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19, 헬싱키 1일차
새벽 세시, 핀란드와 러시아 국경에 출국 심사, 입국 심사 거침을 전부 다 하니 이 시간이었다.
나처럼 러시아에서 핀란드로 버스를 타고 넘어간 사람들이 새벽 두세시쯤에 출국/입국 심사 때문에 버스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하길래, 회사 다니면서 맨날 밤 샜는데, 까이꺼 두세시쯤에 깨는게 뭐가 대수랴.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잊었었다.
더럽게 잠 못자는 나는, 자다가 한번 일어나면 다시는 잠을 자지 못했다는것을.
러시아 출국 할 때는 뭔가 딱딱한 분위기였던걸로 기억한다. 여권 사진이 안경 쓰지 않고 찍은거였는데 내가 안경을 쓰고 출국 심사 하러 가자 안경을 벗어보라고도 하더라. 깐깐하게 하는건 좋지만, 바로 10분 후 이뤄진 핀란드 입국 심사에서는 핀란드엔 뭐하러가니~? 핀란드는 처음이니? 하며 물어보길래 여행이고 처음이야! 라고 하자 오! 핀란드에서 좋은 여행해! 하고 보내주기까지 했다. 그게 처음 느낀 핀란드의 여유였다.
이번 여행으로 난 참 많은걸 느끼며 국경을 넘고, 대륙을 넘었다. 그리고 시차도 직접 몸으로 느끼며 넘어왔다. 핀란드와 러시아 사이의 국경을, 남의 나라와의 국경을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넘었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에도 언니와 함께 독일 - 오스트리아 - 체코를 기차타고 여행 한 적은 있지만, 그때는 자고 일어나면 오스트리아, 자고 일어나면 체코였고 짐 잃어버릴까 경계하며 다니느라 별 생각이 없었지만, 여러 생각을 담고 국경을 넘어다니자니 신기했다.
정말 땅바닥에는 어떤 금도 안 그어져 있기에 “땅”은 물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것이지만 “국경”은 눈에보이지 않으나 물리적인것이구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코치 스테이션에서 탔던 버스는 핀란드 헬싱키의 깜피에서 내린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에도 핀란드에 도착한 버스는 몇 번 사람들을 내려주었고, 그들이 내리는 인기척에 일어나던 나는 그냥 잠을 포기했다.
그냥 눈만 감고 있는 수준. 그러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도착했다.
원래는 일곱시 반에 도착 예정이라더니 도로에 차가 없어서 기사님이 씽씽 달렸나보다.
깜피 스테이션에 도착하여 사람들이 내리기에 따라 내리자 기사님이 내 캐리어를 꺼내주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 버린 탓에 당황스러워서 잠시 어떡하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단 러시아까지로 국제선도 있을 정도의 큰 터미널이니, 근방에 24시간인 뭔가라도 있겠지 싶어 터미널을 돌아다녔으나,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로.
한국이라면 이 시간에 문 연곳이 하나쯤은 있을텐데,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뭐 하나라도 있을텐데.
한국이 아니라 당장 옆나라 러시아에서도 24시간 하는 가게가 뭐라도 있었는데. 여긴 정말 아무것도없어 당황스러웠다. 그 당황감과는 또 별개로 너무 졸렸고, 새벽의 헬싱키는 너무 추웠다.
6월 중순이면 그래도 초여름일텐데 이정도로 추울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 바람막이에 후리스까지 입고 있었으나 너무 추워서 이가 딱딱 부딪혀댔다. 넓고 추운 버스 터미널에 아무데도 문 연 곳이 없어 당황 하다가 맥도날드를 발견하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사랑해요 맥도날-드!
그리고 가격 보고 참패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러시아에서는 루블을 쓰지만 핀란드에서는 유로를 쓴다. 그리고 러시아는 물가가 싼 편이지만 핀란드는, 유럽은, 특히 북유럽은 더 물가가 비싸다더라- 하는 말을 듣고는 왔지만, 실제로 더 무시무시한 물가에당황했다. 맥모닝 세트가 한국에서는 약 4천원 정돈데 여기는 맥모닝 세트에 감자튀김 하나 추가하니 팔천 오백원.
