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꼬리칸에서 크루즈로 레벨업

19-06-19 헬싱키 5일차

by 역마살아임더

헬싱키 마지막날. 티모는 내 뒷 게스트가 내일 모레나 오니, 편한 시간에 방을 비워도 좋다고 말해줬고, 덕분에 실컷 자고 일어나 마지막으로 헬싱키 키위를 까먹은 후 숙소를 정리하고 나왔다.


KakaoTalk_20200420_111813707_01.jpg 헬싱키 과일도 맛났답니다


저녁 6시 크루즈로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떠나니, 미리 크루즈 터미널에 짐을 갖다 두고싶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트램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타는 트램


러시아에서 탔던것들과는 확실히 소리 없이 도심을 가로지르는게 매우 좋았다. 가격은 그렇지 않았지만.

헬싱키에선 버스도 안타고 걸어다니거나 퀵보드만 타고 다녀서 그런지 트램으로 쾌적하게 이동하고 있자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새로웠다. 다만 이 풍경을 마냥 감상할 수 없게 만드는건 내 무거운 짐. 어느새 한달이나 여행을 하다보니 평소에 잘 끌고다녔던 캐리어는 너무 무거워서 이게 바로 짐이다 싶을 만큼 나를 압박했다. 티모네 집을 지나쳐 조금만 걸으면 트램 정류장이 나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택시를 부른 후 어마무시하게 나온 택시값에 덜덜 떨었을지도 모른다.


KakaoTalk_20200420_111813707_02.jpg 어딘가 브루클린 느낌도 나고.


크루즈 터미널 부근은 크루즈 터미널이 있어서 그런건지 상당히 삭막해보였다. 어떻게 보면 뉴욕의 브루클린 같아 보이면서도 또 뭔가 곳곳에 보이는 고급져 보이는 레스토랑이 있어 부촌이구나 싶게 해주는 매력..? 크루즈 터미널 때문인지 바다도 널찍널찍하게 보이는게 신기한 동네였다.

뭔가 미국 부촌같은 느낌에 어디선가 엄청 큰 개를 끌고 사람들이 산책할 것 같은 느낌. 물론 헬싱키 사람들이 그렇게 활동적인것도 상상은 안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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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 덕분에 크루즈 터미널에 쾌적하게 도착하여 짐을 맡기고, 크루즈 티켓을 미리 받고 나니 뭘 해야할지 막막했다.

느꼈을지 모르지만, 나는 헬싱키가 상당히 지루했다. 관광지로 내세울 곳은 헬싱키에 도착한 첫날 이미 다 보았고, 내가 너무 정보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티모에게 물어보아도 볼 곳은 다봤다고 했다. 자연을 좋아하면 수오멘린나 섬에 가보는건 어때? 정도로밖에 추천할 것이 없었다. 물론 내 질문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헬싱키 주민이 볼만한건 다 봤네 라고 할 정도면 뭐....

그렇다면 어쩌겠는가, 일단 내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느끼고싶은 곳을 가야지. 하고는 다시 센트럴 마켓에 돌아와 센트럴 마켓을 한바퀴 돌고,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그리고 가장 재밌었던 디자인 지구로 걸어가다가 길을 잃었다. 그래서 빈티지샵이라 적힌 곳을 들어가니, 이제까지 봤던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빈티지 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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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싶었던건 빈티지 의류지만, 이렇게 빈티지 소품이 많은 곳을 오니, 소품에 큰 관심 없는 나라도 눈이 돌아가더라. 아마도 빈티지나, 이런 유럽 감성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엄청 좋아할 것 같았다. 책, 가구, 식기 등등 없는것이 없었다. 그래서 뭔가 하나 건져볼까 했지만......무민 컵 하나도 어마무시한 가격을 뽐내기에, 빈티지라고 해서 싼게 아니구나! 라는걸 몸소 느끼고 나왔다.

예쁜 접시도 많았지만, 도통 접시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써, 그리고 여기가 여행의 끝이 아닌지라 캐리어가 구를 수도 있는 일이고 (무거워서)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


내 기억에 무민 컵 하나에 200유로였던걸로 기억 하기에, 그냥 두고만 나왔다.

