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3일차, 독도 2차 도전
* 이 글은 지난 4월 말, 한국에선 코로나가 종식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시기의 여행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방역을 매우 철저히 준수합니다.
전날 약소를 먹으며 6일 티켓으로 예매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고 있었으나, 나의 독도 접안 성공 여부는 당연히 우리집 초유의 관심사였다. 들어갔냐는 부모님의 전화에 못들어가서 6일에 들어가려고- 라고 말했더니 당장 내일 가라고 하셨다. 내가 이미 날씨도 다 봤고, 나도 한 날씨요정이라고 하는데 내일은 안되고 6일이어야하거든요? 라고 하자 엄마가 아 왠지 내일이면 너 들어갈 것 같아서 그래! 라고 하셨다.
뭐 이런 어거지가 다 있어, 하면서 당장 다음날 티켓을 찾아보니 딱 한자리가 남아있어 그 티켓을 하나 더 예약하고 바람을 이기며 별을 구경하고는 잠에 들었었다.
신기하게도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매우 좋았다. 엇, 진짜 독도 들어가겠는걸. 하며 콘플레이크를 한사발 말아 숙소 앞 도로 가드레일 앉아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울릉도에는 워낙에 차가 없어서 도로에 차가 잘 안다닌다. 버스가 끊기는 저녁 8시 쯤이면 바깥이 매우 고요해지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가 도로변에 위치했어도 전혀 시끄러움 없이 꿀잠만 실컷 잤다. 그리고 그렇게 차가 없는 만큼 도로변에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해도 밥을 다 먹을 때 까지도 차가 지나가질 않았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안전하게 도로에 앉아서 밥 먹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것인가. 도로에 앉아 바다가 쥐죽은듯이 고요한 것을 바라보며 콘플레이크를 말아먹고 있자니 위험함 속에서 느끼는 이상한 안정감에 밥이 그렇게 잘 먹혔다. 풍경 맛집이라 먹고있던게 맛 없었어도 맛있게 먹었을텐데 맛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콘플레이크의 맛에 아침부터 행복해졌다.
두번째 독도 배는 오후 1시였기 때문에 아침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뭘할까 고민하다가 퀵보드를 타고 전날 걸어왔던 추산~관음도 앞까지 가봐야지 라는 계획을 하고 퀵보드를 타고 길을 나섰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현포에서 관음도까지는 평지여서 길이 고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과연 길이 평지였다. 약간 언덕길이 있긴 하지만 귀여운 수준이고, 아직 일주도로 공사 중 이었지만,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거리에서 공사중이어서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울릉도를 내달렸다.
지나가다 멋진 풍경을 뽐내면서도 내려갈 수 있을만한 공간이 보이면 내려가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 바닷가까지 내려가는 길이 순탄해 보이면 바닷물에 발도 담궈보고. 울릉도의 바다는 내가 본 그 어느 바다보다 맑았다. 쿠바에서 본 카리브해가 터키석 색의 맑음이었다면 울릉도는 진한 사파이어 색깔. 그 바다가 어제와는 달리 매우 잔잔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러면 무리없이 독도 들어가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바닷가를 내달렸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보니 처음에 조용했던 바다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바다는 매우 고요한데 바람이 장난아니게 불었다. 어젯밤에 별 보러 갔을 때 불던 바람이 잠시 잠들었다 어느새 깨어나 여전히 기나긴 꼬리를 울릉도 곳곳에 철썩 거리며 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도 뜨고, 파도도 안치는데 들어갈 것 같은데 하다가도 바람이 너무 거세 못들어가겠다 하는 걱정이 함께 앞섰다. 전날 친해진 게스트하우스 사람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오늘 독도에 들어가겠다 했던 사람들 몇몇이 바람이 너무 세서 취소하겠단 연락을 보냈다. 그들의 카톡을 봤을 때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을때라 발을 담근채로 한참을 고민 했다. 취소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일단 바다에서 다시 나와 마저 도로를 달려 선녀암 쪽을 향해 가는데 뭔가가 내 이마를 콩 하고 때렸다. 반사적으로 놀라서 퀵보드를 멈춰 뭔지 살펴보았는데 자그마한 자갈이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아마 울릉도 도로 옆에 늘 함께 하고 있는 울릉도의 산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도로 옆에 쓰여있는 “낙석 주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척추를 타고 소름이 오소소 올라왔다. 이게 자갈이기에 망정이지 돌멩이 정도만 됐어도 난 죽었겠는걸? 자갈이니 이마를 콩 하고 때렸지, 돌멩이였어봐.