눈이 튀어나와 들어갈 생각을 안했다.
어쩔 수 없다. 북유럽에서는 최대한 밖에서 안먹는 수 밖엔.
대략 한시간 정도 그 자리에 앉아 있다보니 뭔가 다니는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고, 해도 어스름하니 뜨는 것 같길래 일어났다. 헬싱키와 스톡홀름에서는 에어비앤비에 묵기로 했고 헬싱키에서 묵을 숙소 주인에게 버스가 일찍 도착할 것 같아 조금 일찍 체크인 해도 되냐 이미 물어본 상태여서 열한시까지만 어떻게든 (?) 뻐기면 됐기에 우선 숙소 주변으로 이동해야지 하고 핸드폰으로 헬싱키의 지하철 이용권을 구매한 후 지하철을 탔다.
TMI) 핀란드에서는 지하철/트램 이용권을 핸드폰으로 간편하게 구입 할 수 있음!
일수 이용권도 파니, 여행 일자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 당시 시간이 아침 여덟시였는데 지하철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게 너무 신기했다.
오면서 찾아본 헬싱키 관련 여행 글에서 보니 깜피라는 곳이 버스터미널도 있고 기차역오 있는 꽤나 큰 번화가 인것 같았는데, 이 시간까지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니. 토요일이라 그런가.
지하철에서 내려 어디로 가나 찾아보니 이 시간에 문 연 카페가 있다길래 그리로 열심히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곳곳에 갈매기가 울고 있어 조용한 길거리에 갈매기 울음소리만 몰아쳐서 시끄러웠다.
바다도 안보이는데, 어디서 나타난 갈매기인거야.
그리고 러시아는 24시간 하는 가게들도 그렇게 많았는데 죄다 문을 닫은것도 신기하고, 주말이라지만 아무 가게도 문을 안연것도 너무 신기했다. 이게 바로 여유 넘치는 북유럽의 삶인가?
문 열었다는 카페까지 가기 위해 캐리어를 열심히 끌고 가는데 근처에 빈티지 샵이 많이 보이더라.
헬싱키에서는 빈티지 가게 구경하는것도 쏠쏠한 재미라던데,이렇게 동네에도 가게가 많이 보이니 너무 신날 따름. 하지만 문 연 곳이 없으니 일단 유리창 너머로만 구경 하기로 하곤,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 카페에서 헬싱키의 매력이 뭔지 깨달아버렸다.
이 가게는 아침 여덟시에 문을 열어 오후 네시에 닫는다. 그게 무슨 카페람. 엄청나게 맛있는뭔가를 파나? 할 수도 있지만, 주인은 너무나도 귀여우신 할머니, 따스한 색감이 일품인 이 카페와 (심지어 샌드위치는 직접 만드신거다!) 이 카페에 들어와 신문을 사가는 동네 사람들을 보면 이 가게가 동네 사람들에게 신문 판매처가 되어주는 그런....뭐랄까 북유럽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가게라고나 할까.
사실 아까 맥모닝을 먹어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막상 카페에 들어오니 꼬르륵 거리더라. 캐리어를 질질 끌고 오느라 힘들었나보다. 그래서 샌드위치 하나와 코코아를 시켜 허겁지겁 먹었다. 이 가게에 와서 메뉴를 주문할 땐 조금 당황했다. 영어같이 생겼는데 영어가 아닌 문자가 씌여있기에. 사실 나는 핀란드에 대해서 정말 아는 것이 한개도 없었다. 러시아에서 차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에 흥미가 생겨 시작한 북유럽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런 내게 핀란드는 그저 휘바휘바 자일리톨의 나라, 그리고 북유럽 가구~ 무민~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그런 내가 이들이 어떤 문자를 쓰는지 알 리가 없었다.
