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나만빼고 파티였던 러시아의 날

12-06-19 상트페테르부르크 6일차

by 역마살아임더

아침에 일어나니 이상하게 몸이 더럽게 무거웠다.

왜 그런날 있지않은가. 몸이 더럽게 무거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이상하게 기운이 없어 방에서 기어나갔더니 호스텔 직원이 나에게 오늘은 러시아의 날이야! 하면서 말해주었다.

컨디션이 안좋아 “그게 뭔데..?” 라고 물어볼 생각도 안들어 그냥 “축하해!”라고 해주었는데 그게 맞는 대답이었는지 오늘은 축제라고 알려주더니 나갔다.


무슨 상관이지 하고 생각하며 아침으로 간단하게 코코넛 워터를 마시는데 러시아의 날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러시아로 독립한 날이라고 하더라.

독립기념일 같은건가... 하고 안일한 생각을 하며 오늘은 몸이 이상하게 무거우니 그냥 근처 카페나 가야겠다 하고 집을 나섰다.


KakaoTalk_20200325_002914400_02.jpg 대로변을 막 걸어다녀! 이게 얼마나 차가 많은 길인데!

그냥 발 닿는대로 걸어다니려 했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모두 들떠 공기자체가 들떠있는게 느껴졌다.

뭐야 이사람들, 오늘 무슨날인데. 신나있는 사람들을 스치며 발이 닿는대로 걷자 알렉산드롭스키 공원의 해군탑이 보였다. 들어가볼까 했는데 문이 닫혀있는걸 보고 아 오늘 국경일이지 싶어 조금 더 걸어가니 예르미타주 미술관이 나오길래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도 접었다.


KakaoTalk_20200325_002914400.jpg 반-짝☆


내일은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 딱 하루지만 에어비앤비에서 묵을 생각이었기에, 에어비앤비 숙소 근처를 한번 기웃거려 보고는 아무데나 카페에 들어가야지 싶어 두리번 거리다가 러시아의 날을 축하하는 무리와 딱 마주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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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 뭐라고 하더라..가두행진..?

이 대로가 엄청 넓었는데 가로막고 사람들이 다 뛰어나와 이렇게 행진을 구경하는게 신기했다. 롯데월드에서나 보던 퍼레이드가 길에서 펼쳐지다니. 사실 난 한국에서도 무슨 날의 행사나, 삼일절 행사 등도 잘 안가본 것 같은데, 여기서 남의 나라 행사를 다 구경하네.



한참을 서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가 바람이 의외로 강하게 불어 싸늘해지길래 자리를 피했다. 자리를 피해 걷자 사람들이 행진을 구경하느라 온통 비어있는 도로가 눈에 띄였다.


KakaoTalk_20200325_002914400_01.jpg 이렇게 텅 빌 일인가요 차도라서 그런거 아님!


이런 대낮에 사람도 없고, 차도에 차도없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니. 이런거 본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그냥 발 닿는대로 걸어다니는데 이상하게 계속 피곤하길래 아무곳이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부쉐라고 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름 유명한 체인점이었다.


KakaoTalk_20200325_002914400_04.jpg 여행하는 분들이 많이 찾더라구요 부쉐!


커피를 못마시기에 핫초코, 그리고 타르트와 토마토치즈크레이프를 시킨 후 다이어리 정리 겸 한참을 끄적거리고 있다보니 억울했다.


나는 45일간 여행하면 내 몸이 어느정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큰 몸이 안좋아진 이유가 스트레스였으니까. 그런데 내 몸은 여전히 더럽게 더럽게 약하고 부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3년간 내가 당한게 빨리 한달만에 좋아질거라 생각하는건 젊음의 오만이었을까.

앞으로는 더 내 몸을 사랑해주고 가꿔줘야겠다. 건강검진 결과로 알게된 점은 나는 아파도 아프다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내 몸은 썩어들어가도 아프다는 표현도 안했다. 전혀 아프지 않아서 놀라워하는 의사를 보고 나는 더 놀랐다. 내가 내 몸에게도 눈치 주고 있었던건가. 앞으로 나한텐 엄청 칭찬 많이 해주고 많이 사랑해줄테다. 기대해!


