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핀란드출신 갈매기의 싸대기가 아주 찰지구나

18-06-19, 헬싱키 4일차

by 역마살아임더

남들은 해가 안져서 일찍 일어날지 모르지만, 나는 해가 안지는거에 익숙해져 오히려 더 늦잠 자게 되더라. 아닌가, 그냥 내가 늦잠을 자는건가.


전날 수영장에서 찰박찰박 거린 덕분인지 평소보다도 더 늦게 일어났다. 토미가 가는 것도 못보고 정신없이 기절. 게다가 일어나서 뭐하지 하며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다가 내가 여기서 푹 자는게 혹시 베개 덕인가 싶어 베갯잇을 벗겨 브랜드를 확인하고 검색하니 핀란드 브랜드라고 했다. “Joutsen” 이라는 브랜드로, 백조의 털로 만들어서 유명하다고 했다. 백조라니, 흥미가 생겨 쇼핑하러 가야지! 하고는 몸을 일으켜 나왔다.


가만 읽어보다 엄청 웃고 지나간 입간판


전날 활짝 문 연 가게들을 돌아다니다 드는 생각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여유가 넘쳐서 그런지 가게 앞에 내놓는 입간판 마저도 재치가 넘친다. 한국이나, 바로 옆나라 러시아에서는 정신없이 할인 항목에 대해 말 하는데, 여기는 나름 묵직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뭔가, 무뚝뚝한건 비슷하지만 조금 더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들같달가.



전날 집에 갈 때는 또 나름 구름이 껴서 흐릿하더니 아침이 되자 해가 너무도 쨍하고, 오늘도 헬싱키는 푸릇푸릇합니다! 할 수 있을 만큼 파랬다. 하지만, 바람이 엄청 불었다. 바다가 인접한 도시라 그런건지, 아니면 북유럽은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건진 모르겠더라. 아마 후자인것 같기도 하다. 상트에서도 바람이 장난아니라는 생각은 몇번이나 했었던 걸 생각 해 보면.


바람이 휭휭불던 헬싱키







헬싱키에 있는 Joutsen 매장은 에스플란디 거리 근처에 있는데, 이 곳을 찾아가다 꺾은 클루비? 라는 길거리에서 헬싱키의 유명한 햄버거 가게를 발견하자, 나도 모르게 홀린듯 매장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맛있게 먹은건 죄가 아니니까!


근데 일요일에 먹었던 너티버거보다는 훨씬 맛있었다. 너티버거는 뭔가 빵과 야채가 따로노는데, 야채가 너무 싱싱해서 밭으로 다시 돌려보내줘야할것 같은 섞이지 않음이었다. 그것 보다는 프렌즈버거가 더 낫다고 추천하고 싶다!




햄버거를 먹고 불러진 배를 두드리며 매장을 들어가니, 매장이 전반적으로 포근해서 좋았지만, 백조털이라 그런지 가격은 포근하지않았다. 가격에 놀란 마음, 잠시 둘러보다 이런 리빙용품, 침실 용품을 보고 가격이 너무 높을땐 엄마지! 하고 한국의 엄마에게 연락하자, 엄마는 그 나라에서만 살 수 있는 브랜드라면 사는게 좋다는 어른으로써의 명답을 내려주셨고, 그렇게 내 손에 베개가 들어오게 되었다.


제 방에서 밤을 책임 지고 계십니다.



이 베게로 말할것 같으면, 정말 너-무 푹신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다만 내가 산 사이즈가 가장 작은 사이즈라 그런지 한국에선 베갯잇을 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말 베개 하나만큼은 최고급 호텔 침구 느낌이 나므로, 뭔가 핀란드에서만 살 수 있는것! 을 원하면 해당 브랜드를 추천한다. 혹시 겨울에 가서 몰아치는 북유럽 바람에 피부가 찢겨지겠다 싶으면ㄴ 디자인은 좀 구리지만 (이게 유행일 수도) 패딩 사는걸 추천한다. 진짜 최고급 백조털로만 쓴다고 하더라.



손목에 베개를 달랑거리며 들고 센트럴 마켓으로 향했다. 헬싱키의 센트럴마켓에서는 해산물, 농산물을 싸게 파는데다가 플리마켓처럼 이것저것 잡다하게 수공예품도 팔길래 구경하기 딱 좋다. 그리고 일반 기념품 가게보다 훨씬 싸게 팔고. 이것저것 돌아다니며 지인들에게 줄 키링을 산 후 별 생각없이 악세사리 파는 사람에게서 그가 파는 물건들을 보다 너~무 마음에 쏙 드는 귀걸이를 발견했고, 바로 쿨거래(?)를 시도하여 팔찌를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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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은, 지금 이 글을 쓰는 2020년, 출근하며 귀걸이 해야지 하고는 주머니에 넣었다가 그대로 잃어버렸다고 한다.





센트럴 마켓을 시작으로 주변 상가들을 전부 기웃기웃 거리다 보니 어느새 또 에스플란디 광장이었다. 이날 에스플란디 광장에서는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길래, 오늘은 갈매기들이 음식을 안채가나? 하는 생각과, 내가 앉아서 햇빛 바라기를 하던 자리 바로 앞에 있는 친구들끼리 온 무리가 도시락을 꺼내 먹는걸 보고 용기가 생겼다.