그나마 읽을 줄 아는 문자는 카카오 하나였고, 코코아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너무나도 따스한 이들의 일상이 나에게로 걸어들어왔다.
가게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다이어리를 끄적거리고 있자니 어느새 체크인 시간이 되었다. 신나게 컵과 그릇을 가져다 드린 후 숙소로 향했다.
분명히 지도로 볼때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내가 30kg의 캐리어와 함께라는걸 잊은 탓에 온몸에 땀이 줄줄 날 정도로 다 젖어버렸다. 이리저리 오르락 내리락, 울퉁불퉁한 길을 캐리어를 질질 끌고 가다보니 숙소에 가기 전에 죽겠다. 싶었다. 그런 나를 비웃듯 갈매기가 여기저기 비명을 지르며 다녔다. 갈매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나.
어찌어찌 숙소에 짐을 맡기고 난 후 숙소에서 나왔다.
사실 침대에 누워 한바탕 자고 싶었으나, 호스트가 남자라 괜히 내외 하기도 했고, 핀란드에서 머무는 날이 얼마 되지 않기에 그냥 관광을 하고 돌아와 기절한듯이 자야겠다가 나의 속셈이었다.
그렇게 헬싱키 여행을 시작했다.
내가 머문 숙소는 깜피에서 기찻길을 따라 주욱 올라가면 자그마한 오솔길이 나오고, 그 오솔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주택가에 있었다. 말로 하니 뭔가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 15분 정도를 걷는 1km의 거리.
그래서 늘 아침에 나갈 때엔 걸어가고, 숙소에 다시 돌아올 땐 퀵보드를 타고 돌아왔더랬다.
뭔가 헬싱키는 전반적으로 여유가 넘쳤다. 사람들도 여유가 넘치고, 공기 조차도 여유로웠다. 느리게 흐르는 공기, 헬싱키와 핀란드를 느끼며 오솔길에서 걸어나오니 다시 깜피였다. 아침에는 아무도 없고 사람도 없더라니 어느새 가게들이 다 문을 열었다. 근데 상트에 비해 사람들이 훨씬 적었고 다들 천천히 주변을 음미하듯 걸어다녔다.
상트가, 러시아가 열정넘치는 신입 느낌으로 이것저것 사람들도 바쁘다면, 헬싱키는 매우 여유 넘치는 일 잘하는 본부장 같은 느낌. 러시아에서는 사람들에게 함께 휩쓸려 나도 바쁘게 움직이게 됐지만 헬싱키에선 사람들이 여유로우니 나도 여유로워졌다.
한국이 8282의 나라라는데, 한국도 이런 여유로운 분위기가 갖춰진다면 어떠려나.
애초에 국가번호도 82인 나라라서 그건 어려우려나.
너무 여유로워 열정 가득한 러시아, 8282의 나라 한국을 겪다 온 나로써는 신기해 하며 발 닿는대로 걸어다니다 골목을 한번 꺾었더니 헬싱키 대성당이 보였다.
이렇게 빨리 헬싱키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를 마주하다니, 조금 갑작스럽군요.... 마치 모스크바 같았다. 의도한 건 아닌데 제일 유명한 관광지는 첫날 다 마주치고
대성당 구경을 할까 했는데 바로 관광을 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만큼 잠시 앉아서 쉴까 싶었다. 헬싱키 대성당 앞에는 많은 계단이 있었고, 헬싱키 대성당 건물 뒷편에서 나타난 나는 수많은 계단을 오를 필요 없이 그 꼭대기에 앉아 헬싱키를 굽어보았다.
마치 신이 된 기분이었다.
이곳이 성당 앞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전반적으로 높은 건물은 안보였다. 확실히 한국에 비해 높지 않은 건물들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다보니 훨씬 도시 전체가 시원시원해 보였다. 이렇게 도시 디자인 한것도 핀란드의 특색이려니 싶어 가만히 턱을 괴고 구경하다가 졸았다. 너무 졸리긴 했나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성당 내부로 들어갔는데, 정면에 보이는 성인들의 사진이 러시아와 매우 흡사해 보이기에 확실히 가까운 나라라서 그런지 영향을 받았는갑다 하는게 팍 느껴졌다.
