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1일차, 울릉도 버스에 대하여
* 이 글은 지난 4월 말, 한국에선 코로나가 종식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시기의 여행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방역을 매우 철저히 준수합니다.
찬물을 마시며 버스를 기다리자 어느 새 버스가 도착했다. 숙소가 있는 북면 현포와 저동항 까지는 서로 섬의 정반대방향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어느 방향으로 버스를 타도 상관 없었다.
버스에 오르자 의외로 버스가 꽉 차있어서 서서가게 되니 조금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중이라니. 침착하게 마스크를 쓰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참 언덕길을 꺼이꺼이 하며 힘들게 지나온 길인데 버스를 타고 지나가니 내가 정말 사서 고생을 하고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렇게 몇시간동안 오기를 부렸지만 결국 해낸 내가 장하기도 하고. 한심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올라오는 신기한 느낌.
그리고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님이 창 밖에 비치는 풍경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기 시작했다. 내가 패키지 관광객들용 버스를 잘못탔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자세하게. 옆에 지나가는 세개의 바위는 선녀암인데 막내가 가장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옥황상제가 화가 나 막내 바위에만 풀이 자라지 않는다거나, 저 바위는 코끼리 바위다 등등.
버스를 처음 탔을 때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 덕분에 기사님의 설명에 따라 사람들이 어디어디 하며 창밖을 요리조리 구경하는 게 보였다. 내가 여행 할 때인 4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울릉도는 여행객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 혹은 30대 중반부터가 여행오는 느낌.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이들이 단체로 버스 창문에서 하나라도 보려고 고개를 빼는 모습은, 조금 귀여웠다.
나중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사람들과 이야기 해 보자, 내가 탔던 버스만 그런게 아니라 몇몇 기사님들, 상당히 많은 분들이 그렇게 무료 관광 (?) 을 제공해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여행 했던 시기에만 울릉도 방문객이 울릉도 주민만큼 방문 했었다고 한다 . 그래서 버스를 탈 때마다 복작복작 거렸던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나보다.
버스가 종점인 저동항에 나를 내려줬다. 나는 늘 그렇듯 이번 여행에서도 맛집은 알아보지 않고 털레털레 왔었다. 왜냐하면 울릉도의 음식점 대부분은 2인분부터 주문을 받는다는 많은 사람들의 후기를 확인하였기에. 매 끼니마다 그저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1인분이 되는지를 물어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정보도 없이 온 것은 아니고 울릉도에서는 홍합밥, 따개비밥, 산채비빔밥, 오징어내장탕, 꽁치/오징어 물회, 그리고 독도새우를 먹어봐야한다는 것. 하지만 독도새우는 워낙 값이 값인지라 혼자 온 나는 기대도 하지않고 있었고 홍합밥과 따개비밥, 오징어 내장탕은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저동항 근처에 늘어선 음식점을 둘러보다 우선 이름부터 흥미로운 따개비밥부터 먹어야지 하곤 1인분 되냐는 질문을 여기저기 던졌는데 한 곳에서 1인분도 해주시겠다는 반가운 답을 해 주셨고 당장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울릉도의 음식 값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는데, 육지(?) 에서 물자 조달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긴 하는 가격이었다. 제주도에서도 비슷한 가격이었던 것 같으니.
밥 때를 지난지 한참 되는 오후 3시의 식당에 손님은 나 뿐이었다. 가게 벽 곳곳에 손님들이 남긴 낙서가 가득했다. 그 날짜들이 제각각이지만 많은 이들이 등산 동호회 사람들,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간다는 글을 보니 울릉도에 놀러 오는 사람들의 주 목적이 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낙서를 구경하고 있자니 어느새 음식이 나왔다. 울릉도라 그런지 매 끼니마다 명이나물이 보이는 것은 참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이제까지 명이나물은 그저 고기집에서 고기 싸먹을 때만 먹어봤는데. 원산지(?)에 오자 그저 깻잎 짱아찌와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혼자 털레털레 와서 밥을 먹는 내가 신기해 보이셨는지 오징어 내장탕까지 한그릇 내주시며 명이나물과 따개비밥을 싸먹으면 맛있다고 말씀 해 주시고는 다시 티비 앞으로 자리 잡으셨다.
