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그 누구보다 더 철저히 쉬는 북유럽

16-06-19 헬싱키 2일차

by 역마살아임더


역시 해가 쨍쨍


전날 정신없이 골아떨어졌다고 느꼈는데도 중간중간 깼다. 이곳이 더 위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백야현상이 더 심했다. 저녁 아홉시인데도 오후 두시마냥 환했다. 적어도 상트에서 아홉시면 해 지는 척이라도 했는데.

그래서 다소 잠을 설치고는 일어나니 호스트가 아침 인사를 했다. 오늘 어딜 갈꺼냐는 호스트의 질문에 음, 사실 어딜 갈지 안정하고 와서. 하며 눈을 굴리고 있다가 전날 숙소에 체크인 하기 전에 봤던 빈티지샵이 생각났고,플리마켓을 가볼까 한다고 하자 주변에 가볼만한 가게들을 알려주었다. 그의 조언덕분에 더 든든해진 후 숙소를 나왔다.


깔끔한 독신라이프를 즐기던 timo


그리고 이번엔 다른 길로 내려가볼까 싶어 걸어나오다가 마주쳤다.

백조와


진짜 왜 니가 거기서 나와?


사실은 멀리서 보고 에이 설마 했는데 가까이 오니 진짜 백조였다.

니가 진짜 여기서 왜 나와.


이 백조를 보고 나만 신기한게 아니었는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사진을 찍고 난리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다들 안전거리 (?) 는 유지하고 있던것?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서서 백조 주변에서 다들 물러서자고 주장했다. 백조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스트레스 받아하는 것 같다고. 이렇게까지 동물 인권 (?)에 예민하다니. 스윗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플리마켓이나 가게 구경하기에는 디자인 지구에 가는게 좋을거라는 추천에 디자인지구로 넘어가기 위해 깜삐를 지나가다 깜삐 예배당을 발견했다. 깜삐를 자꾸 말하니 깜삐탈트붕괴가 오는것 같지만, 이 예배당은 침묵의 예배당이라길래 엄청 조용한가 싶어서 들어가보기로 했다. 이 근방이 엄청 시끄러운데, 이 시끄러운 한복판에 있는 예배당이라니. 게다가 이름부터가 조용한 예배당이라고 하니 궁금해서.



막 엄청 고요하진 않았지만, 시끄러운 곳에 있던걸 감안하면 나름 고요하여 신기했다.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문이 엄청 두꺼웠고, 천장은 높았다. 내가 여행하며 본 예배당, 종교 공간은 모두 엄청 홀리 감성을 가진 곳인데 이렇게 쌈빡한 디자인의 공간을 마주하니 이것 나름대로 또 신기했다. 누구라도 기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곳이 있다면, 이런 곳도 있구나 싶은?



잠시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나와 디자인 지구로 걸어가고 있는데 출출해지길래 샌드위치 집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사들고 근처 공원 벤치에 주저 앉아서 먹고 있는데, 갈매기가 와서 나를 염탐하더라.



전에 헬싱키에 놀러온 아이돌이 갈매기에게 방금 산 아이스크림을 강탈 당하는 클립을 본 적 있기에 예민하게 갈매기를 노려보았다. 내가 하도 노려보고 있어서 그런지, 갈매기는 나를 멀리서만 관찰하고 있었다.

보란듯이 샌드위치를 먹고 일어나 디자인 지구를 향해 걸었다.


지나가다 본, 봄느낌 나는 자동차의 풍경 (실제론 초여름)


디자인 지구에 도착하고 조금 당황했다.

예뻐서도 있지만, 문 연 가게가 아무곳도 없어서. 가게들은 많은데 가는 곳 마다 다 문을 닫았더라. 왜지? 싶어 여기 저기 둘러보다 겨우겨우 문 연 카페 겸 빈티지 가게를 발견해 아이쇼핑을 시작했다. 이상하게 빈티지샵은 가격이 메리트라 그런가 뭐라도 사고싶어지는 어마무시한 매력이 있지만, 이 곳에서는 다행히 건질 것이 없어 다시 돌아나왔다. 그리고 아무리 가게들을 걸어다녀도 문 연 곳이 없더라.

몇 몇 한국의 블로그에 소개된 카페나 음식점을 찾아가도...


한국인들에게 유명하다는 카페지만, 문닫았네요...


이렇게 다들 문을 닫았더라. 왜지. 왜지.를 끊임없이 되뇌이는 나에게 남자친구가 그랬다. 일요일이라 그런거 아냐?