그리고 내부에 금칠을 잔뜩한건 러시아와 다를 바 없지만, 러시아는 보아라! 이것이 금이다! 가 느껴지는 금칠이었다면, 헬싱키 대성당은 마치 한복에 금박이 입혀진 것 처럼 은은한 금칠이 되어있는 것이 달랐다.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빛나는게 더 신비로워 보이기도 하고.
내부 구경을 하고 나와 이리저리 그냥 발이 닿는대로 걸어다녔다. 헬싱키 대성당에서 직진하면 쇼핑몰이 가득한 에스플란디 거리가 나온다. 아무 쇼핑몰에나 들어가 보았는데, 쇼핑몰 내부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고 파는 소품들이 다 아기자기해서 통장이 털릴 것 같았다. 너무 졸릴 때 하는 쇼핑은 실수를 일으키기 쉬우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 채로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무사히 헬싱키까지 잘 온 기념 식사는 순록 고기 스테이크. 핀란드와 스웨덴은 모두 자기들이 순록고기 원조라고 우긴다고 한다더라. 핀란드와 스웨덴 모두 북유럽이다보니 순록이 잘 어울리는 나라이지만, 일단 핀란드에서 먼저 순록고기를 먹어보기로 하고 고른 “Lappi Ravintola”라는 레스토랑을 골랐다.
그나마 주변에 상트까지 가 본 사람은 있었어도 헬싱키와 스웨덴에 가 본 사람은 없어 아는게 아무것도 없던 나에게 남자친구가 찾아서 추천해 준 음식점으로 순록 스테이크가 궁금하니 꼭 맛을 리뷰해달라는 코멘트였다.
그리고 순록 스테이크에 대한 후기는....소고기 같았다. 음...굳이 비슷한 맛을 찾자면 전에 알바한 적 있는 “겐로쿠 우동”에서 파는 니쿠 우동 위에 올라가는 소고기의 맛? 근데 막 비슷하지도 않은 맛인게 전반적으로 비슷한 맛이지만 좀 더 짭쪼름 했다. 씹히는 질감도 매우 특이했다. 탱글하면서도 뽀득거리는 식감. 같이 곁들여 나오는 매쉬포테이토와 라즈베리 잼과 함께 먹으면 된다는 종업원의 말에 그대로 먹어보았는데 상당히 짜더라. 매우 짠 맛에 신기하지만, 두번 먹지는 않기로 다짐하고 가게를 나왔다. 드디어 일곱시니, 숙소에 돌아가야지.
숙소에 들어가서 바로 기절해서 자기 위한 속셈으로 숙소까지 트램을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이미 길에서 쓰러져 잘 수 있을 만큼 피곤했지만, 좀 더 나를 혹사 (?) 시키면서 헬싱키를 느끼기로 마음 먹고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걸었다.
진짜 디자인의 나라라고 하더니, 상가에 붙어있는 아파트 베란다를 밖에서 보니, 쇼룸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다가 저게 일반 가정집이라는걸 알았을때의 놀라움이란. 난 진짜 쇼룸인줄 알고 저거 어느 브랜드일까 한참 빤히 보고있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가에 딸린 아파트가 이렇게까지 예쁠일인가.
그리고 상트에서도 다소 덜컹거리던 트램이 여기서는 정말 스무스하게, 전기 자동차 같이 아무 소리 없이 움직이더라. 그것도 너무 신기했다. 신기한데다가 헬싱키랑 너무 잘 어울리는 초록색이라니.
아까 아침에 올라올 때엔 오솔길에 아무것도 없더라니, 이제 올라올 땐 카페도 보이더라.
이렇게 초록색이 잘 어울리는 도시, 그게 바로 헬싱키구나 싶어 초록의 푸릇함을 느끼며 숙소에 들어와 누웠다. 오후 여덟시였다. 눕자마자 정신없이 잠의 나락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