그리고 먹어본 명이나물에 싼 따개비 밥은…..정말 맛있었다.
해산물을 그닥 즐겨 먹는 편이 아니어서 따개비를 처음 먹어보는데 따개비가 이렇게 쫄깃한 식감을 가진 생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명이나물 무침의 새콤달콤함과 쫄깃한 식감, 그리고 따개비밥 양념까지 곁들여지니 왜 1인분을 시켰을까 혼자서도 2인분 클리어 가능인데 라는 생각을 하며 말그대로 “퍼먹었다”
거기에 내장탕까지 한 수저 호로록 거려보니, 저절로 소주를 부르는 맛이었다. 내장이 이렇게 시원한 맛을 낼 수 있구나.
먹는 매 수저마다 감탄하며 먹자 사장님이 나를 보며 재밌으셨나보다. 관찰하시는게 느껴졌다. 얼른 호다닥 밥을 먹고는 너무 맛있다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다시 저동항 거리로 나왔다.
저동항 앞에는 울릉도에서 유명하다는 “이레커피”가 보였다. 늦은 시간임을 고려해 밀크티를 테이크아웃 하여 저동항 이곳저곳을 기웃기웃거렸다. 아까 내린 사동항 보다는 확실히 번화한 느낌이고 상점도 꽤 많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섯시가 되어갔다. 울릉도는 차가 일찍 끊긴다. 관광지 구경은 글렀으니 저동항을 넘어 도동항까지 걸어가볼까 하는 이상한 도전심이 또 고개를 쳐들었다.
안그래도 이레커피에서 커피를 사며 도동항은 가깝냐는 질문에 언덕 한두개만 넘으면 된다고 말씀 주시는 사장님 때문에 용기가 생겼나보다. 밥 먹은지 얼마 안됐고, 음료도 있으니 쉽게 지치지 않겠지 라는 판단력이 흐린 도전심이 해볼만 한걸? 이라는 생각을 불러왔다.
처음엔 즐거웠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 같은게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산에서 내려온 (?) 흑염소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고, 울릉도의 거리를 걸어보니 지방 읍내의 한적한 길을 걷는 것 같아 서울에서만 나고자란 서울 촌놈의 입장에선 별거 없는 골목인데도 흥미롭게 구경을 시작했고, 어느새 주택가는 사라지고 이레커피 사장님이 말씀하신 언덕이 나타났다.
그리고 30분 후, 다시는 울릉도를 얕보지 않겠다는 반성이 도전심을 쥐어팼다. 다시는, 다~시는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울릉도를 다시는 얕보지 않겠습니다.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사동항에서부터 북면까지의 기나긴 길을, 태하 전망대로의 깎아지르는 듯한 언덕길을 퀵보드를 이고지고 걸어올라갔는데 저동항에서 도동항으로의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겠다고 하자 종아리가 나를 매우 욕했다.
원래 고생하는걸 좋아해 걸어다니는걸 좋아하는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무의미한 고행은 안된다 주인놈아! 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에 눈 앞에 보이는 버스정류장으로 잽싸게 들어가 버스 시간표를 보았는데…..
버스가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었다.
울릉도 버스시간표 대로면 버스 정류장은 몇 개만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버스 시간표는 대체로 굵직한 행선지에 도착하는 시간만 적어둔 것이며, 그 사이에 있는 많은 버스정류장에서 기사님들이 내려주시는 것을 아직까진 몰랐을 때 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숙소는 현포 버스 정류장 코앞이었고, 처음 탄 버스는 천부, 관음도 등 굵직한 버스 정류장 위주로 하차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무작정 기다려야지.
