은지 생각 해보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존감이 낮은 이유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 말로는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안사랑하는 것 같지. 라고 인식의 부조화가 일어나 혼란스러웠고 이런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보며 내 주변인들도 당황했었다.

쌍트 (39).jpg 이쯤 되니 내 시그니처라 우길 수 있는 하늘에 걸친 러시아 국기 사진


주변인들이 보는 나는 그 누구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데 갑자기 나는 자존감이 너무 낮아..... 그걸 찾으러 여행 갔다올께..! 하니. 그런 나도 내가 궁금했어서 여행 하는 내내 고민 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이 남자애를 보니 내 자기애와 자존감은 이런 애를 기준으로 하다보니 낮아보이는게 아닐까 싶었다.

저정도는 되어야 자존감이 있는거라는 생각을 내심 하고있었으니까.




홍콩 남자애를 보며 신기해 하는것과 별개로, 티켓은 우리 앞에 한 10명 정도를 남기고 판매가 끝났다고 문을 닫더라. 어이가 없어 벙쪄있는데, 다음 티켓 판매 시간까지 줄을 그냥 서있을것인지, 아니면 정원 구경이라도 할 것인지 동행인과 이야기 해보니, 여기까지 온거, 더럽게 화려하기로 유명하다는 페테르고프 정원까지 보고가야하지않겠냐고 먼저 말해주시더라. 그래서 정원 구경을 시작했다.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14.jpg 이 분수가 랜드마크..!




이 분수는 페테르고프의 랜드마크 같은거라고 하더니, 저 넓은 부지를 다 커버하는 크기에 압도되어버렸다. 한참을 걸어가서 궁궐과 분수를 같이 찍으려고 하는데 더럽게 넓은 정원을 걸어걸어가도 끝이 안나더라. 이 더럽게 긴 거리에 머릿속으로 니놈들이 이러니까 시민혁명으로 망하지...! 하고 생각 하고 있다가 동행인분을 돌아보니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었나보다. 내가 가만히 “이러니까 얘네가..” 라고 운을 떼자 “시민혁명으로...!” 라고 하셨다.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15.jpg 멀리서 보니 더 동화같은 페테르고프





덕분에 한국어로 웃어본게 얼마만인지 모를 만큼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분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다리가 나타나자 사진 찍는 사람들이 더럽게 많았지만 오늘은 같이 온 일행이 있어서인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어제와 같은 예카테리나 궁전이었으면 엄두도 못냈을 일.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16.jpg 신난 뒷모습이 보이시나요


서로 사진을 찍어준 후 어느새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배가 고프네요 하자 눈 앞에 매점이 나타났다. 대충 지나가다 보자 가격이 만만찮은 것을 보고 헉 하고 있는데 미리 페테르고프에 대해 찾아보고 오셨다며, 이 매점이 이 모든 페테르고프 부지에서 하나밖에 없는 매점이라고 하시더라.
어쩌겠는가..^_ㅠ 그래서 무시무시한 돈을 내고 핫도그를 사먹었다.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17.jpg 평범해 보이지만 이게 바로 2만원 짜리 핫도그



이 핫도그엔 또 슬픈 사연이 있는데, 그냥 핫도그만 사먹으면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은데 직원이 자꾸 할라피뇨 넣어? 머스타드 소스 넣어? 하며 물어보길래 나는 알러지가 있는 음식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 결국에 나온 값은 핫도그와 콜라까지 해서 약 2만원가량.

어마어마한 바가지....라고 하기엔 뭐한 값에 망연자실해 있는데 의외로 먹어보니 배가 불러서 용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뭐가됐든 배만 부르면 됐지. 어차피 이러려고 돈번건데.

비둘기를 피해 핫도그를 먹고 있는데 이 드넓은 정원 때문인지 갑자기 다람쥐가 나타나더라. 한국의 다람쥐는 사람을 보고는 도망을 가는데, 다람쥐와 지나가던 여자애가 앉아서 서로를 구경하는게 퍽 신기하더라.

