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Mid summer에 갇힌 하루

22-06-19, 스톡홀름 3일차

by 역마살아임더

아침에 일어나니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이다 싶을 만큼 허리가 아팠다. 어찌 해야할지 모를만큼 너무 아파서 머리가 다 하얘졌다. 그러다 의심가는게 한가지 있어 확인하니 역시는 역시였다.


여성의 건강의 시작과 끝은 포궁이라 할 만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퇴사의 직접적인 이유가 된 건강검진 결과가 처참할 때도 부인과 진료 결과에 대해서는 덤덤했다.


부인과를 한두번 가본 것도 아니고, 갔다가 정말 희안한 처방도 받아본 적 있을만큼이었기 때문에. 그런 내가 기상하자마자 겪는 이 아픔은 반가우면서도 눈물이 찔끔 났다.

오늘은 집에서 얌전히 있어야하나 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창밖이 너무나도 푸르렀다.

한국에서 진통제를 까먹고 안사왔지만, 스웨덴에도 약국은 있지않을까. 약을 먹으면 되는데. 방안에 누워있기엔 내 다리가 너무나도 튼튼하다.

절로 나오는 비명을 숨기지 않으며 나갈 준비를 한 후 기어서 문 밖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던 스웨덴



지하철 역까지 기어가는데 지하철 역 앞에 약국 표시가 보여 들어갔다. 창백한 내 얼굴에 약사님은 무슨 일이냐 물었고 진통제를 달라고 하자 알아서 약을 건네 주셨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 지하철 역으로 기어들어갔다.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먹었던 진통제는 10분 후면 효과가 나타났었는데, 스웨덴에서 먹은 약은 효과가 도통 나타나질 않았다. 지하철 역에는 들어왔는데 어딜 가야할지 몰라서 잠시 고민하다 감라스탄에 내렸다. 저번에 못본 왕궁을 구경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라스탄에 도착한 후 왕궁으로 향했다. 몇 번 와봤다고 헤매지도 않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니, 내가 창문으로 봤던 그 푸릇함이 보였다. 오늘이 연휴라고 하더니, 사람들이 없는 것에 의아함이 생겼다. 노천 카페에도, 음식점에도,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가게가 문 닫은 것은 물론이고,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 아직 오전 열한시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오후 7시쯤 된 것 같은 공허한 도심이었다.



어제부터 생각 했지만, 우리나라라면 명절이건 국경일이건 쉬는날=매출 올리는 날 이라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가게를 열겠지만 가게고 뭐고 뭐든지 다 문을 닫은 이들의 과감함 (?)에 좀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박물관은 닫지 않는다는 것. 왠지 이게 더 진짜 쉬는 거다 라는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국이라면 전혀 그러지않았을, 한국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근처에 있는 러시아만 해도 그런 생각 할텐데. 이들이 생각하기엔 당연하다 생각할 점이, 나에겐 당연하지 않게 다가왔다. 어떻게 그래요.




입장하자마자 발견한 의자. 대충 설명을 보니 최근에 여기서 뭔가 행사를 한 것 같았다.



왕궁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산 후 왕궁에 입장하였다.

러시아에서도, 특히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왕궁은 많이 가봤지만 러시아에서는 과거 인물이살았던 공간임에 비해 스웨덴은 아직 왕가 사람들이 있어서 그럴까.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을, 남의 집을 구경한다는 생각에 실제로 내가 여기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관람을 시작했다.


화려한건 어딜가나 어쩔 수 없나보다.


왕궁에 들어가서도 한참을 허리가 지끈 거리는 바람에 진지하게 둘러보진 않았지만 한가지는 명확하게 느껴졌다. 러시아가 더 화려했다. 스웨덴 왕궁은 수수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러시아 왕궁은 마치 영화에서 금은보화가 가득한 궁전, 혹은 드래곤의 던전에 쌓여있다는 번쩍거리는 공간을 방문한 양, 더럽게 화려하시네요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스웨덴 왕궁은, 왕의 공간이라면 이렇게 꾸며진 공간이라면 괜찮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물론 그 생각을 하다 천장을 올려다 보았을 때는 아니다, 스웨덴도 역시 화려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에서부터 왕궁, 교회 등을 가다보니 드는 생각인데, 천장을 화려하게 하는것이야 말로 자기들의 부를 과시하기에 딱 좋은 공간이 아닌가 싶다. 솔직히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의 시야로는 천장을 쳐다볼 수 없다. 지금 당장 이 글을 읽는 사람도 한번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천장을 올려다 본 경험이 있는지 생각 해보라. 적어도 나는 없으니까.



