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8 바라데로
새벽의 카리브해에 가면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걸려있는걸 볼 수 있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 한 블로그에서 본 정보가 머릿속에 콕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바라데로에 가면 꼭 새벽에 바다로 나가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걸려있는 걸 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내가 살면서 어딜 가야 하늘에 달과 해가 함께 걸려있는걸 볼꺼야. 그런 경관을 볼 수만 있다면 하룻밤의 잠 쯤은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지.
그렇게 다짐하고 알람을 네시부터 맞춰두었다.
회사에서 밤을 많이 새 보았지만, 대충 네시부터 주변이 희끄무레해지기 시작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네시에 일어나 바깥을 보니
여전히 새까만 하늘만 나를 반겼다.
리조트 소유의 선베드 중 하나에 앉아 해 뜨는걸 기다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고, 내가 잠들었다는 사실에 다시 놀라 숙소에 들어가 잠시 잠을 졸다 하늘 보러 갈꺼야? 라는 일행의 문자에 화들짝 놀라보니 어느새 일곱시. 부랴부랴 다시 핸드폰만 들고 바다로 나왔다.
다행히 바다에 도착하니 하늘엔 아직 달이 떠 있었다. 달이 떠있는 모습에 다행이다 다행이다를 되뇌이며 모래사장에 주저 앉았다. 하늘이 연보라빛이었다. 살면서 이런 하늘 색은 처음 보았다. 정말. 회사를 다니며 수많은 밤을 새 보았고, 새벽에 출근도 해 보아 알고 있지만 연보랏빛의 하늘 색을 띈 새벽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하늘 색이 너무 오묘하여 도저히 어떤 색이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그저,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일출 시간에 내가 지각을 한 건 아닌지, 모래사장에 주저 앉아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동쪽 하늘이 타오르는 붉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멍하니 앉아 하늘만을 바라보며 미흡하지만 사진에 담아보았다. 그것만이 내가 이 순간에 있었음을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말 바다를 바라보며 왼쪽은 서쪽, 오른쪽은 동쪽. 이렇게 정확하게 동 서가 나뉘어진 곳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해와 달이 한 하늘에 걸려있는 모습을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블로그를 발견한 내가 너무 대견스러워 지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세상에서 처음보는 정말 예쁘다는 말로밖에 표현 할 수 없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하늘 색을 보이는 자연을 보며 그저 감탄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해가 뜨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문득 궁금해 졌다. 저 바다는 추울까. 보통 아무리 여름이라 하더라도 밤, 혹은 새벽의 바다는 차갑다. 물(?) 이라서 그런지 태양에 의해 쉽게 달궈지고, 해가 없어지면 본연의 온도를 찾는것이 바다의 온도. 근데 왠지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걸려있는 이세게 적인 풍광을 보다보니 정신이 나간건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바다는 어떨까. 왠지 전혀 차갑지 않을 것 같아.
모래사장에 함께 앉아 구경하던 일행에게 나 바다에 발만 담궈볼래! 라고 하며 일어나 바다로 걸음을 옮겼다. 바라데로에 도착했던 어제, 우리는 수영장에서만 놀고 바다는 오지 않았었다. 물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 한번만 보고 가자 하여 바닷가에 나온 적은 있으나, 바다에 몸을 담궈 보진 않았었다. 정말, 정말 충동적으로 일어나 바다에 몸을 담궈보고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처음 내가 몸을 담궈본 카리브해는, 따스한 온도를 가진 바다였다. 그 따스함에 내가 오히려 놀랄 만큼. 비록 나는 수영을 배운 적이 없어 수영 하는 방법은 모르지만, 왜 모든 인간은 양수를 헤엄치며 10개월을 지낸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수영하는 법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물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빈틈 없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그 촉감이 태초부터 내 촉각 세포에 새겨진 듯, 그 감각이 나를 감싸는 것이 못내 좋았다. 그래서인지 예상과 다르게 따스하고 너무나도 포근한 바다의 촉감을 느끼자 이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했다.
바다에 발을 담그고, 하늘을 한참 올려다 보았다.
서쪽은 하늘색에서부터 그라데이션이 생긴 연보랏빛, 그리고 동쪽도 역시 하늘색부터 그라데이션이 시작되었지만 희끄무레한 붉은 빛으로 끝이 보이는 하늘. 살면서 처음 보는 하늘의 색감, 여기가 지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와 달이 함께 공존하는 하늘, 그리고 하늘이 매꾸지 못한 공간을 채우는 포근하고 따스한 바다. 심지어 하늘의 색감을 옮아온 듯 연보랏빛을 띄고 달려와 내게 부딪히는 파도.
그리고 지금 홀로 카리브해에 발을 디디고 서있으며, 나 홀로 오롯이 이 모든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사치.
이게 바로 사치 아니면 뭘까.
세상의 그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사치. 그 화려하고 빛나는 사치를 카리브해의 바라데로 바다에서 맘껏 즐기고 나니, 쿠바에서 느낀 너무나도 다채로워 할 말을 잃을 정도의 색감에 다시 빠져들고 말았다.
카리브해, 최고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나의 여행, 정말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