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9 스톡홀름 2일차
따뜻한 물에 푹 들어가있다 나와 잠을 푹 자다가 새들이 짹짹 거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창문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눈은 확실히 더 잘떠졌다.
이제까지 한달 넘게 여행 하면서 주변에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 호스텔 같은 방 사람들이거나, 호스트이거나, 아니면 아침을 먹어야했거나 하는 이유로 침대에서 얼른 일어났지만, 스톡홀름에서는 아무것도 없어 나 혼자 아침을 즐겨야 (?) 해서 그런지, 잠시 일어나서 뭘 해야하나 멍했다.
한국에서 백수 생활을 하지 않다가 여행을 떠나서인지, 한국에선 눈 뜨자마자 회사 갈 준비를 했는데, 백수는 일어나서 어느 정도 텀을 두고 일어나야할지. 잠시 눈을 깜빡깜빡 거리다 갈 곳 없나 찾아보니, 나를 스톡홀름까지 부른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박물관이 있다기에 단박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날 이곳에 부른 목소리,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만나야겠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박물관은 스톡홀름의 유명 관광지인 쥬니바켄 한켠에 존재한다. 내 숙소에서 쥬니바켄 까지가 스톡홀름의 끝과 끝이라서 지하철로도 한참, 내려서도 한참을 걸었다.
6월 21일은 금요일이었는데, 이 근방이 전부 주택가인건지 사람들이 없더라. 아니면 어제 레넛 아저씨가 말한대로 축제라서 그런건지, 사방이 다 고요했다. 왠지 지하철에서 누가봐도 스웨덴 전통의상으로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기 때문에 그들의 분위기가 어느정도는 짐작이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했다. 정말 단순히 “해가 길어서” 라는 이유가 그들에게 축제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축제가 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아예 공휴일로 지정하는게 가능한 일일까. 수많은 역사의 거친 면들과 기념할 일, 기리는 날을 겪어온 나에게는 신기한 이유의 공휴일이었다. 이 마저도 이네들의 문화이겠지. 싶은 마음과 빨리빨리의 나라 한국인으로써는 참 별의 별 이유로 다 논다 하는 생각도 들더라.
한편으로는 핀란드는 쉼을 의미하듯 "초록초록"한 느낌의 나라였다면, 스웨덴은 반대로 파릇파릇한 나라라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가, 그들의 공휴일 이유가 이해 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내 말이 맞다는 듯 웃어주는 모양의 조각상을 지나가니 저 멀리서 쥬니바켄이 보였다. 쥬니바켄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박물관 외에도 바사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이 모인 하나의 테마파크라고 표지판엔 적혀있었으나, 나의 목적은 오로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그것이 스톡홀름까지 나를 부른 이유였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박물관은 이 쥬니바켄에 들어와서도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고, 가는 길은 푸른 정원이 펼쳐져 있어 걷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왜 같은 여유인데 핀란드는 초록색으로 느껴지고 스웨덴은 푸른색일까. 자연이 가까운 것은 둘 다 똑같은데, 기분 탓일까 분위기 탓일까. 주니바켄 앞에서 시작된 생각은 정원을 가로지르며, 주변으로 지나가는 유아차의 아기들을 구경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초록색이건, 푸른색이건.
여유롭구나,
북유럽에 온 이후로 참 많이 느끼는 감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조각상이 갑자기 나타났고, 심장이 설렜다. 사람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 나누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상당히 동화책을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동화책을 그렇게 좋아했더랬다. 고전동화인 신데렐라,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혹은 전세계 인들이 다 읽은 해리포터 뿐만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동화 작가 셋은 영국의 로얼드 달,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그리고 동화라 말하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미국의 자서전 동화작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 셋을 가장 좋아하고 그들의 책 왠만한 것은 다 읽었다고 자부했다. 동화를 읽다보면 그들이 보여주는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상상에 나 역시도 담뿍 빠져들 수 있어 행복해졌다.
박물관에 들어갈 때 유아차가 곳곳에 있어 엇 역시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실제 박물관안에 들어가니 역시나..!로 생각들었다.
이곳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기 좋은 사이즈로 맞춰진 공간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봐주고 그들의 상상력 개발을북돋아주는 공간이 바로 이 박물관이었다. 아이들이 가득한 곳에서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이 마저도 너무나도 이 작가와 잘 맞닿아있었다.