이렇게 가만히 있는 다람쥐는 처음 봤다




밥을 먹고 난 다음 정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돌아다녔다. 꺾는 곳이 나타나면 꼭 한번 가보고, 뭔가 장식이 되어있는게 보이면 구경가고. 바람이 적당히 불고, 여름이지만 북유럽이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부는 페테르고프. 여름궁전이라는 별칭이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싶었다. 물론 이 궁전에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은 나처럼 편한 차림으로 돌아다니진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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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너무 넓어 돌아다니며 사진을찍어도 예쁘게 안나오더라




그렇게 구경하다보니 갑자기 바다가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바다에 벙쪄있는데 사람들이 많이들 돌아다니고 구경하고 놀고있더라. 그리고 예르미타주에서 출발한 쾌속선이 속속 도착하는 모습도 보이고. 쾌속선을 타고 와보고 싶었으나, 정보를 찾기 어려워 포기했으나, 다음엔 쾌속선을 타고 오고싶었다. 가급적 여름에. 이 넓은 바다를 쾌속선을 타고 건너오는 것도 기분 좋을 것 같았다.



바다 근방에 있는 바위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바다에 사람들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요일인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러시아 인들도 방문하는 공간이구나 싶어서 가만히 그들을 구경하게 되더라. 넓은 바다와 넓은 정원,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에나 있어도 수용 할 수 있는 규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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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에서 이렇게 본격 바다 구경하기 가능하기 있나요



더럽게 넓다 넓어. 지겹다 지겨워. 이래서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에서 울면서 정원을 달리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주인공을 찾는데 정원에서 길 잃었다고 하는게 용납되나보다 싶었다.

KakaoTalk_20200323_225427587_24.jpg 나도 이 궁전에서 살았을 왕족처럼 말 타고 달려가고싶을 정도로 길던 페테르고프로의 길



그렇게 다시 걸어걸어 궁전쪽으로 도착했다. 줄을 서자 의외로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다지 많이 기다리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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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카테리나 궁전에서도 눈에 닿는 곳곳이 다 황금이라 기겁했는데 여기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눈이 닿는 곳 마다 전부 와 대단하다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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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왕실 내부




예카테리나 궁전이 전반적으로 연회장!!! 이 연회장을 보아라! 해도 잘 들어오고 넓지!!! 이게 바로 러시아의 힘이다!! 하는걸 보여주는 궁전이라면, 페테르고프는 실제로 왕족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그들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였을지 보이는 궁전이었다. 곳곳에 그림이 많은것도, 눈이 닿는 곳이 다 황금인것도 예카테리나 궁전과 동일해보였지만, 다른 점이라면 페테르고프는 예카테리나보다 더 철저하게 관리 되어 있어서 그런지 관리가 더 잘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줄 서서 기다릴땐 이런 시스템 한국이라면 용납 안될 것 같아요 하고 웃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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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관한 전시품은 여기가 더 많았다!



개인적으로 궁전 구경을 시간이 많아서 둘 다 했지만, 시간 부족으로 둘 중 한 곳만 골라가야한다면 개인적으로 페테르고프를 더 가보라고 해 주고 싶다. 쾌속선을 타고 간다면 재밌을것 같은데다가, 이 오지게 넓은 공간을 한번 보는것 만으로도 러시아 왕조의 화려한 생활은 짐작이 충분히 가니까. 그리고 왕궁에서 실제 왕족을은 어떤 물건을 쓰고 어떤 옷을 입었을지, 어떤 연회실에서 놀았을지가 더 잘보이는건 페테르고프쪽이다.

그리고 예카테리나 여제의 초상화가 여기저기 붙어있는게 신기했다. 본인이름을 땄던 예카테리나에서도 몇 장 안보이던 초상화가 여기는 거의 모든 방에 걸려있는걸 보니, 이분도 자기애가 뛰어나신 분이었군 싶었다.
사람은 역시 자기애가 뛰어나야지 뭐든 한다는건가. 그럼 나도 날 더 사랑해야지. 일단 가방에 내 얼굴 좀 새겨봐야하나.....(?)