천장을 바라볼 일이 없는데도 이들은 천장에 정말 어마무시하다 싶을 정도로 공을 들여 왕궁 천장을 완성한다. 눈길이 가끔씩 닿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한구석이 모자람이 있어서 안되기에 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왕궁에 들어와 천장을 구경할 때마다 천장이 가장 부를 과시하기 딱 좋은 곳이구나, 아낌없이 자랑하는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왕궁에 들어왔을 땐 러시아가 더 화려한데? 라고 생각했던 것을 철회하기로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어쨌든 둘 다 더럽게 화려하세요.



개인적으로 이 회랑을 걸어갈 때 기분이 좋았다.

실제로 내가 이 공간에 산다면, 이 공간을 어떻게 걸어갈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걸어서 그런가. 물론 지금의 나처럼 허리가 아파 끙끙 거리며 걷진 않겠지만, 한번 걸어볼까 하고 걸어가자, 넷플릭스 드라마 크라운에 나오는 왕비가 된 기분도 들고. 나도 이 왕실의 일원이라는 느낌도 들고.


남들에게 말하진 않았고, 이런 생각 하며 걸었다는 것도 비밀이지만, 그럼 뭐 어때요. 다들 왕궁에 가면 그런 생각 해봤을꺼잖아요.


눈에닿는 모든 곳, 손길이 닿을 수 있을 모든 곳에 정성들여 꾸며둔 왕궁을 나올 때 쯔음이 되자, 드디어 약발이 돌았는지 몸이 가뿐해졌다. 그래도 방심하지말고 오늘 오후는 그냥 걸어다니고 퀵보드 타고 스톡홀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지.


삐삐와 국경일이라 국기 든 아기.


왕궁은 감라스탄 구시가지로 통했다. 구시가지는 이미 볼만큼 봤는데, 또 구경 할게 있을까 싶었지만, 스톡홀름을 돌아다니며 본 곳 중 감라스탄 구시가지가 가장 흥미로웠다. 레넛 아저씨 덕분도 있지만, 스웨덴에 대해 따스한, 여유로운 북유럽 길거리란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을 충족하게 해 준 곳이 감라스탄 구시가지였기 때문이다.



핀란드도 여유롭긴 했다. 하지만 스웨덴의 색감이 더 부드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핀란드는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여유가 묻어있었다. 스웨덴도 핀란드 만만찮게 여유가 넘쳤지만 결이 조금은 달랐다. 핀란드에서는 전반적으로 널찍한 건물과, 수수하게 꾸민 여유가 느껴졌지만 어딘가 서늘함이 있었다. 반대로 스웨덴은 아기자기한 건물 색과 골목골목에선 정감이 넘쳤다.


감라스탄 구시가지를 크게 한바퀴 돌아보고는 쇠데르말름으로 가야겠다 싶었다. 배가 고팠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감라스탄의 음식점은 비쌌기에.





전에 레넛 아저씨가 말하기로 집 값이 더 비싼싼곳은 감라스탄이 아니고 쇠데르 말름이라고 했는데, 왠지 이번에 쇠데르말름으로 넘어오면서 그 말이 생각났다. 레넛 아저씨 말로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감라스탄은 관광객이 많이 방문해서 늘 정신없고 쇠데르말름은 돈많은 부잣집 남자들이 많이 산다고 했었다. 그리고 동네도 조용하고, 골목골목에 맛집도 많다고. 사람이 없고 한적한 골목에 퀵보드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 말이 생각났다.


근데 음식점이 없는데요 아저씨.


감라스탄 건물에는 화재대비가 된 집이라는 표식이 있었지만, 이런 무늬가 새겨진 건물은 어떤 이유로 새긴걸까.