물론 동화작가이니 더욱이 이런 공간이 어울렸겠지만, 생각보다 더 어린이에게 특화된 공간이 신기했다.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상상의 시발점이 아이들의 시선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좋았다. 삐삐롱스타킹 역시 제3자인 내가 보면 엉뚱하지만 매력있는 캐릭터였고, 마티다도 평화로운 시골에 사는 장난꾸러기 자매의 이야기, 산적의 딸 로냐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산적 꼬맹이들의 이야기였다. 또 다른 좋아하는 동화 사자왕 형제 이야기는 아이들이 죽고난 세계, 판타지 세계에 대한 내용으로 화자가 사자왕 형제 중 동생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진행됐다. 사람은 유의깊게 보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렇다면 이 작가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려깊은 눈으로 봤을지는 짐작이 간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이었다곤 하지만.
박물관이라고 하면 보통 딱딱한 공간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곳은 아이들을 위한 눈높이로 제작된 것들이 시선을 사로잡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져 “박물관”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홍콩 디즈니랜드를 갔을 때, 안전벨트 착용 고지 방송을 듣다 놀란 적이 있다. 노약자와 어린이에게 먼저 안전장비를 채워준 후 자신을 채우라는 말에. 물론 내가 이제까지 안전벨트 착용 고지 방송을 유의깊게 듣지않아서 놀라웠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더 직접적으로 어린이 먼저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었나. 그때와 같은 신선한 충격을 이곳, 놀이터라고 말 할 수 있는 주니바켄에서도 받았다.
아이들 틈에서 함께 놀고 있다가 이야기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곳으로 가니, 삐삐가 나를 반겼다. 곳곳에 그려진 삐삐와 작가의 연대기를 구경하고 있자니 직원이 이야기 기차를 탈거냐 물었고, 영어로 틀어달라 하고는 기차를 기다렸다. 여기서도 느낀 점이지만 일본어는 있는데 한국어는 지원이 안된다. 한국에서 북유럽이 가까운 나라가 아닌 것은 왜일까. 우리와 다른 삶의 가치관을 가져서인건가. 그렇다고 일본이라고 해서 북유럽스러운것도 아닌데. 앞으로 다들 북유럽도 많이 놀러왔음 좋겠다 싶더라.
이야기 열차는 정말 강추하는 전 연령을 위한 놀이기구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작가의 작품을 유의깊게 본 적 있는 사람에게라면.
열차에서는 작가의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기가막히게 엮어놓았고, 각 주인공들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와 함께 이야기는 전개되었다. 예를 들면 저길봐요, 마티다가 지붕에서 뛰어내리고 있어요- 와 같이 그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가볍게 얘기 해 주어, 작품을 아는 사람들은 정말…..감격하며 즐길 수 있다. (내가 그랬다)
비록 이야기 열차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있어 마음으로만 내용을 담고 왔지만, 이야기가 즐거웠다면 이 이야기 열차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또 책으로 묶어놓은 것도 기념품 가게에서 살 수 있다!
열차에서 내리고 나니 자연스럽게 삐삐의 집으로 연결 되었다.
아, 정말 삐삐의 집까지 들어 가니 나는 왜 어렸을 적에 스웨덴을, 스톡홀름을, 이 쥬니바켄에 오지 못했을까 땅을 치고 후회했다. 너무 재밌어보이는데, 나는 어른이라 이것들을 가지고 놀 수 없어!
내이름은 삐삐롱스타킹에 나오던 삐삐의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양새에, 이곳에서 놀지 못함에 통탄하며 땅을 치고 후회하며, 삐삐의 집을 마구 헤집으며 노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연신 바라봤다.
나도 놀고싶어 얘들아……….
원래 앞서 말한 세 동화작가를 매우 좋아하기에 나만의 공간, 나만의 집이 생긴다면 책장에 이 세 작가의 책 전권을 사서 꽂아넣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어렸을 적부터 했었다. 전집을 채워넣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하나둘씩 사서 꽂아둬야지 라는 로망이 아스라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 박물관에 온 이후로는 좀 더 구체화 되었다.
나-중에 결혼 하여 혹여나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동화 작가의 책을 함께 즐겨준다면, 꼭 이 박물관에서 놀 수 있을 정도의 나이일 때 이곳에 놀러오게하겠노라고.