버스정류장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기다리는데 정말 버스가 안와도 너무 안왔다. 버스 간격에 대해서는 대충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안오자 이미 버스가 끊긴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네시가 넘어 저녁이 되어가자 버스가 일찍 끊긴다 하는 말도 들었고,이제까지 내일로 여행을 할 때도 버스 배차 간격이 넓은 곳은 많이 여행 해 보았다. 하지만 적어도 지도 어플에 버스 도착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떴다. 하지만 울릉도는 버스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확인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버스 외에 내가 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었다. 택시가 간혹 지나가기에 택시를 탈까 했지만 요금이 몇만원이 우습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보였다. 한 10분만 더 기다려보고 안오면 그냥 택시타야지 하고 다짐하자, 버스가 언덕길 끝에서 올라오는게 보였다. 너무 반가웠다.
버스는 도동이 종점이어서, 현포에 가려면 여기서 몇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는 기사님의 설명에 다시 도동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출발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종점에서 다시 버스를 기다리고 하느라 시간이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어느새 막차에 가까운 시간이어서 버스엔 사람이 그득했다. 이번에 탄 버스는 큰 고속버스가 아닌 마을버스 규모의 작은 버스였다. 앉을 자리 없이 구겨져 서있는 나를 보고 기사님이 자기 옆자리에 앉으라고 해주셨다. 아 앞자리면 냉큼 앉아야죠 하고 앞자리에 앉으니, 울릉도의 일몰이 한눈에 보이는 명당이었다.
버스가 달리는 내 왼쪽으로 어느새 해가 지는게 보였다. 아까 울릉도에 들어올 때 바람이 장난아니게 불더라니, 역시나 오늘은 날이 흐렸나보다. 해가 지는게 선명하지 않고 구름에 켜켜이 쌓여 보일락말락 하는 해와 구름이 밀당 중이었다. 해가 지는게 보고 싶은 나는 당연히 해 편이었다. 바다와 함께 일몰이 보이면 정말 예쁠 것 같은데.
퀵보드를 타고 지나갔던 길을 버스를 타고 편하게 앉아서 올라가고 있자, 내가 했던 짓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를 매우 마음 깊이 깨달았다. 울릉도에 일주도로가 뚫린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울릉도의 험준한 지형 때문에 길이 고르게 뚫려있지 않고 섬의 동쪽, 그러니까 저동항~도동항~내수전 쪽은 상당히 길이 잘 뚫려 있으나 공항이 건설중인 사동항부터 숙소까지의 북면인 섬의 서쪽~북쪽은 아직도 도로 공사중인 곳이 많았으며 차 두대가 간신히 스쳐지나갈 정도의 넓이의 길이 이어지다 심심치 않게 1차선 터널이 나타났다.
이 길을 퀵보드 타고 지나가다니, 깡이 좋은건지 운이 좋은건지 둘 다인건지. 스스로의 당참과 무모함에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스스로에게 비식비식 웃음이 나왔다. 모르면 용감하다. 모르는게 약이다. 그게 다 나를 지칭하는 말로 들렸다. 다시 울릉도에 가게 된다면 버스를 타거나 혹은 운전 할 수 있는 사람을 끼고 다녀야지 하는 굳은 결심이 섰다.
여행온 첫날, 벌써부터 다음 방문을 계획하는 중이었다.
울릉도의 버스 시스템에 대해서
울릉도는 버스가 잘 되어있는 편이라서 렌터카 없이도 다닐 수 있긴 합니다.
다만 버스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에 부지런해야하며 버스가 일찍 끊긴다는 단점이 있지만
늦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것은 숙소 근처에서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여덟시 (막차시간) 쯔음에는 숙소에 들어가는 것을 추천 합니다.
울릉도 버스는 크게 반시계방향, 시계방향, 그 외 특수 지역 (?) 용 버스가 있습니다.
버스 노선도를 보고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보고 반시계 방향인지, 시계방향인지 파악하면 됩니다!
버스 노선도는 여기서 확인 / 캡쳐 가능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