그렇게 거리를 나오니 어느새 한시. 빈티지샵 바로 코앞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먹고는 그냥 무작정 걸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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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는 전반적으로 나에게 크게 기억에 남을 것이 없는 나라였었다. 혹시나 겨울에 와서 오로라를 본다면 모를까, 그다지 큰 기억은 없는 것 같은것이, 내가 잘 못돌아다녀서도 아니고, 그저 볼 거리가 없는 나라였다. 친구중 한 명이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헬싱키에서 노년을 보내고싶다고 했는데, 노년을 보내려는 목적에는 맞지만, 뭔가 관광을 위한 도시로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돌아다닐 곳을 안찾아보고 왔다 하기엔 헬싱키 시민도 그다지 추천하는 곳이 많이 없어 그냥 정말 사람만 구경하고 다녔다. 킥보드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도 크게 기억에 남는 곳이 없는 나라. 그곳이 핀란드, 헬싱키였다.


핀란드 (3).jpg 마지막으로 구경한 헬싱키


다만, 그래서 얻은 것도 있었다. 여유였다.

어딜 가더라도 풍경이 단조롭다. 평소에 옷 입는 것도 편안한 것을 즐겨입고 무채색 옷을 즐겨입던 나에게 이곳은 나의 가치관과는 어울리는 곳 이었다.

그리고 빈티지샵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네들의 빈티지에 대한 사랑이 어떻냐면, 공터가 보이면 플리마켓이 열린다. 그네들의 물건을 가지고.

그렇게 공유 경제 (?)를 활성화 시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뭐 그 외에도 헬싱키에 대해 기억에 남는게 없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 자체가 나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남긴 국가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더럽게 해가 안지는 것을 보고 다음에는 꼭 오로라를 보러 오고싶어졌다. 이렇게 위도가 높다면 필시 핀란드 어딘가에서는 오로라를 볼 수 있으리라.

다음번 여행에는 꼭 겨울에 놀러와야지. 겨울 시베리아 횡단열차, 겨울 바이칼호수, 겨울 오로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야겠다. 싶었다.






어느새 시간이 네시 반이었다. 크루즈가 떠나는 시간은 여섯시였으나, 국가를 넘어가는 것 이기에 사람들도 많고, 가기 전에 간이 심사를 거쳐야한다고 하여 최소한 한시간 전에는 가야겠다 싶었던 참이었다.

크루즈 터미널로 출발하기위해 킥보드를 타고 헬싱키 시내에서 멀어지며 연신 뒤를 돌아봤다.

안녕, 살면서 처음 본 여유의 도시.


KakaoTalk_20200420_111813707_10.jpg 이 종이딱지가 방 키이자 아침식사 티켓!


배에 오른 후 뭔가 타이타닉이 생각나 짐을 내려놓자 마자 바로 갑판에 올라갔다.

타이타닉에서 타이타닉이 떠나자 잭은 배웅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가 출발하는 장면이 있어, 뭔가 나도 그렇게 해보고싶단 생각이 들어 후다닥 방을 뛰쳐나와 갑판으로 향했다.


그러나 내가 막상 올라오자 마주친 것은


KakaoTalk_20200420_111813707_11.jpg 발틱해는....바다가....애매한 빛이구나?


그냥 바다였다.


내 상상처럼 사람들이 바닷가에 나오지도 않았고, 타이타닉처럼 상징적 이지도, 내 상상만큼 항구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애틋할 필요도 없어서 그런가. 손을 흔들러 나왔다 머쓱해졌다. 뭐 어쩌겠는가.

그래서 헬싱키에게 안녕을 고했다.

다음번에 올 때는 오로라를 보러올께.







KakaoTalk_20200420_111813707_12.jpg 출발하는 길에 멀리 보이던 헬싱키 대성당


~짧은 반나절의 크루즈 라이프~


내가 탄 선박회사는 바이킹라인의 크루즈였다. 실자라인과 바이킹라인 두가지가 있는데, 바이킹라인이 더 저렴하다고 하고, 인터넷을 찾아보면 한국 여행사에서 프로모션으로 4인용 방을 혼자 쓸 수 있게 해 주고, 다음날 아침 뷔페 조식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밖에 창문에 아무것도 안보이는 방을 주므로 유의. (아마도 물밑에 들어가 있는 부분이라 생각됨)

물론 배에서 방 없이도 지낼 수 있긴하겠지. 하지만 배를 타고 짧은 시간을 가는 것이 아닌 최소 12시간을 타기에, 그리고 나름 크루즈이니 크루즈를 마음껏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태어나서 처음 타 보는 크루즈에 처음은 신기하여 각 층을 이래저래 돌아다녔으나, 이내 시들해졌다.