이곳에서 비록 나는 아무것도 못즐기고 이야기 열차와 삐삐의 집에서 아쉬움에 눈물을 줄줄 흘리지만 너희들은 즐기게 해주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삐삐의 집까지 구경하고 나면 이 박물관의 구경거리는 모두 끝이 난다. 게다가 기가 막히게도, 신나게 놀은 아이들의 허기를 위해서 바로 식당과 이어진다. 보통은 기념품 가게가 존재할 위치에 식당이 존재하는 이들의 기가막힌 동선이라니. 아이들의 동선을 따라 정신없이 구경했던 나 역시도 배가 고팠기에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스웨덴에서 온 브랜드 이케아 식당에 가면 음식을 급식 먹듯 배식 받는 느낌으로 진열장 앞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주문하더라. 스웨덴의 구내식당은 전부 이런 시스템인가? 하는 생각에 갸웃 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바깥에는 바다가 보이고, 이곳은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고. 완벽한 나들이구나 싶었다. 해는 쨍쨍, 바람도 거세지만 나는 동심의 나라에 있다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자니 곳곳에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당연히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니 그렇겠지만,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우는데 아무도 놀란 모습을 하지않는 것은 신선했다. 당연히 아이들이 많으니 그렇겠지만, 내가 식사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울더니 식사가 끝나고 오늘의 느낀점을 적기 위해 다이어리를 끄적거리던 그 순간까지 일관되게 우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고, 한국에서도 공공장소에서 우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눈치 주지 않았기에 신경 쓰이진 않았지만, 이렇게 기억에 남는걸 보면 엄청 시끄럽긴 했나보다. 게다가 아무도 개의치않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인터넷 서핑하다 본 글인데, 한국에선 서양 아기들은 왜 공공장소에서 울지 않는데 한국 애들은 왜그럴까요 라는 질문에 답한 글을 보았다. 한국에선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아이들이 울면 단박에 날아오는 눈치와 한숨에 눈치가 보여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고, 아이들이 울지 않는 정도가 되면 데리고 나온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회화 과정이 미약하므로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이 미숙하다. 그에 반해 서양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에 비해 어렸을 때부터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의식이 뒷받침 하기에 더 빠른 사회화가 이뤄진다는 추론이 담긴 주장이었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본다. 사람은 뭐든지 해 봐야 는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그런 교육이 약한 상태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그 의견에 적극 지지를 표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기 어렵게 만든 이 사회의 “눈치”들이 너무 아쉽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우는 아기를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내릴 때가 되어 슬쩍 본 부모의 얼굴에 낭패가 가득한 얼굴을 한두번 본 것이 아니기에.
특히나 평일엔 부모가 아닌 엄마의 얼굴에 낭패와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한국에서도 좀 더 아이들에게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연신 들었다.
밥을 먹고 다이어리를 끄적거린 후 트레이를 치우고 나니,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며 갸웃거리는데 삐삐롱스타킹을 소재로 한 연극이 진행되고 있다더라. 아, 이런건 당연히 봐야죠! 하며 얼른 다시 삐삐의 집 앞으로 달려가니, 내이름은 삐삐롱스타킹에 나오던 한 에피소드를 연극으로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틈에 섞여 그 공연을 한참 보고있자니, 부러워졌다.
나는 몇 십년 전에 본 삐삐롱스타킹을, 이 작가의 작품을 이제서야 이렇게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데, 이들에겐 “오랜만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을 보니 쥬니바켄에 가서 감동을 느끼고싶어지는걸?” 이라고 생각하면 그 감동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 아닌가.
그 점은 매우 부러웠다.
공연을 한참 보다, 스웨덴어로 진행되어 알아들을 수 없기에 출구쪽으로 나오니 기념품 가게가 드디어 보였다. 뭘 사야할지 모르겠다 싶을 만큼 모든걸 갖고 싶은 공간이었다.
삐삐롱스타킹 인형, 원숭이 닐슨씨 등 다양한 캐릭터 상품, 작가의 작품 책, 자서전, 회고록, 그 외에 아이들을 위한 각종 제품과 삐삐롱스타킹을 비롯한 작가의 다른 작품 일러스트 엽서 등.
덕후는 여기서 통장이 정신없이 털렸다고 한다.
어이없지, 어디서도 안털리던 통장이 여기선 정신없이 털리고.
엽서와 삐삐인형을 사고 나니 돈이 꽤 나와 북유럽 물가에 혀를 내두르며 이야기 기차 내용을 담은 동화책은 내려놓았다. 연신 손길이 가며 고민하게 되는 것이, 왠지 시간 나면 사러 올 것 같더라.
쥬니바켄을 나오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은 이상하게도 당연히 동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본다.