KakaoTalk_20200325_002914400_06.jpg 타르트 위에 마카다미아 듬뿍올라가서 맛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다짐한 후 카페에서 이제까지의 영수증과 입장권을 정리하다보니, 전에는 해외에서 길 물어보고 버스타는게 그렇게 무서웠던 나는 어느새 러시아에서 한국어로 길을 잘 물어보고 있었다. 전에는 여행 가기전에 그 나라의 대중교통 체계라거나, 내가 움직이려고 하는 여행지 가는 방법, 예약이 필요하다면 한국에서 예약하고 바우처도 챙겨오고, 그 나라 말 조금이라도 배워보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러시아에 온 지 3일 정도 됐을때, 시베리아횡단열차 티켓을 실물 티켓으로 바꾸면서 한국어로 해결한 이후로 나는 영어로 먼저 물어보고, 안통한다 싶으면 그냥 한국어로 물어봤다. 게다가 여행지도 당일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에 모스크바 갈만한 곳, 상트페테르부르크 갈만한 곳을 찾아보고 오! 싶으면 움직였다.

맛집은 아무데나 구글맵에서 근처에 평점 좋은 집, 혹은 트립어드바이저 어플에서 대충 예뻐보이는 가게.


이렇게 여행하게 된 계기는 아마 아무 계획 없이 대충 이렇게 하면 되나? 라고 생각하고 떠났던 지구 반대편의 쿠바 여행 부터 이게 되네! 라는 생각을 해서 그런것 같다. 이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여행하는게 통하는 것도 웃기고 내가 러시아에서 무작정 한국어 쓰는게 먹히듯 한국에 놀러오는 서양인들이 영어로만 소통하려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쌍트 (17).jpg 러시아의 날 길거리 사진


언어는 바벨탑이 무너지면서부터 생겼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 있었는데 한글이 그래서 더 대단한건가 싶다. 못알아듣는 말도 한국어로는 대충 어느정도 발음 할 수 있으니까. 한글 만세-!

그리고 영어가 자신있어 평소 영어로만 대학도 갔다고 자부할 정도로 영어를 잘 했지만, 어느새 직장생활을 하다 영어를 많이 까먹었다 생각했지만 의외로 여행 하며 내가 안 것은 내 원어, 한글에 비해서 많이 까먹었다 생각하며 걱정한거구나 싶어 뿌듯했다. 하기사, 한국인들은 평균 20년 이상을 영어 공부하느라 시간을 보낸다는데, 그걸 생각하면 몸에 박힌게 그리 쉽게 잊혀질까.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책 제목처럼,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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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시간 정도를 그렇게 노닥거리다 보니 그럭저럭 기운이 나는 것 같아 발이 닿는대로 이리저리 걸었다. 평소 걷던 넵스키 대로도 그냥 걷지 않고 길을 건너가 한 골목 안쪽으로 걸어들어가서 걷고,

그러다보니 상트의 다른 단면들도 많이 본 것 같다. 넵스키대로가 정말 번화한 길이구나 싶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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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기저기 걸어다보니 어느새 넵스키 대로가 끝이나, 상트에 처음 왔을 때 갔던 쇼핑몰이 나타나서 이제 내일 모레면 상트를 떠나니 쇼핑을 해볼까 하고 들어가서 이것저것 사왔다.

그 중에 두가지를 추천하고자 한다. 바로 보드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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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보드카, 러시아인들의 원픽!


특히 딸까 보드카를 추천하는데, 매일 저녁 러시아인들의 슈퍼에서 쇼핑하며 이들은 어떤 술을 마시는지 염탐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 보드카를 사가더라. 이르츠쿠츠, 모스크바, 상트까지 가보며 내린 결론이니 맛있으리라 장담한다. 게다가 뜯어서 실제로 먹어보니 왜 한병만 샀는지 억울해지는 맛이니, 이 보드카 한번 마셔보는것을 추천!


쇼핑 한 후 숙소로 돌아가려 하니 어느새 아홉시.

러시아에서 지낸지, 여행을 시작한지 어느새 한달이니 이정도 시간 낭비와 같은 날은 하루쯤은 있어도 좋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의 날도 축하하고, 러시아야.

한달동안 나를 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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