KakaoTalk_20200323_225447988_10.jpg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공작석 작품
쌍트 (25).jpg 페테르고프에서 내다 보는 핀란드만 전경



구경 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물론 백야라서 해가 지진 않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날이 흐리더라. 돌아갈 때도 여러번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했기에 조금 신경이 곤두서서 버스를 탔는데...버스에서 너무 귀여운 애기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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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눈 색깔이 너무 예쁜데 유아차를 잡은 엄마와 눈 색이 똑같았다. 이래서 서양소설에서, 해리포터에서 특히 해리를 본 사람들이 너의 눈은 릴리랑 똑같구나 하는구나 싶었다. 동양인의 눈은 누가 더 까맣느냐, 누가 더 명암이 짙은지에 대해 차이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서양인들은 눈동자 색이 다채로웠다. 특히 저 애기와 엄마를 보니 더 그게 와닿았다. 너무 똑닮은 눈동자. 신기했다. 그리고 눈동자가 너무 예뻤다.

KakaoTalk_20200323_225447988_14.jpg 저 제복 상당히 좋아해서요



그리고 또 신기한 점은 러시아에는 군인이 많다. 모병+징병제인것도 있지만, 그 외에도 군인인 애들이 많았다. 군사력이 만만찮은 애들이라 그런가?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는 해군이 보이고, 육군은 어디서나 잘 보이는 편이고, 어딜가나 보이는 군인에다가 각 해군, 육군, 공군별로 다른 군복을 보는 맛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 버스에서는 타서 어디로 가나요~? 하고 물어보고 탄데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용 버스카드가 되는지 안되는지 찍어보고 되는걸 확인하고 너무 신나하자 버스기사이신 할머니가 귀여워 하고는 내려야할때가 되자 내리라고도 알려주셨다.

KakaoTalk_20200323_225447988_15.jpg 그냥 평범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버스 안 풍경



러시아에서 본 또 다른 재밌는 점은 운전기사가 여성분이 많더라. 한국과는 다른 점들이었다. 물론 남자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많은 분들이 여성분이었다. 직업의 귀천은 없는거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제로 남성을 더 선호하는 분야가 많은 우리보다는 더 좋은 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KakaoTalk_20200323_225447988_16.jpg 진짜 예쁘던 노을



그렇게 동행인 분과 내려서 저녁 먹고 갈까요? 하며 저녁을 먹고 나오자 하늘이 내가 이제까지 본 하늘 중 제일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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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저런 색이 다있지. 여러가지 색깔 물감으로 마구 풀어놓은 것 같은 색감이었다. 연보라빛 구름에 마지막으로 지는 해가 비명을 지르듯 남긴 해무리가 구름에 색다른 색을 남기는 하늘이라니. 게다가 백야 덕분에 해가 늦게 졌다. 한국처럼 조금있다 지는 해가 아닌 정말 “뉘엿뉘엿’ 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천천히 지는 해에 맘껏 사진을 찍었다. 정신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걸었던 것 같다.



더럽게 예쁜 하늘과, 더럽게 예뻤던 궁전. 그리고 갑자기 만난 사람과의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
오늘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너무나도 예뻐서 황홀할 정도였다.

이런 영상 한번쯤 찍어보고 싶어서요



이 감정을 바로 글로 옮기고 싶어 숙소에 들어가자, 열한시가 다 된 시간이라 그런지 부엌에 사람들이 없어 잘 준비를 다 한 후 노트와 펜을 들고 부엌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아침에 페테르고프로 가기 위해 물어봤던 사람중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페테르고프를 잘 다녀왔느냐고. 그래서 한참을 대화 하는데 너무 재밌었다.
한달 되는 정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 혼자 여행해서 누군가와 떠드는 시간이 너무 좋았나보다.
그렇게 한참 떠들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내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중성적이라 그럭저럭 마음에 들고 애정을 갖고 있지만, 10대땐 내 이름은 왜이리 안예쁠까 하며 생각했지만, 막상 해외에 나와보니 내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쉬워하는 이름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인 이름 중에 많은 연, 경, 은, 정, 윤 등, 많은 한국어 이름들은 외국인에겐 발음하기 어렵지만, 내 이름은 두 글자 모두 발음하기도 쉽고, 모든 철자를 다 합쳐도 다섯 글자가 안되더라. 그래서인지 내 이름이 갑자기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고 갑자기 내가 더 좋아지더라.


역시, 누군가를 갑자기 만나면 악연이던지, 엄청난 필연이던지. 라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한 구절이 생각나는 하늘과 하루의 끝맺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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