배는 넓지만,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없었기에. 그나마 재밌던건 면세구역이라는 쇼핑 하는 곳 뿐이었는데, 술을 보니 북유럽에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금을 술에 매기고 있는걸까 싶었다. 왠지, 그래서였을까. 헬싱키 슈퍼에서 보니 맥주 캔을 돌려주는? 파는? 모습을 보았었다. 술에 대한 규제가 상당히 심한 것 같아 러시아와는 비교가 되었던게 생각났다.


러시아에서는 똑같이 술 규제가 심하지만, 주말엔 슈퍼에서 술을 살 수 없었다. 하지만 가게에서는 사먹을 수 있었고, 그 가격이 그렇게 많이 차이가 없었었다. 슈퍼에서 사지 않을 바에는 가게에서 마셔야지 하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것 같았다.


반면 헬싱키에서는 술에 높은 세금을 매기고, 술 자체에도 높은 가격을 매겼었다. 그래서였는지, 사람들이 술 마시는 모습을 (적어도 내눈에는 ) 많이 못 본것 같았다. 물론 물가 차이도 있겠지만, 러시아보다는 헬싱키 방법이 더 나아보였다.


그래서인가, 우리나라도 담배 값을 높게 매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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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사고 쫄레쫄레 방으로 돌아와 헬싱키에서 산 마지막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이 와서 먹었다던 그 햄버거 가게의 메뉴였다. 왠지 내가 한국인 같아 보여서 그런지, 메뉴도 추천 해주더라. 기대하며 먹었지만, 특이한 것은 어니언링이 정말 맛있다는것? 이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그리고 맥주가 맛있다는 것도.

크루즈라서 그런가.


맥주까지 마신 후 방에서 조금 쉬다가 다시 갑판에 올라가 보았다. 방에 창문이 없어서 타이타닉의 잭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잭이 갑판에 올라가 그림 그리다 로즈를 만난건가. 가능성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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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해가 지는 노을을 보았다.

정말 오랜만이다 싶을 정도로 해가 지는 것을 간만에 보았는데, 해가 질때가 너무 눈부셔 한참을 바라보았다. 바다 바람은 후끈 하게 내 머리칼을 스치며 지나가고, 오랜만에 보는 일몰은 예쁘고. 가만히 앉아서 시계를 확인하니 저녁 열시였다.


으, 노을이라도 보려면 저녁 열시는 되어야하는구나.

다른 유흥 시설에선 뭐 하나 기웃거리다 그냥 일단 자기로 마음 먹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울키친 호스텔에서 페테르고프를 갔다온 날 밤, 일기를 쓰던 나에게 말 걸었던 영국인이 말해주기를,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넘어갈 때 새벽 세시? 경 갑판위에 올라가면 배가 섬 사이를 지나가는걸 볼 수 있다고 했던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잠이 들면서 타이타닉에서도 빙산이 보인다는 말에 배를 돌리려다 그런 일이 생겼는데, 섬 사이를 지나가는거면 위험한거 아냐? 란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땐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게 처음이고, 이 배는 늘 지나갈테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잠이 솔솔 왔다.


잠이 들면서도 블라디보스톡에서 꼬리칸 같은 기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를 갔다가 다시 꼬리칸을 타고 모스크바에, 그리고 2등석을 타고 상트로 갔었다가 버스를 타고 핀란드로, 이번엔 크루즈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갈 때는 비행기를 타고.


이번 여행을 하면서 육해공 모든걸 다 겪어보는구나, 모든 이동수단은 다 타고 여행하는구나 싶어 내가 기특해졌다. 언제 이런걸 다 해보겠어.


횡단열차는 요람처럼 계속 흔들렸지만, 크루즈는 규모가 너무 커서 그런지 아무런 미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잠자리가 어색하여 잠시 부스럭 거리다 이내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