엥? 설마. 휴일에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하는거 아냐? 라고 반문하는 나에게 유럽으로 출장 갔을 때 자기가 신기하게 생각한게 휴일이 되면 사람들이 가게 문을 안열고, 열더라도 일찍 닫는거였다고 경험담을 말해주더라. 아마도 관광지 주변에 있는 곳 외에는 일찍 닫거나 안열었을 거라고. 아 그런건가 하고 납득이 가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다. 디자인 지구도 관광지 아닌가요? ㅠㅠㅠ 바로 옆 나라인 러시아보다 더 심한 공산주의 인것 같은데요....오히려 러시아가 더 자본주의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아닌가, 내가 너무 8282의 민족이자, 자본주의 국가에서 와서 그런가. 골돌히 생각 해 보니 가게의 종업원들도 휴일엔 쉴 권리가 있는건데 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가면서도, 핀란드에서 며칠 안 있는 나에겐 이 시간들이 너무 아쉬웠다.



이래서 사람들이 핀란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는걸까. 절대적인 휴식의 양이 다르다. 행복은 휴식과 자신을 돌아보면서 시작하는걸까. 과연 행복이라는 말은 누가 먼저 시작하고 만들어낸걸까. 그게 과연 측정 가능한 수치일까 싶었다.




문닫은 디자인지구를 비롯한 헬싱키 시내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몇몇 빈티지 가게들을 구경하며 헤집고 다니다 한국인에게 유명하다는 너티버거가 문 연것을 발견했다. 이 지루한 주말에 갇혀있다가 갑자기 맛집을 찾자 너무 반갑게 들어가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너티버거....너티하지않군요


그리고 난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인이 많이 간다는 수제버거집이랑은 안맞나보다 싶었다. 댑버거에 이어 너티버거까지도 그냥그냥 그런 맛이라니. 그래도 한끼를 해결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일곱시가 되었길래 디자인 지구에서 벗어나 센트럴마켓 쪽으로 걸어왔다.



센트럴마켓으로 걸어와 바다를 멀리 바라보니, 왜 이곳 저곳에 갈매기가 많은지도 알 것 같았다. 자연친화 도시라서 그런거였나보다. 이 바다를 시작으로 해안 라인을 따라가면 어제 구경했던 에스플란디 거리도 나오고, 반대방향으로 가면 스톡홀름과 탈린으로 가는 크루즈를 탈 수 있는 항구도 나오고. 바다를 바탕으로 한 자연친화도시, 그래서 녹색이 잘 어울리는 헬싱키였다.



어느새 여덟시가 되니 더 구경할 거리가 없겠다 싶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로 전동 퀵보드를 타고!

러시아에서도 느꼈지만 유럽 사람들이 전동퀵보드, 퀵보드, 보드를 엄청 타고 다니더라. 이들이 전동 퀵보드로 보여주는 자유로움이 부럽고, 한국에서도 전동퀵보드를 오래 타고 다닌 드라이버 (?)로써, 어디 헬싱키에서도 한번 타고 다닐까 싶어서 어플을 다운받고, 가입하여 첫 주행을 시작했다.


소방차는 멈추지 않아 Voi-!


전동 퀵보드를 타니 시내에서 숙소까지 10분 남짓으로 걸렸다. 한국의 공유퀵보드도 그러하듯, 아무데나 세워두면 필요한 누군가가 또 다시 잠금 해제 하고 타는 방식이었으므로, 주차에 걱정없이 숙소 건물 근처에 세워둔 후 숙소로 들어갔다. 호스트가 오늘은 어땠냐고 물어보았고, 오늘이 주말이라 가게들이 많이 닫아져있는거냐라고묻자 응, 오늘 일요일이잖아. 라며 그런걸 묻는 나를 오히려 신기하게 바라봤다.


한국에서는, 러시아에서는 주말이 오히려 더 가게들이 열심히 장사한다, 근데 내가 핀란드는 아니라는걸 몰랐어서 그런지 신기하더라 라고 말하자 주말에 오히려 문을 연다고? 아 다른 나라들은 그런다더라. 라고 짧게 공감해 주었다. 그 반응을 보니 이 사람들에게는 주말에 일 하는게 더 신기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세수하고 씻고 나오니 호스트가 말을 걸었다. 그가 어쩌다 이 시기에 여행을 하냐 물어보았다. 퇴사해서. 라고 말하고는 힘들어서 그만뒀다 등등의 이야기 후, 지금은 어쨌든 여행을 즐기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자 그는 혼자 이렇게 멀리까지 비행기 타지않고 여행하는게 신기하고 응원하고 싶다며 이럴때 너를 위한 단어가 있다며 “Funemployed”라는 말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현재를 즐기는 백수의 삶이라고.

음, 정말이지 딱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좋은 말 고마워. 라고 말 해주자 뭘, 니 여행에 대해 더 이야기 해줘. 라며 유럽인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호스트의 성격 처럼 깔끔한 숙소


혼자 살면서 상당히 많은 본인만의 규칙을 만들고 지키며, 예상되는 걱정을 미리 대비하는 그는 참 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에어비앤비를 하는게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대화가 필요해서일까. 왠지 모르게 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