가던 길에 만난 귀여운 간판


그래서 근처 슈퍼로 가서 얼른 샌드위치를 사왔는데...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근처에 보이는 피크닉이라는 샌드위치 집에 가서 내가 먹고싶은 야채를 양껏, 속재료도 양껏 넣어 온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나 때문이었을까?

갈매기들이 샌드위치를 꺼내자마자 미친듯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에게 샌드위치를 맡겨놓은 양.



너네 말해봐 왜그랬어



그 과정에서 한 갈매기가 내 뺨을 몸통박치기로 거하게 치고는 내 샌드위치 봉투를 낚아채갔다.


어이가 없어 갈매기에게 맞은 뺨을 문지르고 있자니, 다른 음식 빼앗긴 사람들이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서로를 보고 있었다. 웃음이 났다. 나 역시도 웃음이 나는 한편 저놈들을 다 튀겨먹어버릴까부다 라는 생각도 들더라.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도 살기 위해 사람의 음식을 뺏어먹는것일텐데.


사람음식 먹으면 간이 되어있어, 그들의 몸에 더 안좋을 수도 있는데....라고 괜찮다 괜찮다 말하지만, 심장은 정신없이 두쿵두쿵 거렸다. 내가....살면서.....여행하면서 처음으로 싸대기를 맞아봤는데...그게 갈매기에게 맞은것 일 줄이야....





그 와중에 누워 책 보던 사람, 리스펙


씨익씨익 거리며 오늘은 여기서 하루 마무리 하고, 내일이면 스웨덴으로 떠나니 짐을 챙겨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갈매기가 치고 간거라 그런진 몰라도 볼이 화끈거리고 지나갈 때마다 상상했던 핀란드의 여유 넘치는 저녁~


은 없어졌다. 그냥 집에 가서 맛있는 거나 먹으며 짐을 싸야겠다 싶었다.


집 가는 길에도 푸르던 헬싱키


숙소에 가는 길에 핀란드는 자일리톨이 유명하니까, 하고 들른 슈퍼에서 자일리톨껌을 그냥 잡히는대로 마구 샀다. 유명하다길래 먹어봤을 뿐인데 롯데에서 파는 그 자일리톨과는 현저히 다른 맛에 신기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나눠주자, 엄마가 엄청난 팬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익사이팅 베짱이 님







숙소에 돌아오자 토미가 오늘 하루는 어땠니? 라고 물었다. 갈매기가 내 얼굴을 쳤어. 근데 나만 화내더라...ㅎ 헬싱키 사람들은 갈매기에 관대한것 같아.


라고 말하자 토미는 마구 웃었다. 웃으며 어디서 그랬냐는 말에 에스플란디 거리에서 샌드위치를 먹다 그랬다고 답하자 토미는 거기서 먹으면 갈매기 밥으로 주기 딱이지 라며 마저 껄껄 거렸다. 심지어 뺨을 쳤다니까! 라고 투덜거리자 그래 너 얼굴이 빨가니 얼른 씻으렴. 걔네가 깔끔한 애들은 아니야 라고 말했다. 역시, 괜히 기분탓이 아니었다니까.



토미의 충고를 받아들여 호다닥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널부러뜨렸던 짐들과, 러시아에서 산 술, 핀란드에서 산 물건들을 캐리어와 더플백에 나눠담으며 자리 배치를 시작했다. 핀란드에서 빈티지 샵에 들러서 그런진 몰라도 캐리어가 조만간 넘칠 것 같았다. 힘겹게 닫고 땀을 닦으니 어느새 열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다못해 눈이 부신 창밖을 바라보니 내가 러시아에서 마주했던 백야는 “그냥 해가 좀 늦게 지는 정도” 구나 싶을 정도였다. 밤 10시의 해가 아니다 이것은. 오후 네시의 그 뭉근한 그것이다.


버릴 생각으로 내놨던 반정도 남은 소주를 버리기 아까우니까~ 라는 핑계로 호로록 마시며 과자를 먹자니 열이 달아올랐고 잠이 왔다. 침대에 누워 백조 베개에 머리를 댄 후 창밖을 가만 쳐다보았다. 살면서 이렇게 해가 안 지는것은 처음 본다. 내가 굳이 이 풍경을 보러 오지않는 한, 나는 이 백야를 더 볼 순 없겠지. 일년 중 일정 기간은 이런 백야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 그래서인지 다들 느긋하게 사는 삶. 휴일이면 그 누구보다 철저히 쉬는 삶, 저녁 아홉시만 되어도 길거리가 조용해져 버려진 도시처럼 고요해지는 삶. 그런 삶은 확실히 한국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낯선 그것이었다.


이렇게 지지 않는 해를 보며 신기해 하고, 그들의 쉴 권리를 누구보다 열렬히 주장하며 쉬고, 퇴근 후엔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어색해 하는 나는 이 북유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고 국가번호도 82인 빨리빨리의 사람이겠지.

기나긴 햇빛이 아낌없이 들어오던 에어비앤비 내 방 침대에서 어느새 바삭해진 이불을 끌어당겨 덮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네들과 다른 생활 패턴을 가져서인가, 나는 이들을 관찰하는게 너무 즐겁다.

역시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관찰하고 그들 마음을 비집는 일이 즐겁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나의 성격, 취향, 선호 인 것 같으니 남은 백수 기간 동안은 이걸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걸로 먹고 살아야지.

누가 알았겠어, 내가 사람 관찰하는걸로 밥 벌어먹고 살겠다고 할 줄은.

그런 생각에 핀란드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었다.

잠들었다 새벽 세시에 깼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