컨디션이 괜찮아지니 배가 고파와서 이제 아사하기 직전인데 음식점은 안보이고. 아무 집이나 문 연집을 보면 꼭 거기서 식사를 해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인도 음식점이 눈에 띄였다.


뱃속에 끼니가 들어가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문 연 음식점이 없는건지, 길에 사람들이 없는건지 곰곰이 생각하다 추측한 건데, 스웨덴 사람들은 연휴니까 문을 닫고 자연을 즐기러 놀러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라스탄 왕궁으로 들어가는 길에 유람선이 지나가는걸 봤는데 사람들이 그득 차있던게 생각나서. 그리고 한국에서 봤던 외국인들이 나오는 토크쇼에서도 유럽 사람들은 방학, 연휴가 되면 자연을 보러간다고 했던게 생각났다. 그런 추론이라면 상당히 내 추론도 꽤 맞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뜬금없이 길에 있던 예술작품


밥을 먹고 나선 뭐하지 곰곰이 고민하다 스웨덴에서 사야하는 쇼핑리스트를 검색 해 보았고, 스웨덴에서 사가면 좋은 것들 중에 카라멜이 있다는 글이 관심을 끌어 판매처를 찾아보니 운이 좋게도 근처에 있다는 구글 지도 결과에 기분 좋게 가게로 향했으나,


데자뷰...?


한숨을 쉬며 가게에 붙은 종이에 감라스탄에 있는 가게, 그리고 근방에 있는 델리에서 자기들 제품을 먹어볼 수 있다기에 델리로 갔고, 드디어 팔란스의 카라멜을 얻었다.



감탄스러웠다.

비록 카라멜 한 개에 1200원 꼴이라서 매우 비싼 값이지만 비싼 값을 하듯 정말 맛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않았던 나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 만 했다.


위그든씨의 사탕가게스러운 가게


한국에서는 간식거리, 사탕이나 누가 등을 파는 가게들이 없는데, 스웨덴에서는 위그든씨의 사탕가게 같이 생긴 가게들이 종종 보였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봤는데 내가 못봤을 수도 있지만.

가게에선 사탕이나 카라멜, 누가 따위를 무게로 담아 팔았고,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시스템의 가게가 너무 흥미로웠다. 게다가 가게 알바생이 잘생겼다. 북유럽 사람 치고 못생긴 사람을 보진 못했지만, 사탕가게에서 일하는 사람, 작업용 앞치마, 그리고 노르만족의 생김새. 얼마나 잘 생겼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아까 내가 맛본 엄청난 달달함과 쫀득함은 그냥 스트레스 받아서 맛있다 느낀 것일 수 있으니 맛 별로 한 개씩만 사서 감라스탄 구시가지 근처에 있는 왕가의 정원 공원에 자리 잡았다.


아까 밥 먹으며 내가 했던 생각이 틀리지 않았던건지 공원에 사람들이 꽤 보였다.

평소 이 공원에는 비둘기, 갈매기, 노인들이 많았으나 이날은 유아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 연인들이 곳곳에 앉아 햇빛을 쬐고 있었다. 가게에 가있기보다는 자연과 지인과 함께 하는 시간, 그것에 더 가치를 두는 문화라는게 피부로 와닿았다.



한참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여섯시가 되었다. 분명 오늘 한 것 중에는 생각나는게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다 처음으로 남의나라 약국에 들어가서 진통제를 사봤고, 약을 먹고 왕궁을 구경한 것 밖에 없는데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버렸다.


오늘이 축제라는 말에 원래는 혼자 노천에서 술을 마실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아침이 되기 전까지는

하지만 지금 와서는 그냥 쉬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도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바람이 불면 쌀쌀하지만 햇빛이 너무 따사로워서 몸이 다 바삭바삭해졌다. 아침에는 서늘하고 누군가가 내 허리에서 칼질을 하는 양 서늘하고 소름 돋는 느낌이었지만 어느새 바삭해진 컨디션이 마음에 들었다. 가서 쉬어야겠다.



지하철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어디서 논건지 모르겠지만 잔뜩 신나있고 땀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화관을 쓰고,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

지하철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는데 전통의상을 입은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빙그레 웃었다.


내 미소만큼은 그들의 여유로움과 닿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