상당히 조심조심해 하며 마저 선녀암까지 달려가 선녀암을 구경하는데 결심이 섰다. 그래, 오늘 독도에 들어가보자. 아까 이마에 맞은 낙석 자갈 하나로 오늘 나의 액땜은 다 한것 같으니, 난 오늘 독도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도로변에 기대어 선녀암을 바라보며 꼭 들어가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이 바위의 설화가 선녀암이니, 선녀님들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겠지. 독도, 화이팅! 이라 외치고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어느새 열시였다. 사동항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려면 슬슬 숙소에 돌아가야했다.
운전 (?) 하는 중이라 카톡을 못봤는데 오늘 독도에 들어가기로 했던 사람중 대부분이 취소했다는 카톡이 쌓여있었다. 결국 독도에 도전하기로 한 사람은 수원에서 온 동생, 당진에서 온 언니, 그리고 나까지 해서 셋이 들어가게 되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독도에 또 도전하냐 물어보셨다. 다들 취소하고 저 포함해서 세명만 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바람이 세서 포기한다더라 하자 울릉도랑 독도랑은 바다가 정반대인 경우가 많은데 라고 말하시고는 청소를 계속 하셨다. 어제도 독도 들어갈것 같다 하더니 못들어갔던 사장님의 예언 전적 (?) 이 있기에 크게 귀담아 듣지는 않기로 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어제와는 달리 출발 할 때부터 바다가 매우 맑았다. 이상하게 긴장 됐다. 살면서 긴장을 잘 안하는 편인데, 발표하거나 할때도 떨어본 적 없고 울릉도에 온 첫날 태하에서 현포로 내려오는 길에 죽을뻔 했어도 웃을 수 있는 강심장인데도 이상하게 독도에 2차 도전을 하려 하자 심장이 그렇게 떨렸다. 뭔가 인생의 중대한 것을 두고 검사 받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제 앞날이 어떨까요, 저는 과연 조상복을 받은 사람일까요 하는 것을 검사받으러 가는 기분이랄까. 독도가 뭐라고 라는 생각을 하며 심박수를 가라앉히려 했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남양에 이르러 바다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오자, 심박수를 가라앉히기는 커녕, 오히려 오늘 독도에 꼭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며 평소 찾지도 않는 기도를 다 드렸다.
평소 종교에 대해 나는 무교지만 집안은 불교를 믿는다고 말하고 다닌다. 하지만 이상하게 큰 일이 생길 때 마다 불교에서 쓰인다는 기도를 드리며 마음을 집중했다.
대부분은 시험, 면접 등 나만의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 것, 혹은 내 앞날에 대한 것에 기도 했으나 여행지에 와서 여길 꼭 가고싶으니 가게 해 주세요 라며 비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여행하며 여행지에 와서 이제까지 아무것도 내 앞길을 막은 것이 없었는데 독도라는게 그랬다. 평생 여행하며 가고자 하는 곳은 모두 막힘없이 가던 나인데, 이런 나를 막아세우고 하늘이 맑기에 들어가겠네 했는데 바다가 길을 열어주지 않아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길에 연연해 하며 구질구질하게 만들었다.
건방지네 라는 생각을 분명 처음엔 했었는데 이젠 독도 들어가게 해주세요 제발요 ㅠㅠㅠㅠ 라는 절규로 변해있었다.
울릉도에 와서, 독도에 들어가려 하면 사람이 이렇게 처절 (?) 해지는구나.
사동항에 내리니 열한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 이번에 내가 탈 배는 오후1시였기에 1시간 정도가 남았기에 카페는 가지 않고 대합실에서 게스트하우스 일행들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이자 멀미약을 나눠마시며 독도! 독도!를 외치며 배에 올랐다.
독도에 들어갈 것인가 말것인가. 과연 그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