어릴 때 읽어야하는 책 목록, 서울대 추천 도서 목록 등에 맞춰 독서 하다보니, 내가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재미는 덜하고, 어릴 적부터 독서의 재미를 알지 못하니, 쉽게 술술 읽히는 동화 등으로 시작하지 않고 어려운 책 (?) 부터 시작하니 책 읽기는 재미가 없고.
그런 나에게 이 쥬니바켄은 가히 충격적이라 말 할 만큼 부러웠다.
부럽다, 부러워 스웨덴.
만족스럽게 쥬니바켄을 나온 후 오늘은 원하는대로 다 해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아크네 스튜디오 아카이브 매장으로 향했다.
아크네스튜디오 아카이브는 기존 오뛰꾸뛰르에 섰던 제품, 이월상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건질 수 있게 전시한 매장이었고, 스톡홀름에서 꼭 기념으로 뭔가 건져가고 싶었던,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였기에 안들를 수 없는 이유였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아카이브 매장은…
닫혀있었다.
나처럼 망연자실해 하는 여성분이 있어 그나마 외롭진 않았지만 이 여성분도 역시나 납득 가지 않았나보다. 왜 닫은건지 아냐는 말에 “글쎄요, 미드서머데이?”라며 어깨를 으쓱하자 그런 이유로 쉬는거라구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인도 아니고, 아시안도 아니고 러시아 혹은 미국인으로 보이는 동지의 얼굴을 보며 서양사람이라 하여 모두 이 북유럽처럼 쿨하게 쉬는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들의 쿨한 휴식은 어떻게 보일까.
동지의 반응을 보다 퀵보드를 발견하여 감라스탄으로 이동했다. 감라스탄이라면 이 연휴에도 활발한 사람들을 볼 수 있겠지 싶은 마음이었는데, 딱히 그렇진 않더라. 역시나 한산한 감라스탄의 모습에 어제 내가 봤던 관광객은 어디갔지 싶어 답답한 마음이었다. 다들 공휴일엔 어디서 노는걸까.
사람들이 어딜 가면 많을까를 고민하며 쇠데르말름, 쇠데르할라나 등 다양한 곳을 퀵보드를 타고 지나다녀보았다. 그렇지만 아침에 본 것 처럼 전통의상에 꽃을 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노는걸까, 이사람들.
이들이 어디있는걸까 고민하며 갈 곳 없이 더 헤매기보다는 그렇다면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는게 어떨까 싶었다. 다만 킥보드를 타고.
그래서 킥보드를 타고 숙소까지 출발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지나가다 오솔길을 발견했는데 이 오솔길 끝에 가니 한강 고수부지 처럼 사람들이 강가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이들의 휴식이 어떤 형태인지 보이더라.
박물관도, 어떠한 유흥거리가 있는 번화가가 아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순간, 그 순간이 그네들에겐 가장 즐거운 순간이고 휴식이라 생각하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도 간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생각이 더 확실해 졌다.
오늘도 신선한 깨달음을 얻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다음날 아침에 먹을 과일과, 오늘 저녁으로 먹을 미트볼 재료, 그리고 짜먹는 치즈를 샀다.
기껏 요리가 가능한 에어비앤비에 왔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 호스텔 처럼 공유주방이 아닌 나만의 주방인데 뭐라도 해 봐야지 아쉽지 않을 것 같아 한번쯤은 내가 만들어먹어야지 싶었다.
그리고 짜먹는 치즈는 사람들에게 스웨덴 기념품으로 매우 만족도가 높아서 사보았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스웨덴에서 사야하는 것 있어? 라고 하면 짜먹는 치즈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요리에 짜넣어도, 그리고 아이비와 같은 크래커와 짜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숙소로 들어와 비장한 마음으로 주방에 서서 요리를 시작했다.
저녁 여덟시임에도 밝은 하늘에 괜히 용기가 났고, 요리하는 손길엔 설레임이 가득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미트볼은, 꽤나 만족스러운 맛이었다고 기억된다.
비록 만들어진 미트볼에 소스만 만들고, 샐러드를 만든 것 뿐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인 집에서 만들어먹는 현지의 전통 (?) 음식이라니.
낮에는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작가의 박물관, 저녁에는 현지인의 집에서 먹는 현지 음식이라니. 여행을 하다보니 별의별게 다 괜시리 감격스럽단 감상이었고, 함께 산 맥주를 홀짝 거리다 그것 보다는 내가 처음으로 요리를 잘 끝냈음에 대한 감탄도 조금은 들어있겠다 싶었다.
스웨덴에 와서 성공적인 덕질을 한 밤,
백야라서 해가 지지않아 그 설레임이 오래도록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